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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상하이 시절…韓독립운동사 중 가장 중요"

입력 : 2019-04-10 13:16:51 수정 : 2019-04-10 13: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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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서 임정 수립 100주년 기념 한·중 공동 심포지엄
"임시정부, 동아시아 반제·민주 운동의 진전으로서 의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상하이 활동 시절이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는 중국 학자의 평가가 나왔다.

한국 독립운동사 전문가인 쑨커즈(孫科志) 푸단(復旦)대 역사학과 교수는 10일 "27년의 임시정부 독립운동 기간 중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지도했던 기간은 한국 독립운동의 역사상 의심할 나위 없이 가장 중요한 시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밝혔다.

쑨 교수는 이날 중국 상하이 푸단대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중 공동 항일 투쟁'을 주제로 열린 독립기념관·푸단대 공동 주최 학술 심포지엄에서 "임시정부는 전 세계의 한인을 이끌며 다양한 방식의 독립운동을 진행했고, 특히 중국에서는 중국 혁명과 반침략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쑨 교수는 "상하이가 장기간 임시정부의 소재지라는 점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민주 공화정의 정체를 확립하고, 독립운동의 기초를 세워 일본 침략자에 맞선 한중 통일 전선을 구축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쑨 교수는 "1923년 국민대표대회 이후 독립운동 진영에 분열이 발생해 임시정부가 최고 지도기관으로서 지도자적 지위를 상실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한인 애국단체가 기획한 이봉창의 일본 천황(일왕) 저격 사건과 윤봉길의 상해 일본 군정 요인 저격 사건으로 한인들의 임정에 대한 믿음이 회복돼 재차 독립운동에서 대체 불가능한 지위를 확립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민간은 시종일관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 확고한 지지를 보내고 응원했다"며 "임시정부가 중국에서 27년간 투쟁할 수 있던 것은 중국과 한국 양국 인민이 모두 '순망치한'의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한국 측 학자들 사이에서는 임시정부의 수립을 통해 우리 민족이 민주 공화정으로 향하는 첫 발걸음을 뗐다는 평가도 나왔다.

배경한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특임연구원은 "당시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동아시아의 여러 약소국은 공통으로 국가 독립을 목표로 하는 '반제'와 독립운동 이후 새 국가 체제로서 민주공화국을 내세웠다"며 "이런 의미에서 1919년 시점에 중국 상하이에 만들어진 한국 임시정부는 동아시아의 반제, 민주운동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출발점이 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시에 임시정부 수립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 흐름이 신해혁명 등 중국 혁명 운동의 흐름과 긴밀한 연관성을 띠고 있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배 연구원은 "상하이 임시정부가 성립 당시 선포한 민주공화국이라는 새로운 국체는 신해혁명으로부터 시작된 동아시아 공화 혁명 내지 민주주의 혁명의 직접적인 영향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상하이 임시정부의 민주공화국 수립 선언으로 동아시아 지역에서 공화 혁명이 진전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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