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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만 갈아입은 공산당, 신진 엘리트로 부활 [신통일한국으로 가는 길]

입력 : 2019-03-26 06:00:00 수정 : 2019-03-26 15: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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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체제전환국을 가다 ⑥ 불가리아

“체제전환은 생존의 문제이다. 변화에 적응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극명하다.”(다니엘 보베바 전 불가리아 부총리)

 

국제 경제 전문가로 불가리아 부총리를 지낸 보베바 전 부총리는 체제전환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불가리아에서 체제전환 기간 가장 성공적으로 변화에 적응한 이들은 과거 공산당의 독재 시절 기득권을 누렸던 당·정·군 간부 출신 인사들이다. 지난해 12월 말 찾은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 만난 전문가들과 현지인은 공산당 시절부터 누적된 모순에 대한 염증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공산당 체제 유지를 위해 주민들을 통제하는 데 앞장섰던 비밀경찰 고위 간부 인사 몇몇은 지하 범죄조직과 손잡고 밀수와 불법적 방식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았다. 1990년 체제전환 이후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이른바 신진 정치 엘리트들도 뿌리를 따지고 보면 과거 공산당 시절의 엘리트 그룹과 맥이 닿아 있다. 보이코 보리소프 총리가 대표적이다.

불가리아의 국가안보와 법 집행을 관할하는 내무부 관료 출신인 보이코 보리소프 총리. 그는 체제전환 이후 관료 직을 사임하고 사설 경비·보안 업체를 차린 바 있다. 공산당 시절 우리의 경찰청장에 해당하는 요직을 차지했던 인물로 독재자였던 토도르 지브코프 경호를 맡았던 인물이다. 요르단 바에프 소피아대 교수는 “불가리아의 현재 집권당(GERB) 지도자 상당수가 과거 공산당 시절 기득권을 누렸던 이들”이라며 “전 국회의장이자 (지난해 12월) 현재 법무부 장관인 트세츠카 크사차에바도 그녀의 지역구에서 공산당 간부를 지낸 인물이고 전직 대통령인 플레브네리에프 역시 공산당 간부의 아들이자 그 스스로 젊은 시절 공산당 활동가로 활동했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바에프 교수는 “체제전환 이후 나타난 신진 정치인 대부분이 반공산주의자를 자처하고 친미(親美)·친서방을 부르짖고 있지만 사실 그들은 이념적 원칙을 지향하는 이들과는 거리가 멀다”며 “그들은 이념보다는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기회주의적 선택을 한 인물들”이라고 지적했다. 공산당이라는 당명을 바꾸고 간판만 바꿔 달았을 뿐 그 안을 채운 인물은 그 나물에 그 밥이었다.

공산당의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불가리아의 최대 문제는 부패다. 공산당 체제 아래 사회주의 계획경제 시스템을 버리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틀 채택한 지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옛 공산당 시절부터 누적된 부패 사슬이 여전히 불가리아의 정치·경제·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현재 집권당 정치인 4명이 시장가격보다 낮은 값에 아파트를 분양받은 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불가리아 반부패위원회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으며 이 중 한명인 크사차에바 법무부 장관이 23일(현지시간) 더는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총리에게 사임계를 제출한 상태다.

 

수도 소피아 시내 중심지에 있는 대통령궁 건물은 불가리아가 처한 이러한 모순적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다. 대통령궁 건물 앞에서는 근엄한 표정의 근위병이 출입구를 지키고 서 있고 매시간 교대식을 진행하지만 대통령궁 건물 모퉁이를 조금만 돌아가면 같은 건물에 고급 카지노 호텔이 성업하고 있다. 카지노와 대통령궁이 바로 붙어 있고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다. 연극배우로 활동 중인 소피아 출신의 니키 스타니슬라브(26)는 “체제전환 이후 불가리아의 상징적 모습을 보여주는 공간”이라며 “카지노와 대통령궁이 바로 나란히 붙어 있는 곳은 불가리아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 시내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는 소피아 여신상. 원래 이곳은 블라디미르 레닌 동상이 놓여 있던 곳이었으나 공산당 붕괴 이후 레닌 동상이 철거되고 소피아 여신상으로 교체됐다. 소피아=김민서 기자

계층별 양극화와 도농 격차도 불가리아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제다. 불가리아 국영기업의 급격한 민영화는 빠른 속도의 도시화를 초래했고 그만큼 부작용이 컸다. 체제전환 이후 헐값에 국영기업을 외국자본에 팔아먹은 데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여전한 이유다. 나코 스테파노프 소피아대 교수는 “국영 항공사였던 ‘BGA 발칸’은 15만달러에, 불가리아 최대 금속 기업인 ‘크레미코프츠시’는 단돈 1달러에 외국 자본에 넘어갔고 불가리아 최대 국영 통신기업인 BTK도 외국 기업에 넘어갔다”며 “이런 사례가 수도 없이 많은데 대부분 민영화 기간 이뤄진 정치권 비리와 연계된 부패에 바탕을 둔 올바르지 못한 거래였다”고 말했다.

체제전환기를 전후한 1990년대 초 생필품과 식량 부족 상황이 심각했던 당시 빵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이 늘어섰던 모습.  출처= lostbulgaria.com

부패의 근원과 공산당이 밀접한 관계지만 불가리아 국민은 공산당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바에프 교수는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불가리아는 폴란드나 루마니아와 달리 조사응답자의 70%가 옛 소련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지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불가리아가 옛 소련의 가장 충실한 ‘위성국가’였고 체제전환 직전 불가리아 공산당이 제한적이나마 경제개혁·개방 정책을 시행했던 기억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피아=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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