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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처럼 날리는 석면, 천 마스크로 버텨… 그 사이 폐는 굳어갔다 [우리의 환경은 평등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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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2-21 18:28:28 수정 : 2019-02-21 21: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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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석면 방직기술 배운 印尼여성 '석면폐' 진단
오염산업은 중력의 법칙을 따른다. 경제수준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환경인식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 석면도 그랬다.

석면산업은 유럽에서 아시아로,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우리나라에서 인도네시아로 밀려났다. 지난해 10월 현재 유럽과 우리나라, 일본 등 66개국에서 모든 종류의 석면 사용이 금지됐다. 그럼에도 석면은 ‘불멸의 물질’이란 어원답게 세계 도처에서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는 중이다. 많은 이가 ‘죽음의 먼지’를 지붕으로만 알고 있는 인도네시아도 그중 하나다. 2008∼2017년 세계 석면 생산량이 40% 가까이 감소하는 동안, 인도네시아의 석면 수입량은 오히려 20% 이상 늘었다. 
지난달 13일 심각한 석면 실태와 피해자들의 얘기를 듣기 위해 인도네시아를 찾았다. 자동차로 자카르타 남쪽 보고르로 향하던 도중, 운전기사 딕슨 아비네노가 말했다.

“아스베스(asbes·석면의 인도네시아어) 때문에 왔다고요? 지붕을 보려고? 아… 사업하는 분이구나.”

‘아스베스는 사실 지붕이 아니라 폐암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물질’이라고 하자 그는 “음…”하고 뜸을 들이더니 별로 믿음이 안 간다는 듯 창밖을 보며 말했다.

“그렇지만 지붕이 저렇게 다 아스베스로 덮여 있는데 전부 발암물질이라고요?”

보고르에 있는 치비농의 아담한 집에서 남편과 둘이 살고 있는 아툰(58).

그는 1993년부터 집 근처 트리그라하 공장에서 21년간 일했다. 다리미 코드를 감싸는 절연체를 만드는 게 그의 일이었다. 석면원료를 방적기로 돌려 만든 석면 피복은 다리미의 뜨거운 열로부터 전선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지난달 13일 인도네시아 보고르에서 석면 피해자 아툰(가운데)씨가 석면 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을 들려주고 있다.
작업공정은 1991∼1992년 우리나라 경남 양산에서 배웠다. 양산의 석면방직회사 제일 아스베스트에 있는 설비가 트리그라하로 옮겨올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반 년간 연수를 마친 뒤 인도네시아로 넘어온 석면설비를 돌리며 주 6일 일했다. 석면이 폐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설명은 들었지만, 특별한 보호장구를 쓰지는 않았다. 끈을 머리 뒤로 돌려 묶는 수술용 마스크와 장갑이 그가 받은 전부였고, 그마저 한 3년쯤 뒤에는 너무 낡아 일반 마스크로 바꿨다.

“일반 먼지도 몸에는 나쁘잖아요. 석면도 그런 의미에서 가루가 날리면 막연히 나쁠 거라 생각했지, 정말 그렇게 위험한 물질인 줄은 몰랐어요. 마스크로 코와 입만 적당히 가리면 된다고 생각했죠.”

2010년 ‘산업재해 피해자 권리를 위한 아시안네트워크’(ANROAV)라는 단체가 주선해 처음으로 컴퓨터 단층촬영(CT)을 했다. 이상소견이 나왔지만, 의사는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 설명하지 못했다.

“그때까지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아무 증상이 없었거든요.”
아툰(오른쪽)씨가 1991년 여름 우리나라 경남 양산 제일 아스베스트에서 찍은 사진. 아툰씨 오른쪽에 실뭉치처럼 보이는 것이 석면이다.
2년쯤 흐른 어느 날 기침이 시작됐다. 몇 달이 가도 잦아들지 않았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다시 찾은 병원에서 의사는 결핵약을 처방해줬다. 약을 먹으면 증세가 호전됐다.

