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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봄, 이제 ‘자연화된 거짓믿음’을 떨쳐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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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4-12 22:59:52 수정 : 2019-04-12 22:5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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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봄은 비발디의 봄이나 / 괴테의 봄과는 같을 수 없어 / 문학도 음악도 시공간의 예술 / 일차적 감상자는 로컬 대중들

‘차이의 존중’에서 조너선 색스는 “영어는 프랑스어가 아니고, 이탈리아어는 독일어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의 이 말 속에는 인류에게 ‘보편적인 언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시니피에가 숨어 있다. 그런즉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선택지일 수 없다. ‘지리경제’, ‘지리문화’, ‘지리철학’과 같은 개념이 탄생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같은 종(種)의 동물도 서식지의 영향을 받아 그 생김새와 성격을 달리한다. 사슴을 예로 보자. 북아메리카의 ‘말코손바닥사슴’, 콜롬비아의 ‘흰꼬리사슴’, 인도와 스리랑카의 ‘악시스사슴’을 비롯해 대한민국의 ‘백두산사슴’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연지리에 영향을 받아 채식 습성은 물론이고 낙각(落角)의 시기에서도 차이를 보이며 체형도, 체중도, 체색도 각기 판다르다.

박치완 한국외국어대 교수 문화콘텐츠학

지상에 존재하는 인간, 동물, 식물은 이렇듯 차이와 다양성을 그 본질로 한다. 차이와 다양성이 존재의 본질이라는 것은 타자, 타문화와의 교류, 소통이 세계 이해의 필요충분조건이라는 의미와 상통한다. 상호문화, 횡단문화의 시대로 통용되는 오늘날 과거 열강에 의해 은폐·조작된 역사, 잘못 알고 있는 상식, 지식은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서구유럽의 문화가 고급·보편문화라는 편견도 이제는 버릴 때가 됐다.

‘백두산사슴’, 즉 청록(靑鹿)을 유파로 하는 박목월의 ‘사월의 노래’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 다소 객담(客談)이 길어졌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로 시작되는 이 시는 박목월의 대표 시 중 하나요, 대한민국의 봄을 대표하는 가곡으로도 널리 불리고 있다. 최근 방송에서도 이를 배경음악으로 깔며 “봄기운 만끽하시면서 여의도 좀 챙기는 봄이 됐으면 한다”고 방송을 마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했다. 봄소식을 전하는 지면에서도 ‘사월의 노래’ 타령이 여전하다.

그런데 이 노래를 무심코 흥얼거리다 ‘그늘’이 과연 ‘목련’과 어울리는 시적 결합인지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목련꽃 그늘 아래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는다는 것은 또 뭔가. 거리를 지나다 보면 목련꽃이 간혹 눈에 띌 것이다. 개나리나 벚꽃에 비해 고아(高雅)한 자태가 봄꽃을 대표한다 할 만하다. 그러나 목련꽃에는 아무리 보아도 그늘이 지지 않는 것 같다. 그 밑에 앉아 책을 읽는다는 것도 왠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든다.

“왜 사월은 ‘잔인한 달’인가요”라고 묻는 고등학생의 인터넷 게시 글에 어떤 식자(識者)가 그것은 토머스 엘리엇이 ‘황무지’에서 그렇게 노래했기 때문이라고 즉답을 하는 것을 보고서 고소(苦笑)를 금할 길이 없었다. 봄에 대한 자기 느낌, 자신의 생각마저도 이렇게 ‘남의 나라 시’에 기대고 빗대서 이해해야 하는 우리의 교육현실이 ‘문화적으로’ 심히 부끄럽게 느껴져서다.

출퇴근 시간에 라디오를 켜보면 봄과 관련된 클래식음악을 자주 들을 수 있다. 다양한 곡이 전하는 봄이 각각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 중 1번곡에 해당하는 ‘봄’은 이탈리아 특유의 생기발랄함이 느껴진다. 반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가 들려주는 빈의 봄소식은 경쾌함과 동시에 낭만의 형식미가 있는 기품 있는 왈츠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가 하면 프레데리크 쇼팽이 남긴 51번곡 ‘마주르카’ 중 일부 작품은 폴란드의 민속춤곡의 형식으로 봄의 도래를 기뻐하는 시골 농부와 어린아이의 흥겨움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모두 봄에 관한 곡임에도 서로 다른 색깔로 다가오는 것은 작곡가들이 살았던 지리풍광과 문화가 잘 배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인의 봄은 비발디의 베네치아나 괴테의 프랑크푸르트의 봄과 같은 봄일 수 없다. ‘자연화된 거짓믿음’은 ‘목련꽃 그늘’에서처럼 우리의 자연과 우리의 고유한 문화적 감성을 왜곡시킬 수 있다. 문학도 음악도 시공간의 예술이며, 일차적 감상자는 시공간을 공유한 로컬 대중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봄이 됐으면 한다. 봄이라고 해서 다 같은 봄이 아니거늘, 매년 봄이 오면 ‘사월의 노래’를 아무 생각 없이 읽고 또 들어야 할까.

 

박치완 한국외국어대 교수 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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