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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운전자 교통사고 논란…노인 운전 제한만이 해법? [김현주의 일상 톡톡]

입력 : 2019-02-21 05:00:00 수정 : 2019-02-21 09:5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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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운전자 사물인지 능력, 집중력 낮아…사고 위험성 높아 / 정부 75세 이상 운전자 운전면허 갱신, 적성검사 주기 단축…실효성 의문이란 지적도 / 누구든 언젠가 고령운전가 될 수 밖에 없는 현실…교통표지판 글자 크기 확대, 전방신호등 설치 등 교통 인프라 개선해야
일반적으로 고령운전자는 사물 인지 능력과 집중력이 떨어져 사고를 일으킬 위험이 높습니다. 외부적 요인으로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도 순간적인 대응 능력과 민첩성이 떨어지는데요.

고령자의 돌발 상황에 대한 반응 속도는 비고령자에 비해 2배 가량 느린 1.4초로 나온 실험 결과도 있습니다. 제동 거리 반응도 30~50대 운전자에 비해 2배 정도 긴데요.

영국 버킹엄궁은 지난 9일(현지시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 필립공(98)이 운전면허를 포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필립공은 지난달 17일 맞은편에서 오던 차량과 충돌사고를 내 세계적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는데요. 그러고도 이틀 만에 안전벨트도 매지 않은 채 운전하다 경찰에 적발됐습니다. 이로 인해 운전이 '취미'인 그도 결국 백기를 들었는데요.

'고령층 운전허용 논란'은 이미 전 세계적인 이슈입니다. 일본은 1998년부터 노인 운전자의 면허증 자진반납제를 도입했음에도 급격한 고령화 사회다보니 노인 운전자는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인데요. 그러자 정부는 매년 증가하는 고령운전자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올해부터 75세 이상 운전자의 운전면허 갱신 및 적성검사 주기를 기존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운전면허 갱신 주기를 2년 단축한다고 교통사고가 줄어들지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요. 면허 갱신 때 교통안전교육을 2시간 받도록 한 조치도 효과가 의문시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고령 택시운전사의 경우는 타인의 생명이 걸려 있는 만큼 보다 엄격히 운전면허를 관리해야 한다는 게 중론입니다. 이들이 낸 사망 사고는 고령 운전자 사망 사고의 27%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물론 교통표지판 글자 크기를 확대하고 전방신호등을 설치하는 등 고령 운전이 편한 교통 인프라를 갖춰 나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도 언젠가 고령 운전자가 될 수밖에 없어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90대 운전자가 운전하던 차에 행인이 치여 숨지는 사고가 최근 발생하면서, 노인운전자 교통사고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지난 12일 오후 6시20분쯤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호텔 주차장 앞에서 유모(96)씨가 몰던 차가 후진 도중 행인 이모(30)씨를 치었는데요. 이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습니다.

작년 12월에는 부산의 한 70대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후진 도중 햄버거 가게로 돌진했고, 같은해 11월3일에는 경남 진주시에서 주차를 시도하던 70대 운전자가 브레이크 대신 가속페달을 밟아 병원 입구로 돌진하는 사고를 내기도 했는데요.

나이가 들수록 인지능력과 신체 반응력이 저하돼 교통사고 위험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나이 들수록 인지능력·신체반응력 떨어져…교통사고 위험 高高

고령사회의 급속한 진입으로 노인운전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실제 교통사고 통계로도 입증되고 있는데요.

도로교통공단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2013년 1만7590건에서 2014년 2만275건, 2015년 2만3063건, 2016년 2만4429건, 2017년 2만6713건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전체 교통사고 중 고령운전자 사고 점유율도 2014년 9%, 2015년 9.9%로 10%를 밑돌다 2016년 11%를 기록하며 처음 10%대에 진입했고, 2017년에는 12.3%로 높아졌는데요.

고령운전자 사고 건수가 늘면서 사상자도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2013년에는 사망자 737명·부상자 2만5734건이었으나 2017년에는 사망자가 848명으로 4년 만에 15%(111명), 부상자는 3만8627명으로 50%(1만2893명) 각각 증가했습니다.

특히 75세 이상의 교통사고 증가율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2012∼2017년 교통사고 증감률을 보면 75∼79세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14.3%, 그에 따른 사망자는 4.4% 증가했습니다.

80세 이상은 발생 18.5%, 사망자 16.8%로 증가율이 더 높아진 반면 같은 고령운전자로 분류됐어도 65∼69세는 발생 7.8%, 사망자 1.1%로 증가율이 낮았는데요.

◆고령운전자 사고 건수 늘면서 사상자도 급증

그렇다면 고령 운전자가 앞차를 피하려다 신체 반응이 떨어져 제동장치를 잘못 조작, 버스정류장으로 차량을 돌진해 3명의 사상자를 냈다면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요.

재판부는 금고형을 결정하면서 형 집행을 유예했습니다. 피고인이 피해자 유족과 합의하고, 혈액암을 앓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양형했습니다.

재판부는 양형 기준에 따라 형을 정하면서도 "피해자들에게 아무 과실이 없는데도 사망에 이른 결과는 매우 중하고 피고인의 죄책이 무겁다"고 강조했는데요.

