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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 작렬·권력 속성… 사이 멀어진 대통령·총리 왜? [이슈+]

박근혜·황교안 언쟁 계기로 행정부 1·2인자 관계 '눈길' / 서로 '서운함', '배신감' 토로한 역대 대통령·총리 사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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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2-10 11:34:17      수정 : 2019-02-10 11:40:08
비리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 중인 박근혜(구속기소) 전 대통령이 자유한국당 차기 당대표 유력 후보인 황교안 전 국무총리을 ‘디스’하고 나서면서 우리 헌법상 행정부의 ‘1인자’인 대통령과 ‘2인자’인 총리 사이에 새삼 이목이 쏠린다.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과 황교안 전 국무총리
대통령제 아래에서 국정운영의 중심은 대통령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대통령으로선 총리가 자신에게 그야말로 ‘충성’을 다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총리 본인이 차기 대권주자의 한 사람인 경우 현직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에 좀 더 신중해지려는 경향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이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 황 전 총리에게 내비친 서운함은 이른바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가 본격화한 시기(2016년 10월∼12월)는 물론 이후의 탄핵정국(2016년 10월∼2017년 3월)에서 2인자 - 탄핵정국에선 1인자인 ‘대통령 권한대행’ - 였던 황 전 총리가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했다는 섭섭함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복잡다단하고 변화무쌍한 대통령·총리 관계는 현직일 때는 물론이고 둘 중 한 사람이 물러난 뒤에도 계속이어지곤 한다. 대통령이 총리에게 섭섭함을 표시하고 총리 또한 대통령한테 배신감을 토로한 역대 주요 사례를 소개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왼쪽)과 이회창 전 국무총리
◆이회창 "YS, 나를 낙선시키기 위해 안간힘 쓴 듯"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총리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애증’의 관계로 통한다. 이 전 총리는 2017년 8월 펴낸 ‘이회창 회고록’(김영사)에서 둘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상세히 구술했다.

문민정부 개혁의 ‘아이콘’으로 통한 이 전 총리가 YS와 정면으로 충돌한 건 1994년 4월 이른바 ‘통일안보정책 조정회의’ 신설이 계기가 됐다. YS가 총리를 빼고 외교안보 관계 장관들만 따로 소집해 회의를 열자 이 전 총리가 이를 문제삼으며 “조정회의에 회부될 안건은 총리 승인을 받으라”고 관계 장관한테 지시한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노기 띤 목소리로 위압하듯이 말했으며, 그의 요지는 조정회의는 대통령 지시에 의해 설치된 것인데 총리가 여기에 이의를 달고 총리 승인을 받으라고 하면 총리가 대통령보다 위에 있느냐는 것이었다. (…) 대통령은 나의 말을 듣고는 있으나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 말이 끝나자 또다시 나의 지시가 대통령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라면서 이 총리는 어느 나라 총리냐고 말했다.” (‘이회창 회고록’ 중에서)

이 일로 이 전 총리는 결국 사표를 내고 정부를 떠났다. 하지만 1997년 신한국당의 총재, 이어 대선 후보가 되고 나서도 YS와의 충돌은 끊이지 않았다. 그해 10월22일 이 전 총리는 YS에게 “신한국당에서 탈당하라”고 요구하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 전 총리, 김대중(DJ) 총재, 이인제 전 경기지사가 맞붙은 대선 선거운동 내내 ‘YS가 실은 이회창 대신 이인제를 민다더라’는 식의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이 전 총리도 회고록에 “청와대는 말로는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한다고 말했지만 나를 확실하게 낙선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고 적어 YS를 향한 앙금을 드러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왼쪽)과 이한동 전 국무총리
◆이한동 "DJ가 나 밀지 않을까 어리석은 기대도…"

이한동 전 총리는 국민의정부 시절 DJ 밑에서 2년2개월간 총리를 지냈다. 그와 대통령의 관계는 비교적 순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한동 전 총리가 지난해 10월 펴낸 회고록 ‘정치는 중업이다’(승연사)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모양이다.

