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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아
아파트 베란다에 보름달이 찾아왔다
들판과 바람 속을 거슬러 오느라
달이 창백하다
달이 어색하다
보름달은 피고처럼 떠 있다

세상의 어디로도 갈 수 없어서
만민의 소원이 밀물 같아서
얼굴을 붉히고 귀를 막았는지
눈치를 보면서 덩그렇게 떠 있다

다 안다, 걱정하지 말거라
동네 개들은 짖지 말거라
오늘밤은 다만 대보름달을
넋 놓고 오래오래
바라만 보련다
당신이신가
달이신가
대보름달이신가
미안해서 미안해서
올려다만 보련다
원은희

오늘이 정월 대보름이다.

어렸을 적 우리 부모님이나 동네 어른들은 달을 무척 숭상했다.

특히 한 해의 첫 보름인 정월 대보름날에는 어른들이 달님을 바라보며 간절하고도 경건하게 가족의 안녕과 마을의 무탈을 위해 소원을 빌었다.

우리는 어른들의 소원과는 무관하게 정월 보름 전날 저녁에 이집 저집을 다니며 온갖 나물과 오곡밥을 얻어먹고 쥐불놀이를 하며 밤을 새워가며 놀았다.

이 모든 정겨운 풍습이 사라진 지금 아파트 베란다에 보름달이 떴다.

달은 이 세상의 어디로도 갈 수 없어서, 우리의 소원이 밀물 같아서, 얼굴을 붉히고 귀를 막았는지 눈치를 보면서 덩그렇게 떠 있다.

오늘밤은 달님을 우러러보며 옛날 기억을 떠올리면 어떨까?

달집에 불꽃이 환하게 피어오르면 풍물을 신나게 울리며 한바탕 어울려 춤과 환성을 지르며 뛰어놀았던 추억을, 

박미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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