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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니 ‘나쁜 기억’조차 점점 흐려져 / 치매 치료약 없어… 평소 인성·건강 관리를

치매를 걱정하게 되는 노년기에 들어섰기 때문일까. 드라마 ‘눈이 부시게’ 속, 알츠하이머에 걸린 김혜자씨의 연기에 오랫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어려서부터 덜렁거리느라 실수를 많이 하긴 했으나 갈수록 깜박깜박 놓치고 실수하는 것도 많아 매사가 조심스럽고, 단순한 일상마저도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무언가를 잃어버리거나 중요한 할 일을 잊어버리지 않으려 하니, 자꾸 확인하느라 시간도 배로 든다. 화장 안 하고, 보석 하나 걸치지 않아도, 휴대전화와 지갑을 찾느라 들락날락. 외출하는 것은 그러려니 하지만 과거의 실수를 잊어버리고 다시 똑같은 바보짓을 할 때면 나 자신에 정말 화가 나기도 한다. 도대체 실수와 실패로부터 지혜가 나온다고 누가 말했던가.

엉뚱한 실수를 한 다음, ‘늙어서 그래’ 라고 변명하면 젊어서 얼마나 정신없이 살았는지 잘 아는 아들은 “엄마는 옛날에도 그랬는데” 하고 웃어서 더 기가 죽는다. 새로운 것도 척척 받아들이고 반짝반짝 능력이 빛나는 젊은이 앞에 무능한데, 나만 나이 먹는 것 같아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반대로 망각이 나름 축복이 될 때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과거에 몹시 화가 나거나 억울했던 사건이 점점 흐려지는 것도 참 좋은 변화다. 물론 행복한 망각이 노인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아이를 여러 명 낳았던 시절엔 노인들이 몸을 막 푼 산모에게 “지금 고생한 것, 아이 키우다 보면 잊어버리고 금방 또 낳아 키울 것이다”라고 덕담을 하곤 했었다. 실제로 장성해 일가를 이룬 두 아들을 볼 때마다, 어쩜 그렇게 속 하나 썩이지 않고 저절로 자랐을까 착각할 때가 많다. 잘 따져 보면 자식 키우면서 속상하고 실망하고 불안할 때가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러나 현실에서 알츠하이머 같은 치매까지 그렇게 속 편히 생각할 수만은 없다. 길도 잃어버리고, 대소변도 못 가리고, 엉뚱한 행동으로 본인과 주변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치매 노인의 간병·간호 때문에 가족 전체가 붕괴되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치매를 치료하는 좋은 약물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 치매와 노화로 죽어버린 신경세포를 되살리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정신건강전문의가 처방하는 약을 꾸준히 먹는 것만큼 예술치료·동작치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반려 동물이나 식물을 키우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치매에 걸리면 원래 가지고 있던 본인의 성격과 관계가 더 극대화될 확률이 높다. 주변과 가족에게 따뜻했던 노인은 귀여운 치매 환자가 되지만, 젊어서 포악하거나 음흉스러운 성격이었다면 망상으로 번져 주변을 끔찍하게 괴롭히기도 하니 더 늦기 전에 마음부터 잘 닦아둘 일이다. 내분비계 이상, 대사성 질환, 고혈압, 고지혈증 등 예방할 수 있는 병도 있으니 평소 검진을 잘 받고 균형 잡힌 식사와 운동,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긴요하다. 혹시 치매 유전자가 있다 하더라도 인성과 환경을 잘 유지하면 속도가 훨씬 늦춰져 죽기 전까지 괜찮을 수도 있다. 정신 말짱할 때 선업을 열심히 베풀어, 혹시라도 정신 줄 놓은 다음을 위해 주변에 잘 저축해 놓는 것이 평화롭고 존엄한 노년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가 아닐까도 싶다.

이나미 서울대병원 교수·정신건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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