“김 대통령(DJ)은 2001년 가을 둘째 아들 홍업과 셋째 아들 홍걸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을 때 무척 심려가 크셨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어느날 내가 주례보고를 끝내고 나서 김 대통령의 평소 인품으로 보아 하시기 어려운 말씀을 나에게 하셨다. 느닷없이 ‘이 총리, 이 총리가 나고 내가 총리 위치에 있다고 하면 나는 이 총리를 뭔가 도와드렸을 겁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힘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약간의 섭섭함을 가지고 계신 것으로 느꼈다.” (‘정치는 중업이다’ 중에서)

이 전 총리는 원래 김종필(JP) 총재 측 인물이었으나 DJP연합이 깨진 뒤에도 2002년 7월까지 DJ정부 총리를 맡았다. 그때만 해도 여당에 확실한 차기 대선주자가 없었기에 이 전 총리는 DJ의 마음, 곧 ‘김심(金心’이 자신한테 올 것으로 예상했던 듯하다. ‘청문회 스타’ 노무현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당내 경선을 거치며 여당의 새로운 주자로 급부상했지만 ‘과연 이회창을 누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은 가시지 않았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내에는 뚜렷한 대선주자가 없었기에 나는 그 점에 관심을 두고 민주당이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절차를 진행하기 전 DJP연합의 복원을 전제로 김 대통령께서 나에게 어떤 언질이 있지 않을까, 어리석은 마음에 그렇게 되는 것을 기대하기도 했다.” (‘정치는 중업이다’ 중에서)

‘어리석은 마음’이란 표현에서 이 전 총리가 DJ에게 느낀 서운한 감정이 묻어난다. DJ는 이 전 총리를 선택하지 않았고, 그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패한 뒤 결국 정계를 떠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과 고건 전 국무총리
◆고건 "盧, 장관 임명제청 거부한 내가 싫었을 것"

고건 전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냈다는 점에서 황교안 전 총리와 비슷하다. 다만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당했을 때에는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 것’이란 믿음이 워낙 컸기에 고 전 총리로선 처신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황 전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은 결국 파면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던 만큼 청와대 눈치를 볼 필요가 훨씬 더 적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헌재 탄핵심판 기간인 2004년 3∼5월 노 전 대통령의 직무권한이 정지되면서 되레 고 전 총리 인기가 쑥쑥 올라갔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없으니 나라가 더 안정됐다’는 말까지 나왔다. 고 전 총리는 2017년 11월 펴낸 ‘고건 회고록’(나남)에서 당시 대통령 측근들의 견제가 얼마나 집요했는지 털어놓았다.

“대통령을 대신해 일하다 보니 TV 뉴스만 틀면 내 얼굴, 신문만 펴면 내 기사가 나왔다. 청와대 386 참모들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고 한다. ‘청와대로부터 압박을 받는다’는 총리실 간부들의 보고가 자주 올라오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고건 회고록’ 중에서)

탄핵소추 기각으로 노 전 대통령이 권좌에 복귀한 직후 고 전 총리가 사표를 낸 것은 2인자로서 당연한 처신이었다. 이때 그는 “총리를 그만두기 전 새 장관 임명을 제청해달라”는 노 전 대통령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다.

“나는 다시 말했다. ‘새로 임명된 총리가 신임 각료를 임명제청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노 대통령)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그래도 그걸로 결말이 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김우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나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안 된다’였다.” (‘고건 회고록’ 중에서)

이 사건의 ‘뒤끝’은 오래갔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고 전 총리 인기가 제법 높았던 2006년 12월 “고건 총리 발탁은 실패한 인사”라고 말했다. 이 비수와도 같은 한마디로 ‘고건 대세론’이 꺾이고 고 전 총리의 정치생명도 사실상 끊어졌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고 전 총리는 나중에 “노무현의 ‘실패한 인사’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노 대통령이) 날 싫어하게 된 이유는 짐작할 수 있어요. 총리를 그만두기로 하고 신문에 다 났는데 신임 장관 두 사람을 제청해달라는 걸 내가 거부했거든요.”

김태훈 기자 a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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