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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피앙세를 국가가 추첨으로 정해준다?

입력 : 2019-03-02 03:00:00 수정 : 2019-03-01 19: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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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첨맞선 3회’ 모두 거절 땐 강제 軍 복무 / 극단적 법 도입한 가상의 일본 사회 배경 / 젊은 미혼 남녀 고민과 방황 사실적 묘사 / 인구절벽 위기 부른 비혼·만혼 세태 투영 /‘저출산 고령화’ 한국 현실과 비슷해 공감

 

일본정부는 저출산 대책으로 내년 4월 1일부터 ‘추첨맞선결혼법’을 시행하기로 했다. 대상은 25세에서 35세까지 이혼 경험이 없으며, 자녀와 전과가 없는 미혼 남녀다. 본인의 나이에서 플러스마이너스 5세 사이에서 무작위 추첨으로 실행한다. 저출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만혼화를 국가적 위기로 인식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법을 제정했다고 정부는 밝혔다.

맞선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2회까지 거절할 수 있다. 3회까지 거절하면 군대에 가야한다. ‘테러대책활동 후방지원대’, 이른바 테러박멸대에서 2년간 복무해야 한다. 야당에선 난리가 났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인권침해라며 반발했다. 당장 발등에 불 떨어진 미혼 남녀들은 고민에 빠졌다. 이런 강제적인 맞선을 어떻게 해야하나. 여성에게 인기 없는 오타쿠 청년들은 내심 환영한다. 엄마와 단둘이 사는 간호사는 홀어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다.

시골처녀는 환영한다. “도시라면 몰라도 시골에서는 혼기를 놓친 노처녀 취급을 받으면서 결혼은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정부가 기회를 주신다니 무슨 수를 써서든 이 기회를 살리고 싶다. ”

도시 처녀와 신사의 논쟁이다. “결혼이라는 사적인 일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보아도 전대미문이에요. 국가의 수치입니다. 그건 아니라고요!” “전대미문이라고요?… 역사적으로 보아 국가가 인구 조절에 개입하는 것은 드물지 않습니다.” 
결혼 상대는 추첨으로
가키야 미우 지음/이소담 옮김/지금이책/1만3800
정부 인사의 말이다. “출산은 경제를 활성화합니다. 출산은 여성뿐만 아니라 유아 시장, 아동 시장, 교육 시장, 손주를 사랑하는 조부모 시장까지 만들어냅니다.”

시민끼리 벌인 논쟁 한 장면이다. “묻지마 범죄 같은 무차별 살인의 가해자는 주로 젊은 층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예외 없이 여자 친구가 없는 남성 청년입니다. 그러나 추첨맞선 덕분에 결혼하고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희망을 품으면 큰 안도감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묻지마 범죄가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저걸 제정신으로 하는 소린가? 그런 남자를 떠맡은 여자 입장이 되어 보라고…“

한 번 더 거절했다가는 테러박멸대로 가야만 하는 상황을 알게 된 여자는 그 약점을 이용해 결혼을 종용하거나 거의 협박 수준으로 결혼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고, 심한 경우 형사사건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지금까지 일본 중견작가 가키야 미우(垣谷 美雨)의 소설 한 장면이다. 현대사회 문제를 미스터리 소설로 풍자하고 TV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많은 공감을 얻고 있는 인기 작가다.

작가는 추첨맞선결혼법이라는 극단적인 설정과, 이에 대응하는 젊은 미혼 남녀의 묘사를 통해 현실 문제를 리얼하게 짚어낸다.

일본에서도 생산 인구 저하로 국가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고령 인구에 대한 의료와 복지로 막대한 비용이 지출되고 있다. 소규모 지방자치단체는 인구 유출로 해체 위기에 직면해 있다. 외국인 유입으로 인해 치안 상태는 점차 악화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결혼 기피, 만혼화에 따른 저출생 문제에서 기인한다.
저자 가키야 미우는 이 소설을 통해 “개인이 자신의 힘으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육아만큼은 국가가 책임져주는 시스템이 저출산 고령화 정책의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인구 절벽을 중대한 문제로 여기는 것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매 한가지다. 한국의 경우 최근 합계출산율이 처음 1명 미만으로 떨어졌다. 저출생 문제가 심각하다는 진단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부 및 지방의 지자체들이 온갖 출산장려지원책들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가속화되는 저출산 문제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저출생 문제 전문가인 일본 사카미여자대학 시라카와 도코(白河桃子) 교수는 이 책 해설에서 “저출산 문제는 삶의 질을 반영하는 문제”라고 강조한다. 그는 “중요한 것은 결혼 제도 자체가 아니라, 개인이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임을 강조한다. 즉, 개인이 자신의 힘으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직장을 잃거나 부모가 헤어지게 되더라도 육아만큼은 국가가 책임져주는 시스템이 저출생 고령화 정책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현재 일본 사회의 모습은 우리 현실과 비슷하다. 저자의 기발한 소설적 상상력이 빚어낸 가상의 현실이지만, 젊은 남녀들의 고민하고 방황하는 장면 묘사가 사실적이다. 오늘날의 ‘저출생 비혼화’라는 현실에 대해 보다 심각히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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