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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졸업장 미래 보장해주지 않는다"…2.4% 바늘구멍 뚫기 도전하는 청년층 [일상톡톡 플러스]

입력 : 2019-02-17 05:00:00 수정 : 2019-02-14 15: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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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고졸 취업 활성화 방안으로 9급 공무원의 고졸 채용을 확대하기로 한 것을 놓고 역차별 논란이 일고 일자 결국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오해"라며 직접 해명에 나섰습니다.

유 부총리는 지난달 2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방직 공무원에서 기술계고 선발을 늘리는 것은 (일반 9급 공무원 공채와) 직렬이 구분돼 있다"면서 "일반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요.

앞서 교육부는 지난달 25일 고졸 취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며 국가직 공무원 채용에서 직업계고나 전문대 졸업생을 뽑는 지역인재 9급 채용 전형의 비중을 지난해 7.1%(180명)에서 2022년 20%(약 500명)까지 늘리겠다고 밝혔습니다.

발표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고졸자에게 특혜를 주는 역차별'이라며 이 정책을 취소하라는 국민 청원이 여러 건 올라왔는데요.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평등한 기회 보장할 것"…공시생 "대졸자·전문대생 상대적 박탈감 상당해"

이에 대해 교육당국은 국가직 9급 공무원 선발에서 '9급 공무원 공채'와 '국가직 지역인재 9급'은 별개 채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국가직 지역인재 9급은 직업계고와 전문대 졸업(예정)자만 대상이며, 학교장 추천 및 시험을 통한 제한경쟁으로 선발합니다.

즉, 지역인재 9급 채용 인원이 늘어난다고 해서 9급 공무원 공채 인원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게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정부는 국가직 지역인재 9급 채용을 지난해 180명에서 올해 210명으로 늘리고, 2022년에는 약 500명까지 늘릴 계획인데요. 이와 별개로 9급 공무원 공채도 지난해 4953명에서 올해 4987명으로 늘릴 방침입니다.

다만 당국의 이같은 설명에도 공무원시험 준비생의 불만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데요.

고졸 채용 비율을 절대적으로 높이는 것은 취업률이 낮아진 대졸자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을 높이는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입니다.

물론 당장 고졸 채용 비율이 일반 직렬에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향후에도 고졸 채용 확대가 전체 공무원 시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문대생들도 불만이 있긴 마찬가지인데요. 고졸자 위주로 구성된 해당 전형이 기술직 외 분야에서 전문대생을 사실상 배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 부총리는 "청년 취업이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공무원 기회가 줄어들지 않을까, 뺏기는 거 아니냐' 하는 우려를 하는 것 같다"면서 "청년 취업 활성화 대책에 관해서는 훨씬 범정부적 차원의 정책이 필요하고, 방안을 찾고 있다.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평등한 기회가 보장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美 하버드대 신입생 합격률 4.59% vs 韓 공무원시험 합격률 2.40%

이런 가운데 미국 일간지 LA타임스가 최근 한국의 공무원시험 열풍을 조명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이 신문은 "3년 넘게 '공시'(공무원시험)에 매달려온 26세 공시생이 그동안 10번이나 각종 공시에서 낙방했으나 여전히 올 4월로 예정된 다음 시험을 위해 하루 8시간 넘게 공부하고 있다"고 전했는데요.

공무원 초임은 연봉 1만7000달러(1914만원)에 불과하지만 은퇴할 때까지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공무원보다 더 나은 직업은 없다는 이 공시생의 전화 인터뷰도 곁들였습니다.

신문은 아시아 4대 경제 강국인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처럼 공무원시험으로 몰리는 것은 세계 경제 성장 둔화에다, 수출 산업에서 중국과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진 상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해석했는데요.

그동안 한국의 경제 성장에 빠른 동력을 제공해온 전자·자동차·조선 부문에서 시장 상황이 예전만 못하다는 점도 고려되는 요인입니다.

한국 청년층이 장래에 K-팝 스타나 제2의 스티브 잡스를 꿈꾸기보다는 현실적으로 훨씬 더 안정적인 정부 일자리를 쫓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의 107만개 정부 일자리를 향한 경쟁은 매우 격렬한 수준이라고 이 신문은 평했는데요.

지난해 한 공무원시험에는 4953명을 뽑는 데 20만명 넘는 응시자가 몰려 합격률이 2.4%로 파악됐다고 신문은 전했습니다. 이는 같은해 하버드대학 신입생 합격률(4.59%)보다 2배 이상 치열한 것인데요.

온라인 서점에서 최근 공무원 수험서 매출이 전년 대비 73.5% 급증했다는 소식도 전했습니다.

다음달 대학 졸업을 앞둔 한 대학생은 LA타임스에 "대학 졸업장이 있다고 전혀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사회에 나와 있는 가장 안정적인 길로 가고자 한다"라면서 '공시 준비'에 전념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신문은 일자리 늘리기에 전력을 다하는 문재인 정부가 2022년까지 17만4000개의 정부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공약했다고 소개하면서도, 정부 대책이 한국의 공무원시험 열풍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을 것이라고 진단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청년층 "공시가 비교적 공정…다른 대안 사실상 없어"

최근 한 취업포털 조사에서도 '미래 자녀 희망직업 선호도' 1위는 공무원(31.4%·복수응답)으로 지난해 조사에 이어 또다시 1위에 등극했습니다.

이어 의사 간호사 약사 등 '의료인'(21.6%) 검사 판사 변호사 등 '법조인'(17.8%)이 2, 3위를 차지했는데요.

이런 공무원 선호 현상은 이 직종이 신분의 안정성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박봉으로 알려진 공무원 보수도 전보다 많이 개선됐는데요. 지난해 공무원 평균연봉은 6264만원을 기록했습니다.

다만 이같은 공무원시험 열풍이 경기 불황이라는 상황과 위험을 회피하고 안정만 추구하려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는데요.

한 전문가는 "우리네 젊은 세대에게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 기성세대의 책임도 크지만, 젊은 인재가 기술과 아이디어를 통해 도전과 개척을 하려는 의지가 없는 경우 경제의 활력이 없어지고 결국 성장은 불가능해진다"고 우려했습니다.

◆공시 열풍 이대로 괜찮을까?

명문대를 나왔든, 지방대를 졸업했든 고교 동창들이 공무원시험장에서 만난다는 것이 더 이상 우스개 소리가 아닌 세상입니다.

설령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바늘구멍을 통과해 대기업에 입사해도 정년까지 근무하는 게 쉽지 않지만, 공무원은 정년 보장으로 직업 안정성이 뛰어나 몇 년쯤 공시에 투자해도 합격만 하면 손해가 아니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데요.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상황은 아닙니다. 중국도 한국처럼 공무원에 대한 2030대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글로벌 투자 대가 짐 로저스는 최근 "한국 청년들의 공무원·대기업 시험 열풍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며 "활력을 잃고 몰락하는 사회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이대로 가면 5년 안에 몰락의 길 걸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각계 전망을 종합해보면 앞으로 국내 경기는 더 안 좋아질 것이고, 국제 경제는 더 불안해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이럴수록 청년들은 더욱 공시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데요. 온갖 채용비리를 목격한 청년들의 눈에 공시가 비교적 공정한 경쟁으로 각인된 탓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취업시장에서 공정성의 자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공시족의 수는 더욱 늘어나고, 결국 낙방자·포기자·실업자 수도 증가할 것입니다. 공시 열풍 이대로 방치해도 되는 걸까요?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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