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이 또다시 시민들 입길에 오르내린다. 서울시가 광화문 앞과 서편 차로를 없애는 내용의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설계 당선작을 발표하면서다. 서울시는 ‘세계 최대 중앙분리대’라는 조롱을 받는 현재의 광화문 광장을 역사성과 시민성, 보행성을 갖춘 명실상부한 시민들의 광장으로 탈바꿈시키겠다고 공언한다. 하지만 교통 혼잡과 예산 낭비, 세종대왕·이순신장군 동상 이전 등을 둘러싼 논란은 10여년 전과 다름없다.
송민섭 사회2부 차장 |
행안부 장관이 총대를 메고 나선 것도 이례적이다. 행안부 반박 자료 직후 양측 간 실무협의체가 구성돼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나 했는데 김부겸 장관이 직접 나섰다. 김 장관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합의 안 된 사안을 그대로 발표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며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성토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서는 “서울시 안대로 하면 (정부서울청사의) 마당과 뒤편이 뺏기는데 그러면 청사 자체를 못 쓴다”고 재차 못 박았다.
반대 명분은 약한 편이다. 행안부는 그저 차량 진·출입이 힘들고 주차장·부속건물을 이전해야 하는데 서울시가 사전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는 내용만 되풀이한다. 정부청사가 조선 시대 육조거리를 잇는 대표적인 건물이라는 지적은 나오지도 않았다. 역사성 회복을 위해 왕정 권위의 상징인 월대를 내세운 서울시와 ‘도긴개긴’이다. 그러다 보니 차기 대권을 둘러싼 유력 주자들 간 기 싸움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는다.
광화문 광장을 둘러싼 박 시장과 김 장관의 설전을 정치적이라고 탓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프랑스 정치학자 루시앙 소페즈에 따르면 “정치는 상징에 관계하는 일”이다. 특히 한국에서 광화문과 세종로는 예로부터 정치·행정·문화의 중심이었다. 집권세력이 ‘자신의 권력을 미학적으로 드러내 정당성을 확고히 하려는 정치적 욕망’(하상복 목포대 교수)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서울시와 행안부 모두 지엽적인 문제에 매달려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광장의 원형인 고대 그리스 아고라(agora)는 ‘모이다’는 뜻이다. 유럽의 광장을 연구한 프랑코 만쿠조 교수는 “교통에 방해받지 않으면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만남, 의견교환, 산책, 휴식이 이뤄지는 장소”로 광장을 정의한다. 다양한 사람, 집단 간의 대화와 소통을 통해 생산적 갈등과 합의를 이루는 곳이 바로 광장이라는 얘기다.
광화문 광장을 바라보는 시각과 목표는 다양할수록 민주주의에 부합한다. ‘서울의 중심이자 민주주의 성지를 시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박 시장의 생각과 정부청사 관리·운영 최종 책임자로서 김 장관의 입장이 부딪칠 수 있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우리 모두의 문제의식과 노력으로 세종로가 지금의 광장으로 거듭났다는 점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차량 통행로나 관치행정 전시장에 그쳤던 과거보다는 진일보했다. 광화문 광장을 둘러싼 소소한 이견이 다양한 만남과 의견이 분출돼 융화하는 대의까지 그르쳐선 안 된다. 물론 그 접점은 광장의 정신이기도 한 진정 어린 대화와 열린 소통에서 나온다.
송민섭 사회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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