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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정의의 여신은 왜 눈을 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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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2-14 21:36:00 수정 : 2019-02-14 21: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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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세력의 내로남불 현상은/정의보다 자기 이익 앞세운 탓/하얼빈 구국 의거 110주년 맞아/안중근처럼 利 보면 義 생각하길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똑같은 사안을 놓고 왜 잣대가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지 말이다. 김경수 경남지사 재판 논란만 해도 그렇다. 유죄 판결이 나오자 더불어민주당은 재판장을 향해 “적폐 사단의 조직적 저항”이라고 맹공했다. 그가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에서 징역 8년을 선고했을 때에는 “법원의 현명한 판단”이라고 치켜세웠던 여당이 180도로 태도를 바꾼 것이다. “한국서 보기 드문 진정한 판사”로 칭송했던 친문 세력들도 “양승태의 개”라고 독설을 뿜었다.

손혜원 의원 사건은 또 어떤가. 부동산 소리만 나와도 눈에 불을 켜던 여당 의원들이 목포 구도심 주택 대량 매입에 대해선 면죄부를 주었다. 이참에 당사자는 자기 돈을 희생해 죽은 도시를 살린 의인 흉내를 낸다. 일전에 문재인 대통령은 공무원들을 만나 “정권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공직자가 돼선 안 된다”고 당부한 일이 있다. 근자에 ‘영혼 있는 공무원’이 정말로 출현했다. 대통령의 말을 충실히 좇아 권력 내부의 비리를 고발한 것이다. 훈장을 줘도 아깝지 않을 터이지만 이들에게 돌아온 건 “양아치”라는 말 폭탄뿐이었다.

배연국 논설위원
이것이 우리의 정치 수준이다. 어느 기업인이 꼬집은 사류 정치의 모습 그대로다. 세계 10위권을 넘나드는 경제대국에서 어떻게 이런 저급한 ‘내로남불’ 현상이 횡행할 수 있는가? 그 의문의 매듭이 드디어 풀렸다. 춘추전국시대 한비자의 글을 접하고 나서였다.

‘수레를 만드는 사람은 남이 부유해지기를 바라고, 관을 만드는 사람은 남이 일찍 죽기를 바란다. 수레를 만드는 사람이 어질고 관을 만드는 사람이 악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부유함이나 죽음에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부유해져야 수레를 사고, 사람이 죽어야 관이 팔리기 때문이다.’ 이런 글도 남겼다. ‘사람들은 뱀이나 나비유충을 보면 질색한다. 그런데 어부는 뱀을 닮은 장어를 맨손으로 잡고, 비단을 짜는 아녀자는 나비유충을 닮은 누에를 맨손으로 잡는다. 이익 앞에서는 누구나 용자가 된다.’

‘이(利)’의 관점에서 인간의 행동을 파악한 한비자의 통찰력에 무릎을 치게 된다. 최순실 사태 당시 고영태·노승일을 의인으로 받들던 세력들이 내부 고발자 신재민·김태우에게 독을 품는 저의가 비로소 분명해졌다. 촛불을 든 그들도 한때 정의를 외쳤을 것이다. 그 정의가 지금 자기 이익 앞에 ‘바람 앞의 촛불’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사심의 눈을 뜨고 있으니 고영태는 장어이고, 신재민은 뱀으로 보이는 것이다.

내로남불식 시각으로 정의를 재단해선 안 된다. 그런 왜곡된 시각이라면 차라리 눈을 감는 편이 낫다. 그리스 신화 속 ‘정의의 여신’ 디케는 어떠한 편견도 개입되지 않도록 아예 두 눈을 붕대로 동여맨다. 정의를 외치는 자들의 자세는 이와 같아야 한다. 정의는 편이 없다. 눈가리개를 풀고 피아를 가르기 시작하면 권력의 칼은 흉기가 된다.

정의는 사익보다 공익을 앞세운다. 공익의 가장 큰 자리는 마땅히 국익이다. 그런 올곧은 정의관을 죽는 날까지 간직한 분이 바로 안중근 의사이다. 110년 전 이토 히로부미를 응징한 안 의사는 뤼순 감옥에서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라고 썼다. 이로움을 보면 대의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우면 목숨을 바친다는 뜻이다.

안 의사는 유묵의 글귀처럼 언제나 대의를 먼저 생각했다. 그는 감옥으로 찾아온 두 동생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나라를 위한 진한 묵향이 가슴으로 스미지 않는가. 정의란 그런 것이다.

아직도 정의의 참뜻을 모르는 위정자들이 있다면 안 의사의 친필 유묵이 보관된 부산 동아대 박물관을 가보기 바란다. 액자의 끝자락에 선명한 손바닥 도장이 보일 것이다.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 잘랐다는 네 번째 손가락! 온전한 손으로 제 밥그릇 움켜쥐기에 바쁜 이들이 가슴에 화인으로 찍을 안중근의 정의가 아니겠나.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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