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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이 오는데 막을수도 없고…응급실 의사에게 주52시간? '꿈 같은 일' [일상톡톡 플러스]

입력 : 2019-02-12 05:00:00 수정 : 2019-02-10 11: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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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 연휴 근무 중 윤한덕(51)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갑자기 숨을 거두면서 우리나라의 열악한 응급실 환경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앞서 윤 센터장은 2017년 10월 추석과 개천절, 한글날로 이어지는 열흘간의 연휴를 한달여 앞두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연휴가 열흘! 응급의료는 그것만으로도 재난"이라고 썼습니다.

대다수 병원이 문을 닫는 명절 연휴,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응급실 빈자리가 부족해져 환자의 '골든타임'(치료 적정시기)을 놓칠까 봐 마음을 졸인다는 뜻이었는데요.

이 글을 올린 지 며칠 뒤 그는 "오늘은 몸이 3개, 머리가 2개였어야 했다. 내일은 몇 개가 필요할까?"라고 반문하며 응급의료 인력이 부족한 현실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탄했습니다.

각급 병원 응급실 의사들은 명절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밀려드는 환자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요. 가천대학교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2년차 전공의 A씨(33)도 지난 1일 당직근무 도중 사망하자 의료계는 상당한 충격을 받은 모습입니다.

50대 초반의 나이와 만성질환을 앓았던 윤 센터장과 달리 A씨는 30대 초반의 젊은 의사라는 점에서 사인을 두고 과로사 등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A씨는 병원 당직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으며, 외상 등 타살 흔적이 없었는데요.

젊은 의사의 돌연사에 의료계 반감은 더 커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8일 입장문을 통해 "길병원의 입장에 유감을 표명하며, 사실관계를 파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대전협은 길병원의 수련환경과 전공의가 1주일에 80시간 이하로 일하도록 명시한 전공의법을 지켰는지 조사할 계획입니다.

보통 과로는 업무와 스트레스로 피로가 누적돼 발생하는 증상입니다. 이 증상을 방치할 경우 신체기능이 떨어져 과로사할 수 있는데요. 과로사는 과로에 의해 직접적으로 병이 발생해 숨지거나 기존 질병이 급속히 악화되는 2가지 형태로 나뉩니다.

과로는 뇌출혈이나 심근경색증 등 다양한 후유증을 일으킬 수 있지만, 이를 계량화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의사들은 인턴과 레지던트로 활동하는 5년간 극한의 업무환경에 노출되는데요. 2016년 12월23일 시행된 전공의법 이전에는 1주일에 100시간 이상 일하는 젊은 의사들이 수두룩했습니다.

전공의법 시행 이후에도 과로에 노출된 젊은 의사들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대한수련병원협의회가 지난해 5월 전공의 1208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1.9%가 1주일에 80시간 넘게 일한다고 답했는데요. 1주일에 평균 1회 유급휴가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응답도 27.1%에 달했습니다.

의사들이 잇따른 죽음을 계기로 병원 내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11년간 공무원, 의료인 등을 제외하고 산업재해 보상을 받은 과로사만 한해 평균 370명에 달하는 실정입니다. 업무상 사유로 자살하는 노동자도 매년 6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물론 과로자살 승인율이 높아지는 추세지만, 업무상 사유로 인한 정신 이상 상태 인정을 받지 않으면 산재 인정은 어렵다는 게 중론입니다.

과로사나 과로자살 모두 입증 책임은 여전히 재해자의 몫인 게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의사들 잇따른 죽음…병원내 노동환경 개선 목소리 高高


무엇보다 응급실 과밀화 등에 따른 문제는 고스란히 환자의 생명 문제와도 직결됩니다.

전문가들은 응급의료체계의 근본적 개선 없이는 의사들의 과로사는 물론, 환자들의 골든타임도 지킬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응급의료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대표적인 사회안전망입니다. 민간에서는 적정 공급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장실패' 영역인 만큼, 정부의 정책적 개입 필요성이 높은 분야로 손꼽히고 있는데요.

중앙응급의료센터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전국 권역응급의료센터 57개소, 지역응급의료센터 131개소, 지역응급의료기관 247개소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는 중증응급환자 치료에 집중하고, 지역응급의료기관은 24시간 일차 응급진료 역할을 담당합니다.

하지만 지역응급의료기관은 물론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에도 경증환자가 몰리는 과밀현상으로 응급실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국내 응급의료체계 구축을 위해 헌신한 윤한덕(51)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설 연휴 근무 중 숨져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장 의사들은 응급실이 '시장통'과 흡사하다며 고충을 토로하고 있는데요.

전문가들은 경증 환자가 응급실 병상을 차지하는 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야간에 외래 진료가 가능한 동네 병·의원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저녁 시간 이후 발생한 경증 환자 대다수는 달리 갈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응급실을 찾기 때문입니다.

◆현장 의사들 "응급실은 전쟁터에요"…고충 토로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

다만 환자 스스로 응급진료 여부를 결정하기 어려운 만큼, 병원 내에서 신속하게 환자를 구분하고 치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현장에서 중증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치료가 가능한 적정 병원을 찾아 이송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데요. 환자가 병원에 도착해도 수술이 가능한 의료진이 없어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안전처 등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3∼2016년 상반기 119구급차 병원 재이송 사례는 총 4만5352건에 달했습니다.

