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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백원이 뭐라고”… 빈병 보증금은 ‘못 먹는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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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4-01 06:00:00 수정 : 2019-04-01 10:5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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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세계] ‘빛 좋은 개살구’ 공병반환보증금 제도
근처 편의점에 빈병을 반납하러 방문했다.

“오늘은 수량이 다 차서 (빈 병을) 받을 수 없네요.”

 

지난 27일, 빈 소주병 22병과 맥주병 1병을 양손에 들고 힘겹게 찾은 서울 성북구 한 편의점에서 실망스러운 대답을 들어야 했다. 편의점 직원은 미안한 표정으로 “매장이 너무 작아 사장님이 공병 수거에 제한을 두고 있다”며 “주변 다른 매장에 한 번 가보시라”고 했다.

 

하지만 근처  중소형 마트에서도 반납하기 어려웠다. 마트의 한 직원은 “공병은 화요일과 목요일에만 받고 있다”고 수거를 거부했다. 결국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는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가서야 공병반환보증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손에 쥔 돈은 2330원. 무거운 술병꾸러미를 들고 소매점 세 곳을 전전하며 받은 스트레스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 돈이었다. 다시는 이러고 싶지 않았다. 

 

◆소매점 거부에... 소비자 “고작 몇백원에 목숨 거는 ‘짠돌이’된 기분”

 

실효성 없는 공병반환보증금 제도를 놓고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반복 사용이 가능한 유리 용기의 재활용률을 높인다는 취지지만, 동참을 꺼리는 현장이 적지 않다는 게 문제다. 소비자들이 두손 드는 배경이다. 

 

빈용기보증금 신고보상제 사이트에 수거 거부 신고가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신고보상제 사이트 캡처

실제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등이 밝힌 지난해 8월 기준 소비자 직접 반환율은 59.1%에 그쳤다. 독일-핀란드 등 선진국의 소비자 직접 반환율이 97~99%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여의도에 거주 중인 직장인 이모(32)씨는 “‘혼술(혼자 마시는 술)’을 하며 쌓인 빈 소주병 3~4병을 근처 편의점 두 곳에 반환하러 갔다가 거부당했다”며 “한 곳은 ‘여기서 산 게 맞다’는 영수증까지 요구하더라. 솔직히 그런 수고를 해봤자 고작 몇백원 버는 건데 항의하자니 내가 푼돈에 목숨 거는 ‘짠돌이’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 그 후 술병은 오피스텔 내 재활용품 수거함에 내다 버리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빈 병이 고물상 등을 거치면 회수 과정에서 파손되거나 이물질이 유입되는 경우가 많아 재사용률이 급격히 떨어진다. 소비자 직접 반환율이 높은 독일은 2017년 기준 빈 병 재사용 횟수가 40~50회를 기록했지만, 우리는 고작 5~10회 수준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씨처럼 빈 병을 소매점에 갖다 주지 않는 사람이 늘면 공병보증금반환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질 우려가 있다.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해 모은 빈 병들.

◆업주들 “빈 병 보관하기도 힘든데 수수료도 턱 없이 낮아”

 

빈 병 수거를 꺼리는 업주들도 할 말은 있다. 통로에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작은 편의점을 운영하는 편의점 점주 A씨는 “손님들이 가져오는 공병 중에는 물로 제대로 헹구지 않아 더러운 것도 있고 심지어 안에 담배꽁초가 든 병도 있다”며 “이런 술병들을 매장 안에 보관하면 공간도 비좁고 악취까지 난다”고 답답해했다.

 

보증금을 반납해줘도 큰 이득이 남지 않는다며 볼멘소리도 했다. A씨는 “힘들게 빈 병을 반납해줘도 우리에게 떨어지는 취급 수수료는 100병당 고작 1000원 정도”라며 “요새 소주 1병도 다 카드 결제하지 않나? 그런데 보증금은 또 현금으로 돌려줘야 한다. 얼마 안 되지만 그 카드 수수료도 사실상 손해를 보는 것”이라고 계산기를 두들겼다. 업계에 따르면 주류 제조사가 도소매업체에 지급하는 수수료는 소주병은 개당 28원, 맥주병은 개당 31원이며 이 중 소매상에게 돌아오는 금액은 소주병은 개당 10원, 맥주병은 11원이다.

 

제품 라벨에 반환보증금 ‘100원’이 표시되어 있다.

◆빈 병 보증금, 제품값에 이미 포함... 수거 거부 시 과태료 최고 300만원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소매업자들의 빈 병 수거 무단 거부는 300만원 이하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반환 요일이나 시간제한, 1일 30병 미만에 대한 구입 영수증 요구, 1인당 반환 병 수 제한 등의 행위도 마찬가지다. 판매한 곳이 아니라며 반납을 거부하는 것도 안 된다.

 

빈 병 보증금은 소비자가 정당히 받아야 하는 돈이다. 재활용 가능한 공병에 담긴 주류나 청량음료 판매금액에 이미 반환 보증금이 포함돼있기 때문이다.

 

보통 소주의 공병보증금은 100원, 맥주는 130원이다. 즉, 소주를 1116원주고 샀다면 빈 병 보증금 100원을 뺀 1016원이 실제 소주 가격인 셈이다. 이를 방증하듯 2017년 1월 공병반환금이 60~80원 인상되면서 편의점과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는 소주와 맥주 가격을 약 50~100원 올린 바 있다.

 

빈용기보증금 신고보상제 사이트 캡처

◆전문가 “아파트 등 거점 중심으로 무인수거기 확대 설치해야”

 

환경 전문가들은 소비자가 마음 놓고 직접 빈 병을 반환하는 문화가 생기도록 무인수거기를 확대 설치하는 등 제도 및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재 대형마트 등을 중심으로 국내에 설치된 빈 용기 무인수거기는 지난해 8월 기준 약 108대로 알려졌다.

 

자원순환사회연대 김미화 총장은 통화에서 “소매점 같은 경우 공간이 작고 그렇다 보니 (빈 병을) 수거해서 놔둘 데가 없어 수거를 거부하는 사례가 보고된다”며 “이 때문에 소비자가 무거운 빈 병을 반납하려 갖고 갔다가 도로 집으로 가져오는 불편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총장은 빈 병 보증금 반환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거점을 중심으로 무인수거기의 확대 설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현재는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무인수거기가 설치되어 있다. 차량을 갖고 이동하지 않으면 공병을 반납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독일-핀란드 등은 주택 간 거리가 멀고 보통 마트에 차를 갖고 가는 경우가 많아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무인수거기가 설치된 경향이 짙다. 우리나라는 생활 스타일이 이와 다르다”고 설명했다.

 

김 총장은 이어 “정부는 대형마트 외에 아파트 단지 등 시민들이 재활용품을 배출하기 편한 곳을 진단을 통해 거점으로 삼고 이를 중심으로 무언 수거기를 확대 설치할 필요가 있다”며 “그저 ‘재활용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뿐만이 아닌 구조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일보는 환경부 담당부서에 수차례 전화 연결을 시도했으나 받지 않았다.

 

글·사진=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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