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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름들이 잘려나간다면… 이 새들의 낙원이 사라진다면…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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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3-03 09:29:16 수정 : 2019-03-03 09: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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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공항 건설 싸고 위태로운 ‘제주의 자연’



한라산 동쪽 끝 해발 159m 독자봉 아래 ‘신산리’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500년 넘게 이어온 공동체 문화는 이 고장의 자부심이다. 2015년 겨울, 마을 이름이 뉴스에 언급되기 시작했다. 국가가 신산리를 포함하는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를 국책사업 부지로 지목하면서부터다. 주민들 모르게 마을이 공항 건설 예정지가 됐다. 주민들은 알고자 했다. “어째서 마을의 미래를 우리와 상의하지 않았는가?” 국토교통부는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서 알리지 않았다고 답했다. 주민들이 조상 대대로 가꿔온 농토를 내놓고 고향을 등져야만 하는 이유를 묻자, 국토부는 “전문가의 분석이 그렇다”는 말만 반복했다. 












‘제주공항 인프라확충사업 2016년도 예비타당성 조사’ 요약보고서는 제2공항의 안전한 운영을 위해 장애물 제한표면에 걸리는 성산지역 오름 10개를 잘라야 한다고 분석했다. 위쪽부터 대수산봉, 유건에오름, 모구리오름, 독자봉, 후곡악, 낭끼오름.

“우리를 설득해 달라. 우리가 터전을 버려야만 하는 정당한 근거를 들어 달라.” 강원보(55) 신산리 이장은 “국책사업이라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던 시대는 지났다”며 “적폐는 다름 아닌 비민주적이고 불투명한 절차에 숨어있다”고 토로했다. 이미 신산리 마을은 유례 없는 갈등을 겪고 있다. 공항 건설 예정지 주변으로 형성될 고가의 부동산 시장에 대한 기대심리는 욕망을 불러 모았다. 마을은 순식간에 두 갈래 세 갈래로 찢어졌다. 공항 입지 선정 발표 이후 이 지역 땅값은 가파르게 치솟았다. 제주지역 지가 변동률은 2015년 7.57%, 2016년 8.33%로 2년 연속 전국 1위를 기록했다. 












노랑부리저어새(천연기념물 제205-2호)가 제주 하도리 철새도래지에서 깃털을 다듬고 있다. 노랑부리저어새는 저어새와 마찬가지로 세계적 멸종위기종이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 20일 제주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환경 훼손과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균형발전을 이룩할 최적의 대안이 제2공항”이라고 발표했다. 원 지사는 “제2공항과 연계한 제주발전계획이 제주의 경제지도를 완전히 바꿀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큰회색머리아비가 서귀포 성산포 앞바다에서 깃털을 다듬고 있다.

강 이장은 “도정이 농촌으로서 소중한 가치를 지닌 우리의 땅을 ‘발전이 안 됐다’고 함부로 재단했다”면서 “흙 없이도, 농사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건 환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미래세대를 위해 남겨야 할 것은 대형 SOC 사업이 아니라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이 잘 보존된 마을 공동체”라고 강조했다. 












검은머리갈매기(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가 제주 구좌읍 종달리 해변에서 비행하고 있다. 검은머리갈매기는 세계적 멸종위기종이다.

제주 미래세대의 생각은 어떨까. 공존관리학자를 꿈꾸는 김예원(19)양은 새를 깊이 사랑해 ‘생이(새) 친구들’이란 동아리를 만들고, 10년 가까이 성산을 비롯한 제주 곳곳에서 조류를 탐구해왔다. 공항 입지 선정에서 조류 서식처는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이착륙하는 항공기가 새와 충돌했을 때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김양은 “공항 예정부지 인근 오조리, 하도리, 종달리는 새들의 낙원”이라면서 “사람과 자연이 오래도록 이어온 아름다운 공존이 깨어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새매(천연기념물 제323-4)가 제주 하도리 철새도래지에서 비행하고 있다. 2012년부터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으로 지정됐다.

오름 절취 여부에 대한 문제도 지속해서 제기돼 왔다. ‘제주공항 인프라확충사업 2016년도 예비타당성 조사’ 요약보고서는 제2공항의 안전한 운영을 위해서는 장애물 제한표면에 걸리는 오름 10개가 잘려야 한다고 분석했다. 제2공항 시계기동(선회접근) 절차를 동편으로 이용해 서쪽 지역의 오름 9개는 절취되지 않도록 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동쪽 지역 대수산봉은 잘릴 수밖에 없다. 지역 여론이 악화하자 국토부는 최종보고서에서 ‘잘라야 한다’를 ‘자를 수도 있다’로 처음 내세운 분석을 뒤엎었다.



김태일 제주대 건축학과 교수는 “오름의 지형학적·지질학적 특성은 한번 훼손하면 복원할 수 없다”면서 “각각의 오름이 연결돼 제주만의 독특한 경관을 완성하는데, 설사 오름을 자르지 않더라도 그사이에 활주로를 놓는 것 자체가 이미 심각한 훼손”이라고 설명했다. 












제주 봉개동 쓰레기 매립장에서 까마귀가 날아오르고 있다. 이곳 매립장은 시설 포화로 1800∼2000t가량의 쓰레기가 처리되지 못한 채 쌓여 있다.

한해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은 2016년 1585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7년 1475만명, 2018년 1433만명을 기록했다. 여전히 66여만 제주도 인구의 21배가 넘는다. 빠르게 팽창한 제주 관광은 용천수 고갈, 쓰레기매립장·하수처리장 과부하, 곶자왈(산림) 훼손, 교통체증 등 광범위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국토부가 2018년 2830만명인 제주공항 수요 추이를 2035년 4549만으로 상정한 것에 대해 ‘제주 도민의 삶과 자연이 그 미래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라는 질문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문상빈 제주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은 “자연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공항의 편리함보다 훨씬 큰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제주=하상윤 기자 jony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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