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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위험의 외주화’…김용균씨 사고와 판박이

입력 : 2019-02-22 07:00:00 수정 : 2019-02-22 07:3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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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의 외주화는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근로자 김용균씨가 사고로 숨진 데 이어 비슷한 사고가 당진 현대제철소에서도 발생했다. 현대제철소는 지난달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하청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심한 곳’이라고 지적받은 곳이다. 사고 발생 이틀 전 문재인 대통령이 위험의 외주화를 근절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장에선 달라진 것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컨베이어벨트 사고, 이번에도 외주업체 직원

21일 충남 당진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후 당진시 송악읍 현대제철소에서 외주업체 근로자 이모(50)씨가 컨베이어벨트 정비작업을 하다 사고로 숨졌다.

경찰에 따르면 현장의 안전관리자가 이씨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안전관리자는 “이씨가 부품을 가지러 간 뒤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아 동료들과 함께 찾아 나섰다”며 “컨베이어벨트 밑에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해 신고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제철소와 계약을 맺은 컨베이어벨트 수리 전문 업체는 사고 당일 컨베이어벨트 표면 고무 교체작업을 위해 이씨 등 근로자 4명을 현장에 투입했다. 사고가 발생한 곳에는 5m 간격으로 5개의 컨베이어벨트가 위치해 있고, 각 컨베이어벨트에는 양쪽으로 1.2m 높이의 난간이 설치돼 있다. 사고 당일 고무 교체 작업은 106번 컨베이어벨트에서 진행됐는데, 이씨는 바로 옆 126번 컨베이어벨트 아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직후 현장을 조사한 고용노동부는 사고 동향 보고서에서 “사망한 근로자가 작업용 자재를 가져오는 과정에서 컨베이어벨트를 밟고 내려오던 중 협착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도 “이씨가 작업장 위에서 자재를 가져오는 과정에서 가동 중인 컨베이어벨트를 밟고 내려오던 중 구조물과 컨베이어벨트 사이에 끼여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다만 현장에는 폐쇄회로(CC)TV가 없어 사고 당시 이씨의 행적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비정규직 근로자 사망사고 발생한 현대제철 작업현장. 민주노총 제공
◆현대제철소, 10년 동안 사망사고만 33건

사고가 발생한 현대제철소는 2007년부터 10년 동안 산업재해로 33명의 근로자가 숨진 곳이다. 2016년 11월에는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던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숨졌고, 2017년 12월에는 20대 노동자가 기계설비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사고 희생자 가운데 27명은 하청업체 근로자였다.

지난달에는 인권위로부터 ‘하도급 근로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이 있다’고 지적을 받기도 했다. 당시 인권위는 “하도급 근로자의 급여 수준은 직접 고용 근로자의 60% 수준으로 파악되는데 근속연수 등 다른 요인을 고려하더라도 현저한 차이로 볼 수밖에 없다”며 “그 밖에 각종 복리후생 처우에서도 고용 형태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현대제철소는 주차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하도급 근로자들의 개인차량 출입을 제한하기도 했다. 인권위는 현대제철소에 ‘차별행위를 인정하고 향후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을 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인권위의 권고에 당시 현대제철소 측은 “하도급 근로자들이 도급계약을 맺은 협력업체에 소속돼 해당 협력업체의 작업지시와 근태 관리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고, 이들의 근로조건도 협력업체들이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며 “우리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충남 당진 현대제철소에서 사고로 숨진 이모씨의 빈소. 뉴시스
◆비슷한 사고 또 발생했는데, 김용균법 무용지물

고 김용균씨의 사고를 계기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이씨의 사망 사고에는 적용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관련 법이 시행되려면 공포 후 1년이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개정된 산업법에는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기 위해 산업현장의 안전규제를 대폭 강화한 내용이 담겼다. 하청 근로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사업장, 시설, 장비 등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관리 권한을 가진 원청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했다.

정부는 지난달 15일 개정 산업법을 공포했지만, 관련법은 공포 1년 뒤인 내년 1월16일부터 적용된다. 원청 대표의 안전보건 계획 수립 관련 규정은 2021년 1월1일, 물질안전보건자료 관련 규정은 2021년 1월16일에야 시행된다.

이번 사고가 개정 산업법의 적용은 받지 않지만 노동부는 원청인 현대제철소가 하청 근로자의 안전 의무를 다했는지 살펴볼 계획이다.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천안지청 관계자는 “현대제철과 컨베이어벨트 수리업체의 관계를 파악하고, 원·하청 계약관계가 성립됐을 때 원청인 현대제철의 책임이 적절했는지를 꼼꼼히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현대제철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고인과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회사는 “현재 정확한 사고 원인 파악과 신속한 사고 수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유가족의 슬픔과 고통에 깊은 위로를 드리며 관계 기관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고대책 마련 및 안전점검을 최우선으로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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