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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언제부터 알코올에 끌리게 됐을까

입력 : 2019-03-16 03:00:00 수정 : 2019-03-15 21: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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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메리카 우림 원숭이 관찰 / 잘 익은 과일 섭취 보며 실마리 / 알코올 섭취의 진화적 기원 다뤄 / “과일에 알코올 발효 돕는 효모 / 야자엔 맥주 버금가는 양 포함” / 선조들 과일 즐긴 흔적 화석 남아
로버트 더들리 지음/김홍표 옮김/궁리/1만5000원

술취한 원숭이/로버트 더들리 지음/김홍표 옮김/궁리/1만5000원

 

오늘 저녁 우리가 술을 마시는 이유는 숱하게 많다. 직장 상사에게 호되게 당한 게 억울해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즐거워서, 자식이 또 사고를 친 게 속상해서, 혹은 그저 술이 고파서…. 술은 동서고금에 인류와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렇게 긴 시간동안, 온갖 이유를 갖다붙이며 술을 마셔왔을까. 심지어 우리는 그것이 피괴적이고 위험천만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고, 듣고, 직접 체험해오지 않았는가. 인류가 술을 만들고, 즐겨온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생물학자인 저자는 15년전 중앙아메리카의 우림에서 원숭이가 잘 익은 과일을 먹는 것을 관찰하면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고 한다. 그것을 단서로 고민 끝에 내놓은 대답은 이렇다. 

 

“영장류가 알코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각 장치와 섭식 행동을 진화시켰다는 생각의 틀을 발전시켜왔다. 우리의 조상들로부터 면면히 내려온 진화적 유산이 우리의 음주 행위를 규정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술은 오랜 친구인 동시에 심각한 위험 요인 중 하나였다. ‘술 취한 원숭이’는 인류가 술을 마시는 근본적인 이유를 진화의 과정에서 동물이 과일에 포함된 알코올을 섭취한 데서 찾는다. 궁리 제공

출판사의 소개에 따르면 저자는 “영장류와 알코올 섭취의 진화적 기원을 다룬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을 학계 최초로 제시한” 학자다. 이야기는 씨앗을 퍼뜨리려는 식물, 과일을 통해 영양분을 얻는 동물의 공존에서 시작한다.

 

과일을 생산하는 속씨식물은 백악기 무렵인 1억4000만년 전 처음 지구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씨를 둘러싼 영양가 있는 과육에는 탄수화물과 지방이 풍부해 수많은 동물을 끌어들인다. 과일을 먹은 동물은 그 보상으로 똥을 여기저기 뿌리면서 식물의 번식을 돕는다. 잘 익은 과일은 동물의 식량이 되고, 식물은 자손을 퍼뜨리는 것이다. 과일은 많은 동물의 주요 식단이 됐고, 주요 영장류와 포유동물에게도 주메뉴였다.

 

음주의 진화적 기원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과일에 알코올 발효에 참여하는 효모가 있고, 따라서 과일을 먹는 동물은 불가피하게 알코올을 소비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잘 익은 과일이나 과도하게 익은 과일 속에 함유된 알코올 알코올 농도는 0.6%에서 4.5%까지 다양했다”며 “(열대 지역에 가장 중요한 영양 공급원인) 야자에 포함된 알코올의 양은 약한 맥주에 포함된 알코올 함량에 필적할 만했다. 이 열매를 배불리 먹은 동물이 상당한 양의 알코올에 노출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고 적었다. 

 

인류의 직계 선조도 과일을 쫓아다녔다는 증거는 화석에 남아 있다. 저자는 “알코올은 우리 선조들의 식단에 무척 자연스럽게 편입되었으며 이런 점에서도 다른 신경흥분제 물질과는 질적으로 구분된다”고 주장했다. 과일을 찾고, 소비하면서 알코올에 적응하고, 발달된 어떤 형질이 인간에 탑재된 것이다. 따라서 “식사를 하면서 규칙적으로 마시는 반주는 우리의 진화적 궤적을 따르는 행동이며 강제적인 절제는 때로 매우 힘이 든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인류가 알코올에 적응해 진화해 온 만큼 생태계에 존재하는 정도로 소량 노출되는 것은 확실하게 도움이 된다. 알코올을 전혀 섭취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다. 문제는 과도한 섭취다. “짧은 시간 안에 신경이 흥분 상태에 이르도록 인위적으로 가공한 알코올이 거의 무제한 공급되는 상황에서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접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을 마셔댄다”게 술이 초래하는 심각한 위협의 핵심이다. 저자가 특히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알코올 중독이다. “진화적인 시간 동안 구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알코올과 탄수화물이 비정상적으로 넘쳐나는 오늘날, 이런 물질에 대한 탐닉은 결국 부적응의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음주의 기원을 진화를 통해 밝히려는 시각 자체가 충분히 흥미로운 책이다. 관련 분야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다만 저자가 설명하는 중요한 논점들이 근거가 명확치 않은 유추이거나, 연구가 부족해 아직은 답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아쉬워하는 독자들이 있을 듯하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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