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김치·된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물론 젊은이와 어린이 중 김치·된장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대체로 나이가 들수록 그 맛에 흠뻑 빠져든다.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한인들 역시 이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재외 한인들은 김치·된장을 언제나 먹을 수는 없다. 음식은 몸 냄새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현지인과 접촉이 잦은 한인은 체취를 유발하는 음식을 피하곤 한다. 한국인들은 거의 못 느끼지만, 김치에는 마늘이 많이 들어 있어 특유의 체취를 유발한다. 일반 된장은 냄새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지만 청국장은 냄새가 상대적으로 오래간다. 그러므로 재외 한인들은 금요일 저녁이나 주말 특식으로 청국장을 먹는다.
청국장은 콩을 푹 삶아서 김을 뺀 다음 보자기를 여러 겹으로 싸 2~4일 정도 아랫목에서 띄워 만든다. 충분히 띄운 청국장은 콩에서 가는 실 같은 끈이 생기고, 일반 된장보다 훨씬 강한 고유의 냄새를 가진다.
21년 전 미국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생활할 때의 일이다. 금요일 저녁, 우리 가족은 모처럼 청국장 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그런데 두 돌 된 아이가 거실 구석에서 생쥐가 다니는 것을 발견했고, 놀란 우리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전화해 그 사실을 알렸다. 관리사무소의 대응이 그다지 민첩하지 않은지라, 며칠 지나서야 직원이 우리 집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전화한 지 5분 만에 관리사무소 직원이 우리 집에 찾아왔다. 초인종이 울렸을 때 우리는 청국장을 끓이고 있음을 깨닫고 크게 당황했다. 문을 열어주면서 그 직원에게 “미안하다”라는 말을 연발하며 “한국의 전통 수프이고, 콩을 발효시켜 만든 것”이라고 열심히 설명했다. 그 직원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을 했지만,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진 못했다. 그는 준비해온 덧신을 신발 위에 착용하고, 우리 집에 들어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생쥐를 잡은 다음,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입장을 대표해 “불편하게 해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쿰쿰한 냄새로 불편을 끼쳐 미안하다”라고 반복해 말했다.
그 뒤에는 청국장을 가루로 만들어 특유의 냄새를 거의 없앤 제품을 시도해 봤지만, 구린 냄새를 풍기는 정통 청국장 맛을 대체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그 일이 있고 난 뒤 그곳에서 정통 청국장을 끓여 먹은 기억은 없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더불어, 당혹한 와중에도 아파트 입주민의 입장을 배려해 표정을 관리하려던 그 직원의 얼굴도 떠오른다.
청국장은 한국관광공사가 2018년 페이스북, 웨이보 등 해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회원 94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가장 먹어보고 싶은 이색 한식’ 중 6위를 차지했다. 청국장이 ‘외국인이 마냥 싫어하는 음식’이 아니라 ‘외국인의 기호를 유발하는 음식’으로 재평가되고 있다는 점이 반갑다.
삭힌 홍어, 멸치젓갈, 블루 치즈, 취두부, 두리안 등 독특한 맛과 향을 가진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좋고 싫음은 뚜렷이 갈린다. 사람들은 국가와 민족의 경계 속에서 또는 그 경계를 뛰어넘어 음식을 즐기지만 개인의 취향 차이 역시 매우 크다는 점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장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