병원의 거부 사유는 '전문의 부재'가 10만537건(23.2%)으로 가장 많았고, '진료과 없음'이 6069건(13.4%)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병상 부족'이 3922건(8.6%)이었고, 의료장비 고장으로 인해 재이송한 횟수도 774건(1.6%)이나 됐는데요.

전문가들은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 먼저 의료기관 간 환자를 옮기는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중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의 기반 자체가 미흡하다는 점도 전원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신속한 전원도 중요하지만,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응급환자 발생했을 때 치료 가능한 병원으로 바로 이송이 이뤄져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응급의료체계가 지역에 기반을 두고 구축돼야 불필요한 전원을 막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마다 중증응급환자를 담당할 수 있는 응급의료시설이 확보돼야 한다는 게 공통된 의견입니다.

지역 중심의 응급의료체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기 전 단계인 이송체계 역시 손봐야 하는데요.

일반적으로 119는 응급환자를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하는데, 환자 상태에 따라 멀더라도 적정한 의료기관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응급실·중환자실 '돈이 안 된다'?…시민들 "정부 세금 이런데 써야"

응급실 종사자 상당수는 폭행은 물론 살해 위협까지 당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응급실 종사자의 폭력 경험에 따른 폭력 반응 소진 및 직무 만족' 논문에 따르면, 응급실 종사자 상당수(84.4%)가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폭행 유형으로는 의료진에게 침을 뱉거나 밀고 멱살을 잡는 등 물리적인 폭행이 주로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실제 지난달 11일, 경기 성남 분당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한 고위공무원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간호사의 눈 부위를 손으로 찔러 다치게 해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7월 경북 구미의 한 병원에선 한 대학생이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던 도중 갑자기 의료용 철제 트레이로 전공의의 뒷머리를 내리쳐 동맥파열과 뇌진탕 등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히기도 했는데요.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2018년 상반기 응급의료 방해 현황'에 따르면 의료기관 기물 파손과 의료인 폭행·협박으로 신고·고소된 사고는 지난해 상반기에만 전국 47개 병원에서 582건이었습니다.

전국에서 하루에 3건 이상 의료 방해 행위가 발생한 셈입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은 '돈이 안 된다'는 이유 등으로 인력 및 시설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밤샘 당직같이 고된 업무라 의료 인력들도 근무를 기피한다"고 말했습니다.

응급실 및 중환자실 운영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는 시각도 있는데요. 현재는 일반 병실에 비해 투입되는 인력 및 장비 대비 건강보험 수가가 낮아 병원에 적자를 감수하고 병상을 늘리라고 요구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응급의료 적정 수가를 마련하고, 전문인력 양성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응급의료체계 완성에 힘쓰는 것이 고인이 된 두 의사의 고귀한 삶을 기리는 길이 아닐까요?

◆윤 센터장이 우리 응급의료체계에 던진 물음

윤 센터장은 떠났지만 그가 우리에게 던진 물음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앞서 윤 센터장은 2016년 민간기구인 '바른사회시민사회'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해 "현 응급의료체계 문제는 구축의 문제가 아닌 운영의 문제"라고 진단했는데요. 당시 윤 센터장은 '안심하고 의식을 잃을 수 있는 권리'를 강조하며 안정적인 응급의료기금 확보를 통한 운용 효율 강화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12월28일,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최한 토론회에서 윤 센터장은 토론자로 나서 "양적인 확대에도 응급의료 질과 체계화에 관한 지적은 지속된다"며 "기대하는 응급의료 질과 제공할 수 있는 질 사이 괴리는 크고 119와 응급실, 응급실과 최종치료 사이 분절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최근 전공의 특별법, 노동시간 단축 등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불가피한 변화와 더불어 전공의 수련기간 단축 등은 최소한 단기적인 의료 인력 감소를 초래한다"며 "향후 고령인구·독거가정 증가, 의료영역 세분화 및 의료분쟁 위험 증가로 응급의료 수요는 늘고 제공은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그는 최근까지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119구급대원과 응급구조사 업무범위 개선 목소리를 높여는데요. 현행 보건당국 시행규칙상 심폐소생술과 정맥로 확보, 인공호흡, 약물투여 등 14개에 묶여있는 업무범위를 응급이송 환자에게 필요한 내용으로 개편하자는 것입니다.

8일 오전 고(故)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사무실 앞에 커피가 놓여 있다.
이같은 고민을 일부 담은 정부의 제3차 '응급의료 기본계획(2018~2022년)'은 이제 윤 센터장의 손을 떠났습니다. 지난해 12월27일 발표한 기본계획은 중증응급질환 사망률을 2022년까지 질환별로 최대 25% 이상 줄이고, 서비스 신뢰도는 20% 이상 높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예방가능한 외상 사망률을 2015년 30.5%에서 2022년까지 23.0%로 낮추고, 중증응급환자 적정시간 내 최종치료기관 도착률은 52.4%에서 60.0%로 높이는 등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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