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중년 고립男 ‘나홀로 죽음’ 늘고 있다 [심층기획-고독사 내몰리는 중년男]

입력 : 2019-04-09 07:00:00 수정 : 2019-04-15 21:45:3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1회) 실직·질병·고립에 사회적 눈총까지 / 실직·질병에… 가족과도 단절 / 40∼64세 무연고 남성 사망자 작년 1040명… 6년새 두배 증가 / 사회안전망 부실 추락 가속화 / 일만 하며 몸 소홀히 했더니 남은 건 병 / 답답해 나가면 “멀쩡한 놈이 논다” 눈총 / 주위 편견에 상처받고 마음에 ‘빗장’ 걸어 / “갈 곳 없고 할 일 없어”… 은둔형외톨이로 / 고시원서 아침에 눈뜨면 “무사히 깼구나” 안도 속 “잘못되면 어쩌나” 두려움 상존

지난해 8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달살이를 한 서울 강북구 옥탑방과 담을 맞댄 주택. 41세 남성 A씨가 숨진 지 사흘 뒤에 발견됐다. 시신이 있던 거실에는 소주병 10여개가 놓여 있었다. A씨는 은둔형 외톨이였다. 이웃은 그의 집에서 전등이 켜졌다 꺼지고 TV 소리가 나는 것을 보며 ‘살아있구나’ 했다고 한다. 

 

지난 1월 말 충북 청주의 한 원룸에서도 61살 남성 B씨가 사망한 지 열흘 후쯤 이웃의 신고로 발견됐다.

중장년 남성의 고독사가 늘고 있다. 건강이 악화하기 이른 나이임에도 40∼64세 남성 무연고 사망자는 2012년 418명에서 2018년 1040명으로 2.5배 가까이 늘었다. 이는 건강 문제, 생계난 등으로 사회적 고립에 처한 중장년 독거 남성이 증가하는 데 따른 필연적 현상으로 추정된다.    

‘황소도 때려잡게 생겼다’는 신동민(50·가명)씨도 고립을 경헙했다. “낮에 서울숲에 지팡이 짚고 나갔더니 ‘젊은 놈이 할 짓이 없어서 저 짓을 하고 다닌다. 할머니들은 박스라도 줍는데, 허우대도 멀쩡한 놈이’라고 하더라고요. 순간 억장이 무너졌죠. 나도 돈을 벌어서 후원도 하고 옳게 쓰고 싶은데…. 그런 소리 들으면 집 밖으로 나가기 싫어요.”

 

신씨는 40대 중반이던 2013년 복합부위 통증증후군(CRPS)이라는 희귀병에 걸렸다. 이 병은 극심한 통증이 만성적으로 불시에 나타난다. 환자들은 하루하루가 공포라고 호소하지만 치료가 쉽지 않다. 남들의 비수 같은 말에 상처받은 신씨는 3년간 방에 숨어 지냈다.

 

신씨처럼 좁고 어두운 방에 고립되는 중장년 독거 남성이 증가하는 추세다. 질병과 실직, 사업 실패와 채무로 사회를 등지게 된 이들은 ‘갈 곳 없고 할 일 없어’ 점점 짙은 방 그늘로 자신을 가둔다. 사회적 고립과 고독사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게 된다. 

무연고 사망자는 남성에 편중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무연고 사망자는 남성 1836명, 여성 556명이다. 남성이 여성의 3.3배다. 중장년일수록 차이는 더 벌어진다. 40∼49세는 4.5배(남성 156명, 여성 34명), 50∼59세는 8.1배(남 513명, 여 63명), 60∼64세는 7.7배(남 371명, 여 48명)나 됐다.

 

‘중장년 고립남’을 보는 사회적 시선은 곱지 않다. ‘몸 멀쩡해서 한창 일할 나이에 온종일 집에서 술 마시고 TV 보고, 음침하게 돌아다니는’ 못마땅한 존재로 이웃의 눈총을 받거나 심지어 잠재적 범죄자로 오해를 산다.

 

그러나 이들의 고립 뒤에는 ‘패자부활전’이 허락되지 않는 한국 사회가 있다. 실패와 불운을 겪고 인생에서 한번 ‘삐끗’한 이들은 다시 일어설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사회 맨 밑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다. 전문가들은 중장년 남성의 고립과 고독사를 개인이 자초한 불행이 아닌, ‘사회적 고립·사회적 타살’로 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고립남’들이 재기하도록 공동체가 나서야 하는 이유다. 이는 장기적으로 중장년 고독사를 예방하고 복지비용을 줄이는 길이기도 하다.

