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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전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 협상 내막…"북한군 반대로 좌초"

입력 : 2019-02-19 16:42:05 수정 : 2019-02-19 16: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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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측, 자녀교육·의료비상·물자공급 목적 DMZ통한 남한통행 허용 요구"
당시 미국측 실무협상 대표 "그때 설치됐더라면 미북관계 달라졌을 수도"
북한과 미국간 연락사무소 교환 설치는 북한의 외무성이 미국 국무부의 동아태 차관보에게 서한 한 장만 보내면 실제 착수할 수 있는 최종 단계까지 협상이 이뤄졌으나, 끝내 북한으로부터 OK 서한은 오지 않았다.

북한은 1995년 여름 무기한 연기 메시지를 보낸 데 이어 그해 말 추후 통보할 때까지 교환 설치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따른 연락사무소 교환 설치를 위한 실무 협상단의 미국 측 대표였던 린 터크 전 국무부 북한 담당관은 "그때 미국과 북한의 수도에 각각 상대측의 연락사무소가 설치됐더라면 미북 관계가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며 "북한과 대화, 혹은 대화 방법 자체가 그동안 늘 이슈가 돼온 상황이었으니"라고 말했다.

터크는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후인 지난해 6월 29일 북한 전문매체 38노스에 북미 간 연락사무소 설치 협상의 내막을 소개하는 글에서 당시 북한의 입장 선회 배경에 대해 "개인적 추측"임을 전제로, 북한 군부의 반대를 들었다.

"평양에 미국 연락사무소가 설치되면 북한과 미국 간 대화의 주된 창구가 됨으로써 판문점 북미 군사 채널을 우회해 군사문제들에 대해서까지 외교 채널이 관장하게 될 수 있다고 보고 저지에 나섰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 조짐은 협상 과정에서 이미 나타났다. 의료 비상 상황 등 불가피하게 미국 측 연락사무소 외교관이나 가족이 남한으로 가야 할 때에 대비해 월경 지점을 검토하기 위해 비무장지대 북측 지역을 미국 측이 방문했을 때 "북한 군과 외무성 직원들 사이에 강한 긴장이 있는 게 느껴졌다"고 터크는 회고했다.

특히 1994년 12월 미군 정찰 헬리콥터가 항로를 잃고 군사분계선을 넘었다가 북한군이 쏜 휴대용 대공미사일에 맞아 북한 지역에 격추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사망 조종사와 부상 조종사의 송환 협상 채널로 제네바 합의를 위해 새롭게 열린 외교 채널을 이용했는데, 북한 군부는 자신들이 북한 측 창구가 돼야 한다고 "분노에 차서(angrily)" 고집했다.

CNN 보도대로 북미 간 연락사무소 교환 설치 협상이 실제로 이뤄진다면, 이번에도 북한 군부가 대미 채널 주도권 때문에 노골적으로 저항하고 나설 것인지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선군정치'를 폐기하는 등 군부의 힘 빼기를 해온 점을 고려하면 당시와는 여건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25년 전 협상에서 합의가 가장 어려웠던 쟁점 중 하나가 미국 측 사무소 외교관이나가족들이 물자 공급 등을 위해 비무장지대(DMZ)를 통해 남한을 드나드는 문제였다.

미국 측은 외교관 자녀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평양에 있는 중국, 러시아, 그리고 다른 모든 나라 외교관 자녀들을 영어로 가르치는 외국인 학교들을 점검했으나 부적합 판정이 남에 따라 서울에 있는 외국인 학교로 보내기 위해서도 DMZ를 통한 통행이 필요했다.

미국 측의 허용 요청을 북측은 거부했지만, 결국 비상상황일 때 미국 측이 요청은 할 수 있되 '허가해준다고 보장은 못한다'는 선에서 합의했다.

미군 헬기 사건이 난 것은 북측 협상팀이 워싱턴 협상에서 남한 통행 문제에 대해 북측으로선 최대한 진전된 입장을 보인 후 귀국하는 시점이었다. 연락사무소 협상 입장에서 보면 운때가 나빴던 것이다. 북한 군부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었다.

당시 협상 과정에서 한국이 미국에 제동을 걸려했던 사안도 있다. 연락사무소 설치는 외교관계에 대한 빈협약에 따르기로 했는데, 당시 한국 정부가 북미 간 "공식 외교관계"를 맺는 것이 된다는 이유로 반대하면서 빈협약과 관계없이 북미 양자 사이만의 특수합의로 할 것을 주문했다.

