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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의마음치유] 모두가 행복한 서비스사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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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2-21 20:50:34 수정 : 2019-03-22 16:3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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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선진국 한국, 의료인 희생 없인 불가/무조건 ‘을의 눈물’만 요구해서는 안 돼

40년 전 일인데도 의대생 시절에는 불행한 기억만 가득하다. 제 머리 나쁜 건 인정 못 하고,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핑계를 댔지만 능력이 많이 부족해 적응을 잘 못했기 때문이다. 열등감 때문에 동기나 선배들이 그저 차갑게만 보였고, 낭만은커녕 누구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더라, 자살했다더라, 스트레스 때문에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더라 하는 사라진 동급생의 소문이 남의 일 같지 않았던 망가진 청춘이었다.

 

졸업 후에도 쉼없이 공부와 의업에 허덕이며, 호랑이 시어머니와 바쁜 남편 덕에 살림과 의업 모두 독박 써야 했으니 삶은 그리 나아지지 못했다. 공부한 게 아까워 ‘의사’라는 직업을 그만두지 못했던 내 우유부단함이 지금도 후회가 될 정도다.

 

아주 잘사는 집에 태어나거나 부자 배우자를 만나 아무 걱정 없이 연구만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필자처럼 비슷하게 젊은 날을 보낸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귀중한 생명과 건강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니 힘든 단련의 시기가 필요할 수 있지만, SKY캐슬처럼 드라마 소재가 될 정도로 돈 많고 우아한 의사는 현실에서 찾기 힘들다. 급사할 정도의 노동 강도와 의료사고 위험 감수는 물론, 약하고 아픈 사람을 돌보는 희생적인 성품이 요구되는 의업을 하면서 좌절과 회의감에 허우적대는 이들도 많다. 대학병원이라는 보호막이 없는 경우에는 진료와 관련된 합병증이나 사고 등에 대한 불안감도 깊다. 외국에 나가거나 다른 직업을 적극 찾는 이유다.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은 미국의 수십 분 혹은 몇 백분의 일 정도의 의료비로 미국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의학 기술을 자랑하는 특이한 의료 선진 국가다. 특히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료 기사 등 박봉으로 기꺼이 환자를 돌보는 의료인의 헌신과 희생 없이는 만들 수 없는 기적이다.

 

고강도의 노동과 최선의 서비스를 요구해서 비명을 지르는 직업은 사실 의료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서비스업의 인내심 깊은 응대와 발 빠르고 확실한 애프터 서비스는 거만한 이들,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이들이 많은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가 없다. 백화점이건, 식당이건, 건설현장이건, 심지어 공공기관까지 마치 왕이나 된 듯 요구하는 것이 많다. 아랫것을 대하는 조선시대 양반 흉내다. 때론 상대에게 자기감정을 다 쏟아내 과거에 받은 설움이나 상처를 치유해 보려는 어이없는 장면도 자주 접하게 된다.

 

남산에서 뺨 맞고 엉뚱하게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낮은 수준의 자아방어(Ego defense) 중 하나인 치환(Displacement)이나 전이(Transference) 현상이다. 언젠가 배달 오토바이 뒷면에 ‘우리도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입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 가슴이 찡한 적이 있다. 차선을 종횡무진 누비며 속도를 높이는 배달 오토바이와 버스나 트럭의 횡포에 불평하는 운전자가 많지만, 그들이 시간에 쫓겨 가며 누군가를 위해 최선의 서비스를 위해 목숨을 담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내가 갑이 되기 위해 을인 누군가의 눈물과 생명까지 요구하는 사회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 진정한 배려는 불편함을 참아내는 마음, 특권의식을 버리고 공정함을 선택하는 당당함에서 나올 것 같다.

 

이나미 서울대병원 교수·정신건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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