법원과 경찰에 따르면 2017년 7월13일 오전 11시20분쯤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에서 A(77)씨가 운전하던 승용차가 버스정류장을 들이받았습니다.

A씨는 정류장에 버스가 정차하자 당황해 핸들과 제동장치를 잘못 조작, 정류장으로 돌진했는데요. 이 사고로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있던 B(72)씨가 A씨의 승용차에 치여 숨졌습니다. 사망원인은 다발성 골절과 내부 장기 손상이었는데요.

B씨 옆에 있던 C(61)씨와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던 D(71)씨가 치여 골절 등 전치 2∼5주의 상해를 입었습니다.

이들 3명은 날벼락을 맞은 것인데요. 음주 운전이나 졸음운전은 아니었습니다.

A씨는 앞을 제대로 보고 운전했으나 단지 '나이'가 문제였는데요. 경찰은 A씨가 고령이어서 인지능력과 신체반응력이 떨어져 앞에 정차한 버스를 보고 핸들과 제동장치를 제대로 조작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과실이었지만 피해가 커 A씨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사·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의정부지법 형사9단독 유성혜 판사는 지난해 8월 A씨에게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는데요.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에게 아무 과실이 없는데 피고인의 과실과 그 결과가 매우 중해 죄책이 크다"며 "사망 피해자 유족, 상해 피해자 등과 합의한 점,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고령으로 혈액암을 앓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양형했다"고 판시했습니다.

◆운전면허 자진 반납한 운전자 1만5528명…대부분 고령운전자

고령운전자 교통사고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정책적 대응도 이뤄지고 있는데요.

올해부터는 75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 갱신·적성검사 주기가 기존 5년에서 3년으로 짧아졌고, 의무적으로 2시간짜리 교통안전교육도 이수해야 합니다.

교육에는 기억력과 주의력 등을 진단하는 '인지능력 자가진단'이 포함되는데요. 치매 의심 운전자는 별도로 간이 치매 검사를 거쳐 수시 적성검사 대상으로 편입한 뒤 정밀진단을 거쳐 운전 적성을 다시 판정합니다.

업계 한 전문가는 "일본은 인지기능검사 결과에 따라 교통안전교육 시간과 내용에 차등을 두고 있고, 75세 이상 운전자가 법규를 위반하면 면허 갱신주기와 관계없이 인지기능검사를 받도록 한다"며 "향후 이런 방안에 관한 전문가 논의와 사회적 합의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고령운전자가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하면 교통비 등을 지원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미 부산에서 지난해 시행해 실제로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사망자가 감소하는 효과를 봤는데요. 서울 양천구도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자의 운전면허 반납을 권장하는 조례를 제정했습니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사회로 접어든 일본에서는 1998년부터 시행하는 제도입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 1월 말까지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한 운전자는 1만5528명이었습니다. 대부분 고령운전자라고 경찰은 전했는데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교통사고로 사상이 발생하면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양형 기준은 사망자가 있으면 금고 8월∼2년입니다.

교통사고는 원칙적으로 '반의사불벌죄'에 해당돼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습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해도 자동차 종합보험이나 공제에 가입돼 있으면 실형을 피할 수 있는데요.

다만 뺑소니, 음주 운전 등 중과실에 해당하면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처벌습니다.

◆초고령사회 현실 감안…고령운전자 이동권 확보 위한 다양한 방안 모색해야

이런 가운데 고령자 안전과 이동권 확보를 위해 지리적·시간적 운행 범위를 제한하고, 식별 표시를 차량에 부착하는 제도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습니다.

보험연구원의 '고령인구 이동권 확보 방안' 보고서는 "고령자 운전면허 갱신요건 강화 등이 고령자 이동권 제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는데요.

특히 대도시를 제외한 일부 지역은 차량운행을 하지 않으면 장보기, 의료기간 방문 등이 어려워 고령자가 지역사회로부터 고립될 수 있습니다.

보고서는 고령운전자 안전과 이동권 확보 모두를 고려해 고령운전자 건강 상태와 인지능력에 따라 지리적·시간적 운행 범위를 제한하는 '제한면허제도' 운영을 제안했는데요.

'제한면허제도'는 장거리 운전은 제한하되 거주지 주변 의료기관·복지시설 등 근거리 운전은 허용하고, 밤이나 비가 오는 날 등 운전에 어려움이 있는 시간대 운전을 금지하는 방식입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는 운전자 평가 결과에 따라 주간 또는 특정 지역에서만 운전이 가능하도록 제한을 두거나 자동변속 장치와 같은 운전 보조 장치, 교정 안경 사용을 의무화하는 등 운전면허에 일정 제한을 두는 제도를 이미 운영하고 있습니다.

보고서는 고령자 운전 차량에 별도 표식을 붙여 교차로, 차선 변경, 진입로 등에서 우선권을 갖도록 하고, 표식 차량과 차대차 자동차사고 때 상대 차량에 책임을 가중해 고령운전자 자동차사고 발생 감소를 유도하는 방안도 내놓았는데요.

운전을 하지 못하는 고령자 이동권 확보를 위해서는 지역별 특성에 맞는 공유승차제도 도입, 전화를 이용한 택시 호출 서비스 등을 제안했습니다.

보고서는 "단순히 고령자의 운전을 제한하기 보다는 고령자의 이동권 확보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초고령사회에 대비하는 방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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