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삶과문화] 예술이 걷는 서로 다른 길

관련이슈 오피니언 최신 , 삶과 문화

입력 : 2019-03-22 23:03:33 수정 : 2019-03-22 23:03:3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전공 영역별 기질·태도 달라 / 타인 관찰 통해 자신도 성찰 / 막연한 예술적 관념 넘어서 / 예술세계의 다양성 인정해야

3월, 다시 봄이다. 예술학교에 신입생이 입학했다. 예술가, 연구자, 연출·기획자 등을 꿈꾸며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우리 새내기들에게 올해도 나는 여느 해처럼 한마디 조언을 건넸다. 자신의 전공과 다른 예술을 공부하는 친구를 궁금해하고 다가가 보라는 것이다. 두 곳으로 나누어진 캠퍼스에서 상호 동질성과 애교심을 느끼거나 요사이 부쩍 유행하는 ‘융합예술’을 위해 지식을 쌓으라는 권유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타인을 관찰함으로 해서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보라는 보다 기초적인 생각이 그 이유였다.

음악, 무용, 미술, 전통예술, 연극, 영상으로 전공 영역의 범주를 나누고 있는 우리 학교는 언뜻 보기에는 하나같이 ‘예술’을 전공하는 이들이 모인 학교이지만, 전공영역에 따라 학생들의 기질과 학습태도는 매우 다르다는 말에 다수가 공감한다. 음악이나 무용 분야의 학생들은 대부분 초등학생 때부터 훈련해 온 상당한 기술력을 견주며 대학에 지원하는 반면 연극이나 영상 분야의 입시생들은 삶에 대한 관찰과 경험을 중요시하며 상대적으로 전문기술의 사전 습득은 적게 요구받는다. 예술 역량과 숙련 과정의 분야별 차이는 예술가로 성장해 가는 젊은이의 사고와 행동에 제법 영향을 미쳐서 학생들은 때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하다’고 바라보기도 한다.

주성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음악학

어린 나이부터 훈련을 시작하는 예술학도의 삶에는 학원에 데려가고 독려하는 엄마나 피아노를 빌려주고 연습을 허락하는 동네교회 목사처럼 도움을 주는 어른의 존재가 대체로 전제돼 있다. 고달프고 어려운 예술적 기술의 습득과정은 스승을 ‘마스터’로 존중하고 동경하면서 기술을 넘어 그의 행동과 세계관조차 닮으려는 학생을 낳기도 한다. 신뢰를 넘어 순종적 관계로까지 나아가는 이들의 부모나 스승과의 관계를 연극이나 영상 전공 학우들은 이해하기가 어렵고, 반대로 음악이나 무용 전공생은 비판적 사고와 자기주장이 강한 그들을 거칠다고 느끼기도 한다.

18세기 전후 유럽 궁정의 귀족문화로서 발달해온 서구 클래식음악의 가치관은 20세기 문화산업의 발명품인 영화가 추구하는 것과 크게 달라서, 교과과정을 준비하는 교수의 토론뿐 아니라 교육받는 학생들의 소소한 생활 습관이나 선택에서 그 차이가 드러날 때가 있다. 앙상블이 중요한 음악원생의 왁자지껄한 강의실 분위기와 흙덩이를 앞에 두고 숙고하는 미술원생의 차분한 분위기가 비교되기도 한다. 예술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존재하는 영역 간의 이러한 차이를 배타적으로 바라보기보다 호기심으로 다가가 이해하고자 하면, 친구의 ‘이상함’ 이면에 있는 예술 속성의 차이에 대한 발견이 의외로 흥미롭고, 관찰자는 상대와 다른 자신에 대하여 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예술이라고 해서 다 같은 예술이 아닌 셈이다. 한 시간이면 성악가는 노래를 멈추고 휴식이 필요하지만, 상황을 맞추기 시작한 연극의 참여자들이나 캔버스를 펼치고 작업을 시작한 작가에게 한 시간의 경과는 이어지는 활동을 위해 이제 막 시동이 걸린 시점이다. 오랜 시간 한자리에 앉아 집중해야 하는 작업이 있는가 하면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 작업이 있고, 현재적 삶에 대한 주목보다 200∼3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 남긴 유물과의 대화가 먼저인 예술도 있다.

학년이 올라가고 전문가의 모습에 차츰 가까워지는 학생을 바라보면 예술세계가 지닌 다양함, 그리고 개인과 환경의 관계가 신비롭다는 생각이 든다. 몰입하고 빠져드는 경험적 교육의 세계가 자신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 학생들에게는 예술세계로의 침잠인 양 즐겁게 느껴지는가 보다. 하지만 언젠가 저들은 자신의 세계가 가진 유리벽을 인지하고 그 너머 더 큰 세상으로 도전하게 될 것이다. ‘예술’이라는 막연한 관념을 넘어서 예술세계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적 이해와 교육적 장치가 젊은이들의 이 길을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기를 다시금 간절히 바라게 된다.

 

주성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음악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