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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빵이 무서워요”…아이 앞에서 “뻐끔뻐끔” 뻔뻔한 흡연자들 [김기자의 현장+]

입력 : 2019-03-23 08:00:00 수정 : 2019-03-23 11: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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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눈높이 담배 ‘길빵’(길거리 흡연의 속어) / ‘길빵’이 무서워 “피해 다녀요” / 담배 불똥이 아이의 눈에 들어 갈 수도 / 한손에는 아이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 담배 연기 날려 / 금연구역 ‘푯말’ 무용지물 / 평균 10∼20명 동시에 담배 연기 ‘뻐끔뻐끔’ / 보행로 바닥이나 환풍구는 담배꽁초로 가득 ‘눈살’ / 흡연금지 ‘맞아?’ 비웃는 흡연자들

“혹시나 아이가 다칠까 봐 겁납니다. 담배 연기 피해 빨리 지나가고 싶은데, 아이 때문에 빨리 걸을 수도 없어요. 담배를 피우시는 분들이 주변을 배려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한 아이의 손을 잡고 걷던 한 주부는 담배를 피우며 걷는 흡연자를 보자 머뭇대다 멀찌감치 떨어져 걷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한 건물 앞 보행로. 담배를 입에 문 흡연자들이 보행로를 점령했다. 흡연자들은 궐련형 전자담배와 일반 담배를 입에 물고 삼삼오오 모여 피우고 있다. 지나는 사람들은 담배 연기에 질색하며 손부채 질까지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한 손에 든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이날 담배 연기는 눈에 보일 정도로 흩날리고 있었다. 비교적 넓은 보행로지만, 담배 연기는 보행자를 감싸 안은 듯 날리고 있었다. 뿌연 담배 연기 사이로 일부 시민들은 빠른 걸음으로 걷거나 코를 막고 지나가기도 했다.

 

‘흡연금지’ 푯말이 붙은 KT사옥 앞 환풍구 주변에는 10∼30명의 흡연자들이 모여 동시에 뿜어내고 있었다. 담배 연기에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 것이 일상이 됐다. ‘흡연금지’ 푯말 앞에서 태연하게 담배 피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흡연금지’라고 적힌 푯말과 경고문이 곳곳에 붙어 있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다. 경고를 무시하듯 ‘흡연금지’ 푯말 주변에는 담배꽁초가 든 종이컵이 쌓여 있었다.

흡연자들이 버린 종이컵 속에는 어김없이 담배꽁초가 가득 들어 있다.

 

인근 직장인 정 모씨 “이곳은 매일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KT에서도 직원들 관리가 필요한데, 하지 않는 것 같아요”라며 “여기서 자기들이 좋다고 막 피우면 지나는 사람들은 담배 연기를 다 마셔야 하는데, 누가 좋아 하겠어요”라며 언성을 높였다.

 

지하철 환풍기에는 담배꽁초가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가득했고, 인근 화단 곳곳에는 어지럽게 널린 꽁초가 한 몇십 개는 넘어 보였다. 화단 깊숙하게 버리진 담배꽁초에서는 특유의 악취가 풍겼다. 여기뿐만 아니었다.

 

눈에 띄는 곳마다 담배꽁초가 흔하게 나뒹굴고 있었다. ‘흡연금지’ 푯말 아래에는 재떨이를 대신하는 종이컵이 놓여있고, 그 안에는 먹다 남은 커피와 함께 담배꽁초가 가득했다. ‘흡연금지’ 푯말이 있지만 사실상 금연구역이 아닌 사실상 ‘흡연구역’이 됐다.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 보행로. 담배를 입에 문 흡연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피우고 있다.

 

인근에 흡연구역이 있지만, 걷기 귀찮다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들을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흡연자들이 버린 종이컵 속에는 어김없이 담배꽁초가 들어 있었다.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속에는 담배꽁초와 함께 분리되지 않은 채 환풍구에 놓여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담배꽁초는 늘어갔다. 쓰레기 수거함이 없는 탓도 있었지만, 각종 플라스틱 용기와 일회용 용기들이 분리수거가 안 되면서 중구난방으로 쌓여 갔다. 무엇보다 음료 등이 여과 없이 담배꽁초가 담긴 채로 버려져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민들이 많았지만, 흡연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하철 환풍기 주변 모인 흡연자들 입에서는 뿜어 나오는 담배 연기는 끊임없이 피어올랐고 사람들은 최대한 멀찌감치 떨어져 지나가거나 손으로 코를 막았다.

 

아이와 손을 잡고 이곳을 지나던 이 씨는 “흡연구역이 있으면 제발 거기서 담배를 피웠으면 좋겠다”며 “담배 냄새와 연기도 싫지만, 자칫 담뱃불이 아이 눈을 찌를까 봐 불안하다”고 불편함을 드러냈다.

일회용 용기 속에는 담배꽁초와 함께 분리되지 않은 채 환풍구에 버려져 있다.

 

한 아이의 손을 잡고 걷던 한 주부는 담배를 피우며 걷는 흡연자를 보자 머뭇대다 아예 멀찌감치 떨어져 걸었다. 길거리 흡연은 어른·아이 가릴 것 없이 연기가 사람에게 갈 뿐만 아니라, 흡연자 입에서 뿜어 나오는 담배 연기는 비흡연자에게는 이로 표현할 수는 고통이다.

 

광화문을 찾은 시민 최 씨는 “우리가 그렇다고 쳐도 애들은 무슨 죄냐. 연기를 피할 수도 없고 노릇이 아니냐. 담뱃재를 아무렇게나 털다 애들이 다칠 수도 있는데, 다치면 책임 질 것이냐” 언성을 높이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서울 도심 한복판인 광화문 거리에서 길거리 흡연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현행법상 보행 흡연은 불법이 아니다. 간접흡연 피해를 보더라도 호소할 방법이 없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행태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흡연 문화가 비교적 관대하다고 알려졌지만, 간접흡연의 고통에 대한 공감대도 확산되면서 ‘보행 흡연’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날 만난 김 씨는 “강력한 단속이 필요하다. 버젓이 담배 피우고, 침도 뱉는다”며 “너무 불쾌하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하소연했다.

한 시민이 담배를 피우면서 걷고 있다.

 

2017년 8월에 서울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보행 중 흡연금지를 찬성한 비율은 88.2%에 달했다. 서울시민 10명 중 9명꼴이다. 반대한다는 의견은 7.7%에 불과하다. 서울시민 중 성인 남성 흡연율은 36.5%로 미국·호주보다 2배 이상 높다.

 

일본에서는 2001년 도쿄 지요다 구에서 길거리 흡연자의 담배 불똥이 어린아이의 눈에 들어가 실명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노상 흡연에 대한 반대 여론이 급격히 높아졌고, 이듬해부터 부분적으로 규제 조례가 도입됐다.

 

종로 보건소 한 관계자는 “그 곳은 금연구역이 아니어서 단속이 불가능한 지역이다”며 “단속원들도 계도만 한다”고 밝혔다. 이어 “민원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잘 알고 있다”며 “현실적인 단속을 할 수 없어 답답한 실정이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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