그가 결핵이 아닌 석면폐를 앓고 있다는 사실은 2016년에야 밝혀졌다. 그가 공장을 떠난 지 2년 뒤의 일이다. 검사를 맡은 ‘인도네시아 석면금지네트워크’(INABAN)의 직업의학 전문의 아데 드위 레스타리는 “석면피해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는 인도네시아에서는 의사들도 석면폐를 잘 모른다”며 “대부분은 결핵으로 진단한다”고 말한다.

10∼40년의 긴 잠복기 끝에 발병하는 석면폐는 호흡 부전이나 심부전을 일으키다 악성중피종(폐 표면에 생기는 암)으로 악화하거나 그 자체로도 죽음에 이를 수 있다. 치료법은 없다.

아툰은 지난해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지금까지 인정한 석면피해자 6명 중 한 명이다. 모두 제일 아스베스트의 기계를 넘겨받은 트리그라하 공장 출신이다. 바늘구멍 같은 산재 규정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산재 신청은 회사만 할 수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석면을 대체하거나 기꺼이 직원 피해를 인정하려는 게 아닌 이상 산재를 신청해서 득될 게 없다. 트리그라하는 2014년 석면 사용을 중단했다. 그 덕분에 아툰은 더 이상 석면에 노출될 일이 없었지만 동시에 일자리도 잃었다. 원료값이 상승하자 직원을 해고한 것이다.

바늘구멍을 뚫고 산재를 인정받았지만 보상금은 받지 못했다.

나자르 알리 INABAN 활동가는 “인도네시아에서 산재보상금은 병이 나은 뒤 청구할 수 있는데 석면 관련 질환은 모두 치료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보상금도 지급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아툰은 병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알고 싶지만 한 달 월급에 달하는 CT 촬영비용이 부담스러워 2016년 진단 이후 한 번도 검사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석면 노동자로 21년을 보낸 그가 받은 보상은 서류뿐인 산재인정과 퇴직금으로 받은 1년치 급여가 전부다.
◆일본→한국→인도네시아로… 오염산업의 이동

트리그라하 공장의 석면 문제는 씁쓸하게나마 마침표를 찍었지만, 인도네시아 다른 곳에서는 현재진행형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과 유엔 국제무역통계(Comtrade)에 따르면 세계 석면 생산량은 2008년 209만t에서 2017년 130만t으로 38% 줄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인도네시아의 석면 수입량은 8만6000t에서 10만5000t으로 22% 늘었다.

INABAN은 자동차 업계에서만 493개 업체 18만여명이 석면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됐으리라 본다. 석면을 안전하게 사용하면 괜찮다는 게 정부와 산업계 논리다.

수보노가 일한 시아민도 공장도 그렇게 말했다. 시아민도는 자카르타 동쪽 카라왕 지역에서 석면 지붕을 만드는 회사다.

“1999년부터 일했는데 어떨 땐 석면가루가 눈처럼 날렸어요. 그래도 특별히 위험한 줄은 몰랐죠.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으니까요.”

그를 비롯한 모든 직원은 수술용 마스크만 쓰고 일했다. 1년에 한 차례 건강검진이 있었지만 결과는 회사만 알았다.
지난달 12일 지역직업안전환경단체(LION) 관계자가 2016년 석면공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건강검진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손끝이 가리키는 쪽에 ‘석면폐’(asbestosis)라고 적혀 있다.
석면이 위험하다는 건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됐다. 2013년 노동조합(SERBUK)을 결성해 노조 관계자 자격으로 참석한 포럼에서 석면문제를 다룬 것이다.

이맘때부터 시아민도 공장에서는 사망 노동자가 발생하기 시작해 2014∼2018년 8명이 숨졌다. SERBUK과 지역직업안전환경단체(LION)가 실시한 시아민도 노동자 건강검진에서 2014년에는 11명 중 2명이, 2016년에는 14명 중 7명이 폐 이상을 보였다.

