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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의문학의숨결을찾아] 목포는 문학의 항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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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2-15 21:02:18 수정 : 2019-03-18 16: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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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박화성… 문학인들의 흔적/대학시절 문학적 향수의 시작점

만 스무 살 나이 여름에 대전역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목포에 갔다. 대학 동창 집에 신세를 질 작정이었지만 계획은 처음부터 빗나갔다. 친구는 거꾸로 서울에 가고 없었던 것이다. 반 무전여행이 유행이던 시대, 손에 몇 푼 안 쥐고 목포 돌아 합천 찍고, 부산도 가려 했던 대담무쌍한 시절의 나였다.

 

목포는 항구이니까 먼저 바다 구경 하러 가까운 항구를 물어 찾아갔다. 바다 구경 끝에 날은 금방 저물었지만 더 가보아야 할 곳이 있었다. 목포 하면 유달산, 유달산 하면 노적봉. 어렸을 적 기억은 오래가는 법.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군의 기세를 꺾기 위해 이엉으로 이 봉우리를 덮어 군량미가 많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곳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멀지 않은 노적봉을 찾아 올라갔지만 이미 날은 저물었고 바다의 항구 목포 시가지는 여름 밤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유달산 언덕길 내려오는데 다방이 있었다. 그 무렵 대전은 ‘브라암스’다, ‘큐빅’이다, ‘질투’다 하는 ‘신식’ 테마 카페 유행 시대였다. 목포는 달랐다. 고풍스러운 1960년대식 문을 열고 들어서자 눈에 가득 들어온 것은 벽에 걸린 서화. 한국화, 서예 작품, 그리고 젊은이의 예민한 코를 자극하는 한방차 내음.

 

다시 오랜만에 찾아든 항구 목포, 희끗희끗 눈발이 흩날렸다. 문학인의 자취 찾아 나선 길, ‘갓바위’ 가까운 곳에 문학관이 있다. 그곳에 김현(1942~1990), 박화성(1903~1988), 차범석(1924~2006), 김우진(1897~1926)의 체취가 서려 있다.

 

바다는 언제라도 마음을 놓게 한다. “정말로 바다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르지만, 그러나 바다로 가는 노력을 나는 그쳐 본 적이 없다.” 진도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성장한 이 김현의 연구실을 나는 아무것도 모르던 대학시절에 복도를 지나치며 힐긋거린 적이 있다. 일찍 세상 떠난 김현의 문장이 가슴을 적셨다. 그는 바다의 목포를 떠나 1960년대의 서울로 온 것이었다. 김현의 문학비 옆에 선 ‘산문시대’, ‘문지’ 동인들, 김현이 떠나고도 그들은 긴 시간을 걸어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박화성은 첫 장편소설이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역사소설이었다. ‘백화’라는 소설 제목은 이 시대를 살아간 여인의 이름이었다. “고려 28대 충혜왕이 심히 황음무도하여 실정 폐덕이 날로 심하여 갈 때였다.” 박화성이 백화를 쓰기 시작한 것은 불과 스물다섯 살 나이, 그때 한국문학은 나혜석, 김명순, 김일엽의 제1세대 여성 작가의 시대가 바야흐로 제1막을 장식하고 난 때였다. 그녀에 이르러 비로소 자신의 소설가 인생을 역사소설로 시작하는, 그러면서도 문체 뛰어난 여성 작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문학관을 나오면 그 옆에 화가 허건을 기리는 남농기념관이 있다. 닫힌 문 억지로 열고 들어가듯 들어선 남농의 공간은 고즈넉하다 못해 쓸쓸하기까지 했다. 진도 운림산방의 주인 소치 허련의 손자로 한국 남화의 명맥을 이은 근대 한국화의 주인 남농. 나는 그가 아교에 돌가루를 풀어 점묘기법으로 그려놓은 진도 운림의 따사로운 봄 풍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아주 젊은 나이에 세상 떠난 그의 아우 허림이 일찍이 이 점묘기법을 한국화에 착근시켰다는데, 그 그림 ‘보리언덕’은 하나의 유토피아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그리고 눈앞에 노적봉이 있었다. 그곳 정자에 올라 목포 앞바다 삼학도를 내려다보고는 근대 역사관으로 갔다. 거기 개항기의 목포가 있었다. 하루 꼬박 목포 기행. 그러니까 나는 그 여름 이후 두고두고 목포를 잊지 못했던 것이다. 이름 모를 여행객 떠난 홍도를 나도 찾아 떠났던 1984년이었다. 그 후 목포가 몇 번이었나.

 

목포는 1번 국도의 남쪽 기점이다. 이 ‘먼’ 남쪽에서 문학과 예술을 일궈 온 사람의 흔적이 새삼스러운 하루다. 오늘도 그날처럼 벌써 해가 저물었다. 발길을 돌리며 생각한다. 이 목포가 어쩌면 내 문학의 향수의 시작점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가수 이난영의 목포가 문학의 항구이기도 했던 것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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