◆잇단 빚·사기·질병… 안전망 없이 떨어진 인생

 

지난달 18일 서울 도봉구 한 빌라. 38살 남성 C씨가 미라 상태로 발견됐다. C씨가 어떤 식으로, 또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떠났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의 삶을 증언해줄 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1년 전쯤 이사온 C씨는 이웃과 왕래하지 않았다. 부모와는 10대 후반에 인연이 끊겼다. 우편물이 가득 쌓여도 안부를 묻는 이 하나 없었다.

 

지난 2월 서울 구로구 쪽방에서 숨진 채 발견된 60세 남성 D씨. 두 달이 지난 8일 무연고 사망자로 장례가 치러졌다. 형제가 시신 인수를 거부한 탓이다. 

 

사회와 단절된 중장년 남성들이 고독사로 생을 마감하기까지는 숱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이들이 애초에 사회와 연결고리를 끊은 이유도 도식화하기 어렵다. 공통 요인이 있긴 하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연구위원은 “핵심적인 생의 실패 요소는 빚·질병·사업 실패”라며 “최근 경제 지표가 악화하면서 일자리를 잃고 사회에서 고립되는 남성이 확실히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남정탁 기자.

인생의 위기마다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도 이들의 추락을 부채질했다. 서울 양천구에서 만난 정상진(52·가명)씨는 지난해 5개월간 당시 살던 고시원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다. 정씨는 한 달에 25일은 고시원에 있었고 병원에 가야 해서 5일만 나왔다. 그는 “겨울에 영하 60도까지 떨어지는 시베리아 ‘오이먀콘’에서 6개월, 사하라 사막에서 6개월 있어 봤는데 고시원이 이곳들보다 더 덥고 추웠다”고 했다.

 

그에게는 21억원에 달한 친형의 빚보증이 족쇄였다. 2002년까지 그는 현대중공업에서 용접 작업 등을 했다. 기능올림픽에서 우승도 했다. 하지만 형의 빚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면서 모든 게 끝났다. 파산신청을 하려니 열 살, 일곱 살 아이들 교육과 생활이 안 됐다. 이혼한 그는 월급을 압류당하지 않기 위해 현금을 주는 건설 현장으로 갔다. 약 15년간 외국을 홀로 전전하며 빚을 갚고 자녀 교육비를 송금했다. 

 

“그 세월에 일만 하면서 몸을 소홀히 하고 함부로 굴렸다”는 그는 지난해 1월 갑자기 전신마비를 겪었다. 몇달 후 대장암까지 덮쳤다. 일을 못 하게 된 그는 5개월간 방에 유폐됐다.

◆‘집구석에 가만 있지’… 주변 편견에 또 상처

 

신동민씨에게는 희귀병이 문제였다. 그가 처음부터 세상을 피했던 건 아니다. 목발 짚고 영화관에 가자 ‘병× 집구석에 가만있지’ 하는 소리를 들었다. 집 밖에서 담배를 피우자 ‘기초생활수급비 받아서, 우리가 낸 비싼 세금으로 담배나 뻑뻑 피운다’는 말이 돌아왔다. 상처받아 부서진 마음이 더 움츠러들었다.

 

그는 2014년 병원에 가야 했는데 두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구청 자원봉사자에게 전화하니 차량이 없다며 ‘혼자 가시라’고 했다. 순간 ‘세상이 날 버렸다’ 싶었다. 신씨는 “세상에서 버려진 듯 느끼면 적대감밖에 안 생긴다”며 “마음의 빗장을 걸고 안 나오게 된다”고 했다.

 

조용성(51·가명)씨는 2000년대 초반 사기를 당해 생의 나락으로 떨어진 경우다. 법인 명의 도용, 부도 사기 등 온갖 지독한 삶의 덫에 걸렸다. 300만원이던 조씨 명의의 사채는 2003년쯤 1억3000만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은행 부채도 비슷한 액수였다. 이혼하고 100일도 안 된 아들과 헤어져야 했다. 이후 13년간 주민등록이 말소된 채 살았다. ‘공사판’을 전전하며 버는 족족 가족에게 보냈다. 하지만 2013년쯤 일하다 다치고도 의료보험이 없어 충분히 치료받지 못해 공사판 일을 접어야 했다.