회사와 정부에 자료를 제출하고 석면 사용 중단을 요구했지만 반응은 한결같았다. ‘인도네시아에서 쓰는 백석면은 위험도가 낮다, 안전하게 사용하면 문제 없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시아민도 공장 주변을 둘러봤다. 담장 밖인데도 석면가루와 녹슨 석면지붕, 거기서 떨어져나온 조각들이 아무 데나 버려져 있었다.

차 두 대가 겨우 빠져나갈 좁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은 주거지였는데, 모두 석면지붕으로 덮여 있었다. 시아민도 공장이 사회적책임(CSR) 활동의 일환으로 제공한 것이라고 했다. 병 주고 독까지 준 셈이다.

“저도 여기서 살았어요. 여기 주민 중에는 결핵으로 죽은 사람이 많아요. 저희 부모님 두 분도 그렇고요. 석면을 알게 되니 정말 결핵이었을까 싶네요.”
인도네시아 카라왕의 석면 지붕 제조업체 시아민도 공장 주변. 담장 밖인데도 녹슨 석면지붕과 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끝나지 않은 석면 문제

인도네시아의 현재 상황은 30∼40년 전 우리나라의 모습이기도 하다.

트리그라하에 석면설비를 넘긴 제일 아스베스트는 일본 기업 니치아스와 우리나라 제일화학공업사(현 제일E&S)가 1971년 합작해서 만든 회사였다. 니치아스는 일본에서 ‘특정화학물질 등 장해예방규칙’이 제정되기 1년 전 청석면 제품 생산을 중단하고, 기계를 제일 아스베스트 부산 공장으로 옮겼다.

석면산업의 국가 간 이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최예용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 부위원장의 논문에 따르면 제일화학공업사는 1981년 독일 석면방직기업 렉스사와도 합작해 독일 설비를 부산에 들인다. 독일에서는 연방직업안전보건연구원(BAuA)이 석면 대체물질 목록을 발표하는 등 석면 규제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었다.

제일화학공업사는 공장 가동에 대한 민원이 늘자 1990년 부산공장을 폐쇄하고 양산공장을 열었다. 이때 노후한 생산설비가 인도네시아로 넘어갔다.
석면산업이 독일·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넘어와 도시에서 외곽으로, 다시 인도네시아로 도망치듯 이동한 것이다.

석면이 훑고 간 자리, 상처를 치유하는 데도 나라별 차이가 드러난다. 독일은 1936년 석면폐를 직업병으로 인정하고 1942년엔 세계 최초로 석면 노출로 인한 폐암을 추가한다. 지금까지 확인한 석면 노출 노동자는 56만명, 이 중 약 9만명은 아직도 재건축이나 건물 유지보수 같은 과정에서 석면에 노출되고 있다.

일본은 독일보다 늦은 1978년 석면 관련 질환을 직업병으로 인정해 2015년 약 1200명이 산재보상을 받았다. 노동자가 아닌 피해자를 위해서는 2006년 ‘석면에 의한 건강피해구제법’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독일이나 일본에 비해 더 뒤처져 있다. 1993년에야 악성중피종암 피해자가 첫 석면질환자로 인정됐고, 최근 8년간 산재 승인 건수는 229건에 불과하다.

피해자를 발굴하겠다며 실시 중인 건강영향조사도 제한적이다. 부산·경남지역 조사는 올해 예산 배정이 되지 않아 중단됐다. 부산·양산에서 나타난 인정률 1%(일반인 100명을 검사해 1명에게 석면질환 확인)를 근거로 재조사가 필요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사를 주관해 온 양산부산대병원 석면환경보건센터의 강동묵 교수(직업환경의학과)는 “보통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특수건강검진에서도 인정률 1%를 넘기 힘들다”며 “맨 처음 석면피해 구제제도의 틀을 짤 때 피해자 추계를 하고 재원을 마련한 게 아니라 반대로 재원의 한계를 예상하고 그에 맞춰 접근한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마저도 인도네시아 석면 반대 운동가들에겐 부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나자르 활동가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석면이 위험하다는 것만이라도 좀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언젠가 인도네시아도 바뀌지 않을까요?”

카라왕·보고르=윤지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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