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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과 ‘나쁜손’ 사이…미투시대의 스킨십

입력 : 2019-04-03 22:15:24 수정 : 2019-04-03 22: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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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과 친밀함이냐, ‘나쁜 손’이냐.

 

미국 민주당의 2020년 대선 유력주자인 조 바이든(76) 전 부통령의 부적절한 신체 접촉 논란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공화당은 바이든의 스킨십 영상을 이어붙인 ‘소름끼치는 조(Creepy Joe)’라는 광고까지 제작하는 등 정치적 공세를 퍼붓고 있다.

 

이번 사태는 일명 ‘미투시대’의 사회가 허용하는 스킨십 기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바이든의 스킨십은 수십년간 지속되어 왔지만 2019년이 되어서야 “문제적”이라며 공론화됐기 때문이다. 바이든 스스로 “문제의 소지가 있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도 그래서 무리가 아니다. 스스로 성추행이라 여기지 않았을뿐 아니라 그렇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없는 시대를 살았을 테니 말이다.

 

“바이든이 바이든한 것(Biden being Biden)”이라는 표현이 이를 잘 함축한다. 바이든의 친밀한(?) 스킨십을 세상은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수십년 동안 이 때문에 그의 지위가 위태로워진 적은 없으며, 오히려 대중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하기까지 했다.

 

정치적 필요성이 더해져 바이든의 사례가 더 주목받는 것일뿐 이번 논란은 바이든만의 것은 아니다. 수많은 바이든들이 바이든 짓을 하며 (혹은 할 수 있다는 인식 속에서) 살아왔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실제로 중장년층은 바이든의 신체 접촉을 다정함과 친밀함의 표시로 이해하고 넘긴다고 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세대별로 바이든이 다정한 할아버지냐 소름끼치는 아저씨냐 의견이 갈린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러한 인식차를 전했다.

 

그러나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바이든식 스킨십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엄밀히 보면 그때도 맞았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세상의 기준은 그랬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바이든에 대해 타인의 불쾌함은 고려하지 않고 아무 때나 신체 접촉을 시도하는 인물로 여긴다. 정치권이 스킨십 논란을 공세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게 가장 큰 변화의 방증이다. 바이든을 옹호하는 낸시 펠로시 의장조차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지 당신이 뭘 의도했느냐가 아니다”고 경고했다.

 

다만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작은 시골마을이든 대도시에서든 어디에도 존재할 ‘바이든’을 향하기보다는 ‘2020년 유력 대선후보 바이든’에만 이때다 싶어 가해지는 집중포화는 씁쓸한 뒷맛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전 개인변호사인 마이클 코언이 미 의회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클리퍼드)에게 입막음용 합의금(약 1억5000만원)을 지급했다고 증언했으나 현직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시되는 기존 관행 자체를 돌아보기보다 특정 인물을 겨냥할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할 뿐이라면 유의미한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버닝썬 사태에서 승리의 성 접대 논란과 정준영의 불법 촬영 및 유포가 ‘그들 개인의 악행’으로 치부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와 같다. 바이든도 트럼프도 승리도 정준영도 빙산의 일각이다. 빙산을 도려낼 작정이 아니라면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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