 

이후 2년쯤 사회에서 고립됐다. 조씨는 “언제 사채업자나 해결사가 찾아올까 두려웠고 바람에 문이 덜컹거려도 누가 두드린 것 같아 낮에는 밖에 못 나갔다”며 “아는 사람이라도 볼까 싶고 한마디로 쪽팔렸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담배 피우러 나가는 것도 새벽 한두 시였고, 새벽에 편의점에서 술 사 와서 먹고 쓰러지고 깨서 일어나면 다시 술 먹는 생활을 했다”고 회상했다.

◆‘잘못되면 어떡하지’… 일상과 함께한 두려움

 

이들에게 고독사는 불현듯 생각나는 어두운 미래였다. 정상진씨는 “고시원에 갇혔던 시절 고독사라는 것도 많이 느꼈고 지금도 그렇다”며 “아침에 눈뜨면 ‘아 오늘도 무사히 깼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고 했다. 조씨 역시 “혼자 있으면 술 먹고 쓰러지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몸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홀로 있을 때 머리가 땅기거나 가슴이 아픈 경우가 있다”며 “그러면 ‘여기서 잘못 되면 내일 어떡하지, 누가 수습해주지, 그냥 썩어지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 ‘중장년 고립男’의 공통요소는

 

중장년 남성들이 고립되는 가장 큰 요인은 질병과 사고로 인한 실직이나 질 낮은 일자리였다. 많은 ‘고립남’이 일이 없어지자 사람이 떠나는 경험을 했다. 한국인 상당수가 인간관계 대부분을 직장에서 맺기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지난해 11월 서울시복지재단이 ‘고독사 위험 고립가구 특성과 지원모형 연구’를 위해 서울시민 1000명을 조사한 결과 남성 응답자의 56.4%는 몸이 아플 때, 39.4%는 낙심해서 대화 상대가 필요할 때 직장 동료에게 요청한다고 답했다. 보고서는 “고립 위험에 처한 이들은 대부분 잦은 이직과 불안정한 일자리를 경험했다”며 “불평등한 재하청 구조와 경제적 불안은 사회적 고립의 기초 전제”라고 분석했다.

 

그렇기에 중장년의 고립은 자기 관리 실패나 게으름이 아닌 사회적 산물로 봐야 한다. 질 낮은 일자리의 범람은 이들의 재기를 어렵게 만들고 인간관계도 파편화한다. 10년간 고독사 관련 활동을 해온 박민성 부산시의원은 “세계적으로 고독사가 늘어나는 핵심 이유는 신자유주의”라며 “우리 사회에서는 낙오하면 버텨내기 어렵다”고 씁쓸해했다. 신자유주의는 탈규제, 민영화, 재정긴축을 토대로 한 시장원칙을 중시하고 국가의 역할을 사유재산권,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의 보호로 한정 짓는다.

 

‘중장년 고립남’에게 공통되는 또 다른 요소는 술이었다. 외로움을 술로 풀다 보니 건강이 나빠지는 악순환이 생겼다. 그러나 술은 증세일 뿐, 이면에는 외로움과 상처받은 자존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자존감 하락은 이들을 방에 가뒀고, 그에 따른 외로움은 건강을 위협했다. 

 

독거 중년인 신동민씨는 “‘저 사람들은 집에서 소주 퍼마시느라 안 나온다’고 보는 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사회에서 상처받으면 세상에 나를 드러내기 싫어지고, 밖에 나가면 ‘저거 거지 됐어’하며 사람들이 내 얘기를 하는 거 같으니 안 나가려 한다”며 “나가기 싫으니 소주를 친구 삼아 마음을 달랜다”고 했다. “담배를 자주 피우는 것도 담배가 친구여서, 연기에 내 마음을 실어서 보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술·담배를 하지 않았던 정상진씨도 홀로 살면서 바뀌었다. 그는 “집이라고 왔는데 아무도 없고 잠이 안 오니, 처음에는 소주 한 병 사와 한 잔 먹던 게 반복되다가 말술이 되더라”며 “집에 오면 혼자 하늘 쳐다보고 땅바닥 쳐다보고, 밥 먹는 것도 혼자이니 곤욕이었다”고 전했다.

 

이들이 방에 머무는 이유에는 정보 부족도 있다. 정씨는 “2017년 모은 돈을 수술비로 다 써서 고시원으로 옮겨야 했다”며 “일만 하다 보니, 복지제도 자체를 몰랐고 휴대전화로 검색도 못 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중년 남성들이) 삶에 의욕이 없는 게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몰라서 안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