"사실이 그러했지만(공식 외교관계), 미국은 빈협약의 외교보호 장치없이는 미국 외교관을 북한에 파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터크는 설명했다.

연락사무소 외교 사절은 대사보다 등급이 낮은 만큼 파견국 국가원수의 신임장을 받아 접수국 국가원수에게 내는 것이 아니라 외교장관의 신임장을 받아 접수국 외교장관에게 내도록 돼 있다.

북한 측은 연락사무소장으로 대사를 지낸 사람을 보내고 호칭을 "대사"라고 해도 되느냐고 미국 측에 문의하기도 했다. 미국 측은 북한 마음대로 해도 되지만, 북측 연락사무소장이 미국 국가원수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했다.

각자 연락사무소 정원을 7명으로 출발해 상호관계가 증진함에 따라 같은 숫자로 늘려가다 대사관 상호 개설과 대사 상호 파견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미국은 위성통신 수신 안테나를 사용하고, 북한은 뉴욕 유엔대표부와 마찬가지로 음성과 데이터 전송이 가능한 AT&T 전화선을 사용키로 합의됐다.

영사문제의 경우 당시 미국과 중국 간 영사합의와 똑같은 합의를 했다. 파견국 여권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만 영사 서비스와 영사보호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북한인이나 북한 태생이라고 해서 북한이 영사 권한을 주장할 수 없도록 했다.

뉴욕의 북측 유엔대표부 직원들이 뉴욕 바깥 여행을 반경 25 마일까지로 제한당하고 있는 점을 들어 북측이 미국 측 연락사무소 요원들에 대해 평양 바깥 여행에 대한 제한 방침을 밝히자 미국도 북측에 대해 워싱턴 D.C. 바깥 여행을 제한했다.

미국 측은 그러나 경수로 건설지인 신포엔 허가 없이 사전 통보만으로 여행할 수 있게 됐다. 대신 북한의 유엔대표부 직원들은 워싱턴으로, 워싱턴의 북측 연락사무소 직원들은 뉴욕과 시카고, 로스앤젤레스로 사전 통보 만으로 갈 수 있게 합의했다.

평양 주재 미국 연락사무소 사무실은 동서독 통일 전 한때 140여명의 동독 외교관이 근무했던 독일 대사관(협상 당시 4명 주재)으로 낙점됐다. 대사관 건물과 주거시설이 비교적 잘 수리돼 있었다.

독일 정부가 독일 대사관 경내를 점검해 대규모 도청시스템을 발견, 제거한 직후였다. 이 도청 시스템은 북한이 설치한 게 아니라 동독 보안기구가 자체 감시를 위해 설치한 것이라고 터크는 설명했다.

터크는 독일 수도 본으로 가 평양 주재 독일 대사관 구내의 아파트 7채, 차고 2개, 넓은 사무 공간을 임차하고 휴게시설을 독일 측과 공동사용하며 비어있는 대사 관저를 행사장으로 사용하는 계약을 맺었다.

미국 측 초대 연락사무소장에 스펜스 리처드슨 전 국무부 한국담당관이 임명됐다.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외교관 여러 명이 평양 근무를 자원했으며, 정부 바깥에서도 한국어에 능통한 자원을 찾았다. 리처드슨은 남북한 언어 차이 등을 사전에 공부하기 위해 서울로 전근했다.

북미 양측은 외무성과 국무부의 직제 표를 교환하고 차관보 수준의 카운터파트도 서로 정해놓은 상태에서 북한 외무성의 출발 신호를 기다렸지만, 결국은 불발하고 말았다.

이에 비춰보면, 북한이 1995년 이래 미국의 대북 적대시 증거의 하나로 미국과 외교관계를 갖지 않은 극소수 국가 중 하나라고 늘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터크는 지적했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회고록에 따르면, 2005년 9.19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2.13합의(2007년)에 이르는 과정에서도 미국은 북한에 "대사관과 유사한 이익대표부"를 개설하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은 워싱턴에서도 북한에 큰 선물이 된다는 이유로 별로 환영받지 못했지만, "(북한의) 김계관은 미국에 (북한의) 이익대표부를 개설하는 데 관심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고 그는 밝혔다.

북한은 미국 대표부 관리들이 북한 사회와 접촉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힐은 설명했다.

이는 지금이라고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북한이 연락사무소 상호 설치에 합의하더라도 이를 미국 측의 큰 양보로 간주하지 않을 수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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