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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선생이 구한 신흥사 경판, 60여년 만에 제자리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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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3-26 09:52:09 수정 : 2019-03-26 15:2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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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리처드 락웰씨가 1950년대 촬영한 강원도 속초의 신흥사. 신흥사 제공

6·25 전쟁이 끝나고 얼마되지 않은 1954년 10월, 미군 중위 리차드 B. 락웰은 근무지이던 강원도 속초의 신흥사 안팎을 컬러 사진으로 담았다. 신라의 자장율사가 653년 ‘향성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뒤 몇 번의 중창을 거치고 당시에 이른 고찰이었다. 전쟁을 겪은 사진 속 신흥사는 폐허나 다름이 없다. 일부 전각은 무너져 내려 기둥만 남았고, 대부분은 쇠락해 옛 명성의 흔적을 찾기란 어렵다. 전각 내부를 장엄하게 장식했을 불화는 뜯겨져 나가 스산함만 가득하다. 

 

락웰씨는 전쟁으로 인한 문화재 피해의 현장을 보여주는 증거인 이 사진을 속초시립박물관에 기증했다. 전쟁 와중에 땔감으로 쓰일 뻔 했던 것은 가까스로 피했으나 미국으로 유출되는 운명은 피하지 못한 신흥사의 경판 한 점도 65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전쟁이 문화재에 남긴 깊은 상처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자료들이다. 

 

◆누군가 뜯어내 미국으로 유출한 신흥사 불화

 

신흥사 극락보전의 내부 모습. 신흥사 제공 

락웰씨의 사진 중 극락보전 내부를 찍은 사진에는 불상 3기가 나란히 앉아 있다. 2011년 보물 1721호로 지정된 ‘속초 신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불상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건 한 눈에 알 수 있다. 더 눈길을 끄는 건 불상 뒷편 벽이다. 불화가 있어야 할 자리가 분명한데 휑하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군가 그 벽에 있던 불화를 뜯어갔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무엇이 있었을까. 대답을 알려주는 다른 사진이 있다. 락웰씨가 이 사진을 찍기 서너 달 전 다른 미군이 찍은 사진에는 불상 뒤로 ‘영산회상도’(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담은 불화)가 뚜렷하다. 그러니까 두 사진이 찍힌 불과 서너 달 정도 사이에 불화가 사라진 것이다.  

 

신흥사 명부전의 내부 모습. 신흥사 제공

락웰씨의 사진 중에는 극락보전과 비슷한 상황의 명부전을 담은 것도 있다. 5기의 시왕상이 앉아 있는데 뒷편의 그림을 떼어낸 흔적이 분명하다. 여기에는 시왕도(죽은 자의 죄를 심판하는 열 명의 왕인 시왕을 그린 불화)가 있었다고 한다. 락웰씨의 사진은 전쟁을 전후한 혼란의 와중에 문화재에 놓여 있던 열악한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인 셈이다. 

 

신흥사의 영산회상도와 시왕도는 현재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에 소장되어 있다. LACMA는 영산회상도를 1990년대 한 한국미술 전문 딜러에게 구입했다고 한다. 당시 6조각으로 나뉘어져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았고, 전시를 할 수 없어 수장고에만 두었던 것을 2010년부터 한국의 전문가에 맡겨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리영희 교수가 살려낸 신흥사 경판

 

리처드 락웰씨가 반환해 60여 년만에 제자리를 찾은 신흥사 경판. 신흥사 제공

락웰씨가 이번에 돌려준 경판 한 점은 사찰에서 수행했던 일상의 천도의식과 의례를 기록한 ‘제반문’(諸般文)를 새긴 것이다. 제반문 경판은 원래 44점 가량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데 6·25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사라지고 지금까지 14점만 전했다. 경판이 이렇게 사라지고, 일부는 남게 된 사연이 기막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신흥사에는 육군 본부가 차려졌고, 일부 병사들이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변변한 막사가 없었던지 병사들이 추위를 피하기 불을 피우며 신흥사의 목재들을 가져다 썼고, 이 중에 경판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17세기 조선시대 인쇄술을 보여주는 자료이자, 당대 사찰의 경전 간행 사실을 증언해 주는” 사료적 가치가 큰 문화재가 땔감이 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를 막고 남은 것을 보전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한 게 당시 1군 사령부 소속의 리영희 중위였다.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고 리영희 한양대 교수가 젊은 시절 신흥사 경판을 구한 것이다. 

 

신흥사 경판을 반환한 리처드 락웰씨(가운데)와 지상 스님,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신흥사 제공

살아남은 경판 중 하나를 미국으로 가져간 락웰씨는 일찍부터 한국으로 반환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었다. 마침 사진자료를 기증하게 되면서 경판의 반환도 실천하게 됐다. 뒤늦은 것이기는 하나 조건없는 반환을 결정한 락웰씨에게 신흥사는 감사패를 전달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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