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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듯 익숙한 형제의 나라… 첫눈에 설(雪)렘 [박윤정의 원더풀 터키]

입력 : 2019-03-14 10:00:00 수정 : 2019-03-13 21:5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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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카이세리

비행기가 자정이 넘어서야 이륙을 준비한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라 졸린 눈을 비비며 설레는 마음으로 터키항공(TK) 91편에 오른다. 목적지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국가 터키다. 과거 오스만 제국의 중심으로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영향력을 끼치던 대제국을 건설했던 나라, 유럽일 수도 아시아일 수도 있는 나라 터키는 우리와 형제의 나라라고 칭할 만큼 오랜 역사적 관계를 맺어왔다.

아름다운 설경이 끝없이 펼쳐진 호텔 주변. 스포츠를 즐기는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든다.

우리나라 고대사에서 익숙한 ‘돌궐’은 터키인이 스스로를 부르는 ‘튀르크’를 한자의 음으로만 표기한 것이다. 돌궐과 고구려는 귀족과 왕족 간의 혼인외교를 통해 친밀한 관계를 맺어왔으며 당시 외교 서신에도 ‘형제’라는 언급이 등장한다고 한다. 현대로 넘어와서는 1949년 대한민국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고 6·25전쟁에서도 유엔군 중에서 세 번째 규모의 병력을 파병했다. 전쟁 후 소원했던 관계는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터키를 응원하면서 두 나라를 다시 형제의 나라로 복원시켰다.

기내 서비스. 승무원들과 함께 셰프복장의 사람들이 탑승객들을 반기는 모습이 이채롭다.

장거리 야간 비행은 언제나 힘겹지만 낯선 항공을 이용하는 것은 새로운 기대를 품게 한다. 기내에 승무원들과 함께 셰프복장의 사람들이 탑승객들을 반기는 모습이 이채롭다. 셰프들은 메뉴판을 건네며 음식을 주문받는다. 낯선 분위기에 호기심이 들었으나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헤드셋을 통하여 들리는 음악에 젖어들며 잠들었다. 주위가 어수선하여 눈을 떠 보니 어느덧 터키 영공이다. 착륙 전 허기를 달래기 위해 간단한 음식을 부탁하고 아침을 맞이한다. 인천을 떠난 지 11시간이 지나니 이스탄불이다. ‘터키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터키 공화국의 건국자이자 초대 대통령 이름을 딴 ‘아타튀르크 공항’에 도착한다.

본명이 ‘무르타파 케말’인 아타튀르크는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붕괴 이후, 현재 터키 공화국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다. 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아우르는 국민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아타튀르크는 그리스 점령군을 몰아내고 술탄제도를 폐지한 후 1922년 앙카라를 수도로 정한 터키 공화국을 건국했다. 특히, 이슬람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개혁과 개방에 몰두하면서 이슬람 전통 복장을 폐지했으며 남녀평등권과 여성 선거권을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의 터키는 국민의 20%인 쿠르드족과 정부의 대립으로 수십 년간 피 흘리고 있으며 이슬람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 등 불안한 국내 상황을 안고 있기도 하다.

‘터키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터키 공화국의 건국자이자 초대 대통령 이름을 딴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지만 터키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공화국 성립 이전까지 수도였던 이스탄불이 우리에게 더 알려져 있다. 이스탄불은 아나톨리아와 동트라키아 사이 마르마라해와 다르다넬스 해협, 보스포루스 해협 양쪽에 자리 잡고 있다. 이 해협으로 여덟 나라와 국경이 닿아있는 터키는 유럽 영토와 아시아 영토로 나뉘어 있다. 명시된 국교는 없으나 터키어를 사용하는 국민 대다수의 종교에 따라 사실상 이슬람교가 국교인 셈이다.

이번 여행의 첫 목적지인 카이세리(Kayseri)로 가기 위해 이스탄불 공항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탔다. 카이세리는 터키 중앙부에 위치해 있으며, 인구 약 100만명 도시로 터키에서 4번째로 높은 3916m의 엘제스산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옛 카파도키아 왕국 수도로 마자카(Mazaka)로 불렸으며, 로마 제국시대에 티베리우스 황제가 ‘황제의 거리’를 의미하는 카이사레아(Caesarea)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카이세리 성 바울이 활동한 성서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카이세리(Kayseri)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 히타이트 시대 때부터 신성시해 온 에르지예스(Erciyes dağı)산이 비행기 창문 너머로 내려다보인다.
카이세리 공항. 활주로와 공항 주변 풍경들.

앙카라 대학, 이스탄불 대학과 함께 카이세리 대학에도 한국어학과가 있다고 한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한국인을 구분하는 외국인을 만나기 쉽지 않지만 터키 사람들은 한국인을 상당히 명확히 구분한다고 한다. 더구나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도 많을 뿐 아니라 매우 호의적이다.

마침 비행기 옆 좌석에서 한국인이세요? 라며 말을 건네 온다. 신기해하며 한국말을 할 줄 아느냐고 물으니 조금이라고 대답한다. 한국어과 학생이 아닌 평범한 이스탄불 시민이란다. 요즘은 높아진 한국 위상에 따라 여행 중에 한국어 인사말을 종종 듣게 되지만 비교적 정확한 발음의 한국어를 들으니 신기하고 반갑다. 반가운 마음에 카이세리로 가는 목적을 물으니 휴가를 즐기기 위해서라고 한다. 겨울이면 자주 방문한다며 스키 마니아라 소개한다.

카이세리는 터키 중앙부에 위치해 있으며, 인구 약 100만명 도시로 터키에서 4번째로 높은 3916m의 엘제스산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하얀 눈을 이고 장엄하게 서 있는 산의 모습이 신령스럽게 다가온다.
평균 해발고도가 1054m로 상당한 고지대에 위치한 카이세리. 카이세리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에르지예스(Erciyes)산은 겨울철에 스키장으로도 각광받는 장소이다.

강원도 면적과 비슷한 카이세리는 평균 해발고도가 1054m로 상당한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스키 마니아는 에르지예스(Erciyes)산으로 간다고 한다. 이곳은 겨울철에 스키장으로도 각광받는 장소이다. 휴화산으로 카이세리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산이며, 정상까지 케이블카가 운행되어 전 세계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겨울에는 특히 강원도처럼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그런 이유에서인지 카이세리행 비행기를 타는 사람 중 스키복을 입은 사람이 많다.

히타이트 시대 때부터 신성시해 온 에르지예스산이 비행기 창문 너머로 내려다보인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산은 만년설로 덮여 있다. 하얀 눈을 이고 장엄하게 서 있는 산의 모습이 신령스럽게 다가온다. 카이세리와 데벨리(Develi) 지역을 아우르는 아름다운 설경이 끝없이 펼쳐진다. 누군가에게는 동계 스포츠의 천국으로 다가서지만 내게는 광활한 자연과 문화 역사를 품고 있는 신비의 땅이다. 거대한 화산 위로 하얀 눈발을 날리는 모습에 장거리 여행의 피곤함이 가시는 듯하다.

마음까지 맑게 해주는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터키 카이세리에서의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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