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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역사의 영원한 꽃으로 피어나라"…詩로 전한 독립의 의지[강구열의 문화재썰전]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 강구열의 문화재 썰전

입력 : 2019-02-18 09:47:26 수정 : 2019-03-09 14:5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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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시어로 전한 망국의 恨

꾹꾹 눌러담은 시어를 통해 더욱 선명해지는 감정이 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서 오히려 또렷하다.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문화재청이 19일부터 개최하는 특별전 ‘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에서 만나는 시 몇 수가 그러하다.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을 가두어, 핍박했던 서대문형무소에서 읽는 것이라 더욱 특별하다.

 

◆“자결할 뿐이니 의병을 일으키지 못해 부끄럽네”-황현의 ‘절명시’

 

 

황현의 ‘절명시’

매천 황현은 경술국치에 죽음으로 항거했던 지식인이었다. 그가 목숨을 끊으며 지었던 ‘절명시’(絶命詩)가 이번 전시회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대월헌절필첩’(帶月軒絶筆帖)에 전한다. 나라를 잃은 슬픔과 목숨으로 이를 항의하는 결의가 세번째, 네번째 수에서 두드러진다.

 

 

“새 짐승 슬피 울고 바다와 산도 시름거리니

 

무궁화 세상은 이미 망하고 말았네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역사를 돌이켜보니

 

글 아는 사람 구실 어렵기만 하구나.

 

 

 

일찍이 나라를 위해 한 일 조금도 없었으니

 

충은 아니요 다만 인을 이루려 함이로다

 

겨우 송나라의 윤곡처럼 자결할 뿐이니

 

당시 진동처럼 의병을 일으키지 못해 부끄럽네.”

 

 

한용운의 ‘매천선생’

황현의 순국에 감동한 만해 한용운은 ‘매천선생’을 지어 그를 추모했다. 1914년 한용운이 직접 써 유족들에게 전했고, 황현의 친필 유묵인 ‘사해형제’(四海兄弟) 10권에 전한다.

 

 

“의리로써 나라의 은혜를 영원히 갚으시니

 

한 번 죽음은 역사의 영원한 꽃으로 피어나네

 

이승의 끝나지 않은 한 저승에는 남기지 마소서

 

괴로웠던 충성 크게 위로하는 사람 절로 있으리”

 

 

◆“장사의 의지는 뜨겁도다”-황현이 담은 안중근의 시

 

황현은 신문 자료를 모은 ‘수택존언‘(手澤存焉)이란 책을 남겼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데, 안중근 의사의 시가 담겨 있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위해 하얼빈을 찾기 이틀 전인 1909년 10월 24일 지었다는 시다.

 

 

“대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그 뜻이 크도다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가.

 

천하를 굽어 보노니 어느 날에 큰 일을 이룰꼬

 

동풍은 점점 차가우나 장사의 의지는 뜨겁도다

 

(…)”

 

 

◆“가엾은 박쥐여…멸망하는 겨레여”-이육사의 ‘편복’

 

 

이육사(왼쪽)의 ‘편복’ 친필원고
이육사의 ‘편복’ 친필원고

이육사의 작품은 여러 편이 전하나 친필원고로 남은 것은 ‘편복’(등록문화재 713호)와 ‘바다의 마음’(〃 738호) 두 편 뿐이다. 편복은 저항시인으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광명(光明)을 배반한 아득한 동굴(洞窟)에서

 

다 썩은 들보와 무너진 성채(城砦) 위 너 홀로 돌아다니는

 

가엾은 박쥐여!

 

(…)

 

멸망하는 겨레여!”

 

 

빛이 차단된 동굴을 떠도는 박쥐의 비행을 ‘멸망하는 겨레’로 상징화했다. 이 시는 일제의 검열을 피하지 못했고, 해방된 후인 1956년 ‘육사시집’에 실리면서 발표됐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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