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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5·18 논란과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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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2-13 23:59:47 수정 : 2019-02-13 17:3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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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설도 새 이론·증명 제시되면 / 엄격 검증 후 바로잡는 게 순리 / 사회적 논쟁 바람직하지 않아 / 중립적 조사 할 상설기구 설치를 인생을 살다보면 무릎을 칠 때도, 머쓱하거나 허탈할 때도 있다. 국문학자 양주동 박사가 1930년대 신라 향가를 처음 현대어로 풀어냈을 때 사람들은 무릎을 쳤다. 40여년이 흐른 70년대 경주방언 등을 가미한 김완진 교수의 새로운 해석이 나오자 또다시 무릎을 쳤다. 학계의 국보로 일컫던 양주동 박사는 머쓱해졌지만 그의 연구 성과가 폄훼되진 않았다. 이런 게 학문의 발전이고 후학의 역할이다.

우주 나이가 졸지에 1억년 늘어난 2013년은 이론물리학 빅뱅의 해이다. 이전까지 우주 나이는 137억년이 정설이었다. 마이크로웨이브망원경(WMAP)이 천체 가운데 가장 멀리 있는 준항성체 퀘이사를 관측한 결과다. 하지만 2013년 ‘빅뱅으로부터 지금까지 걸린 시간’으로 계산하는 새 측정법이 제시되면서 우주 나이는 137.98±0.37억년으로 수정됐다. 기존 정설은 순식간에 사라져 출판사마다 개정판을 내느라 분주했다.
조정진 논설위원 겸 통일연구위원


1980년 5·18을 놓고 또 국론이 분열되고 있다. 이성적 논의와 차분한 검증은 실종되고 감정적 주장과 입막음, 겁박, 폭력이 난무한다. 성숙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민낯 그대로다. 지난해 여야는 5·18진상규명법을 합의했다. ‘5·18 관련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규명함으로써 국민통합에 기여’하는 게 목적이다. 세부조항 중에는 ‘최초 발포자 및 계엄군의 헬기사격 경위’ 규명과 함께 ‘북한군 개입 여부’ 등 그동안 제기된 의문들이 두루 포함돼 있다.

관련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자료를 차분하게 제시하면 된다. 주장이 다르다고 집단 매도와 언어·물리적 폭력을 쓰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자 범죄다. 용산참사는 전철연 노선 때문이라는 칼럼 ‘김석기를 위한 변명’(2013년 11월28일)이 나가자, 전철연은 신문사를 찾아와 내 멱살을 잡고 온갖 욕설과 민형사 소송을 걸겠다고 윽박질렀다. 진실이 드러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5·18진상규명법도 입법 취지에 맞게 어떤 주장이든 공론의 장에서 검증하고 입증하면 된다.

얽히고설킨 5·18 해법을 제시한다. 일명 노숙자담요의 기하학 영상 판독법으로 접근한 시스템공학자 지만원 박사의 ‘광수(광주시민군으로 위장한 북한 특수군)’ 시리즈는 오류가 적잖이 눈에 띈다. 광수로 지목된 당사자들의 부인과 반발도 있다. 하지만 북한이 해마다 치르는 5·18 기념행사장 맨 앞줄에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앉아 있는 5·18 영웅에 대해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다. 몇몇 오류로 전체를 매도하는 것보다 지 박사가 제기한 629명의 광수를 일일이 사실 확인하는 방식을 병행하는 게 합리적 접근이다. 629명 중 단 한 명이라도 맞는다면 그의 주장은 수용해야 한다.

북한엔 5·18천리마운동, 5·18공장 등 관련 명칭이 많다. 교과서에도 5·18에 대해 ‘주체의 기치에 따라 남조선 애국인민이 호응해 일으킨 가장 성공한 인민혁명 사건’으로 기술하고 있다. 남파간첩 김동식에 의하면, 80년 남파된 거물간첩 이선실은 인민항쟁이 광주에 머문 걸 통탄하며 중부지역당 등 ‘전국 규모 조직’을 만들었다. 북한이 5·18을 대남 적화의 중요한 자산으로 취급해 온 건 분명하다.

5·18 북한군 개입설은 지 박사보다 먼저 탈북자들이 제기했다. 본인 또는 지인이 겪은 일이라며 책을 쓰거나 강연, 인터뷰를 통해 공론화했다. 일부 탈북자는 정부합동신문에서 5·18 관련 침묵을 강요받았다고 증언한다. 고교 교장을 지낸 교육계 인사는 “휴교령으로 집에 가 있던 80년 당시 마을 뒷산에서 15명씩 떼 지어 다니는 수상한 사람들을 만났고, 말까지 걸어보았으나 30년 이상 침묵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분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민주국가다.

이래저래 이제 5·18과 북한 관련 문제는 사회적 논쟁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북한의 대남 비밀공작 캐비닛이 열리기 전에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진실 규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때까지 최종 결론은 보류하고, 중립적 조사와 새로운 주장을 검증할 사회적 상설기구를 제안한다. 뒤늦게 무릎을 치거나 허탈해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조정진 논설위원 겸 통일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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