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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구속, 민주당 "적폐세력의 보복 판결"…사법개혁 가속화? [일상톡톡 플러스]

입력 : 2019-02-10 05:00:00 수정 : 2019-02-09 09: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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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법부를 초유의 위기로 내몰았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태는 대법원장이 제왕적 권한을 누리는 기존 체제를 고수하려던 과욕이 부른 사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가 물러난 이후로 사법부에도 점진적인 변화가 있었는데요. 국민의 사법 참여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했고, 일선 법관이 사법행정에 목소리를 낼 기회도 늘어난 게 사실입니다.

그만큼 대법원장과 사법행정기구인 법원행정처는 점점 더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했는데요. 이같은 일련의 변화는 사법부 내부에 적지않은 파열음을 일으켰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은 수직·관료화된 사법부의 구(舊) 체제에서 권한을 남용하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단적으로 보여줬다는 분석도 나왔는데요.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전국법관대표회의와 법원장추천제 등 수평적 구조의 사법부 체제가 자리를 잡는 계기가 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양승태 사법부,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재판거래?

양승태 사법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가운데 가장 충격을 준 것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소송을 놓고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벌인 '재판거래'라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입니다.

양승태 사법부는 한·일 관계를 우려한 박근혜 정부 요청에 맞춰 강제징용 소송을 지연시키거나 결과를 뒤집으려는 시도를 했고, 그 대가로 상고법원 설치·법관 해외파견 확대 등을 관철하려고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법부 최고위급 법관들이 조직의 이익을 위해 뛰는 동안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이같은 물밑 작업이 이뤄진 것을 전혀 모른 채 대법원 판결을 손꼽아 기다리다 하나둘씩 이승과 작별했습니다.

물밑에 있던 강제징용 재판거래 의혹이 본격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해 5월이었는데요. 양승태 사법부가 '판사 블랙리스트'를 관리했다는 의혹을 법원이 자체적으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상고법원 관련 BH 대응전략' 문건이 공개되면서부터입니다.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가 2015년 3월 작성한 이 문건의 주요 내용은 이병기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등을 접촉해 양 전 대법원장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설치를 설득하는 것이었습니다.

문건에는 이 전 비서실장의 최대 관심사가 '한일 우호 관계의 복원'이며, 그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사건에 대해 청구기각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기대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내용이 담겼는데요.

박근혜 청와대가 일본기업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고등법원 판결을 대법원이 파기해 줄 것을 기대했고, 양승태 사법부는 이를 인식한 데서 더 나아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거래수단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의혹이 일었습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2000년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부산지법에, 2005년에는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는데요. 1·2심은 패소했으나, 대법원은 2012년 5월 일본기업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며 사건을 서울·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대법원 판결을 환영하며 개인 손해배상 청구권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소멸했다고 본 정부 입장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파기 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2013년 7월 신일철주금이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신일철주금은 재상고했고, 사건은 다시 대법원이 넘겨받았습니다.

불과 1년 전 대법원이 한 차례 판단을 내린 만큼 결론은 '원고 승소'로 사실상 정해져 있고, 신속하게 판결이 확정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대법원으로 간 사건은 무려 5년간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5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기간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쉽게 이해할 수 없던 재판 지연 이유는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하나둘씩 밝혀졌습니다.

2013년 2월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강제징용 소송에 대한 입장은 이명박 정부와 확연히 달랐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주도한 점 등을 의식해 소송 결과가 번복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는데요.

양 전 대법원장은 이런 정부 뜻에 부응하는 대신 상고법원 등 현안 처리 과정에서 도움을 받으려고 한 것으로 검찰은 추정하고 있다.

사실상 재판을 '거래수단'으로 삼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이유입니다.

◆양 전 대법원장 직접 소송 개입한 정황도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소송에 개입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는 강제징용 소송 주심을 맡았던 김용덕 전 대법관에게 "배상 판결이 확정되면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취지를 전했는데요. 이에 김 전 대법관은 재판연구관에게 기존 승소 판결을 뒤집을 논리를 개발하라고 지시한 정황이 포착됐습니다.

양 전 대법관은 미쓰비시·신일철주금을 대리했던 한 메이저 법무법인 변호사와 대법원장 집무실 등에서 3차례 이상 독대하며 소송 절차를 논의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강제징용 소송 심리가 계속해서 미뤄지는 사이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2월 '최종적'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을 담은 한·일 위안부 협상을 타결했는데요.

양승태 대법원은 2016년 11월에야 강제징용 소송의 전원합의체 회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고, 같은해 말 박 전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처하며 법원행정처와 청와대 사이의 재판거래 논의는 사실상 중단됐습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은 문재인 정부 들어 대법원장이 바뀐 이후인 지난해 10월 나왔습니다.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지 13년 8개월 만이었습니다.

사상 초유의 사법부 수사는 전직 대법원장 구속이라는 비극적 기록을 역사에 남기고,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습니다.

법원은 지난달 24일 양 전 대법원장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상당 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고 밝혔는데요.

이를 두고 법원이 사법농단 의혹 사건에서 양 전 대법원장의 주도적 역할을 사실상 인정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두 전직 대법관과 달리 임종헌 전 차장과 공모관계를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각각 '행동대장'과 '총책임자'로 구속된 임 전 차장과 양 전 대법원장 가운데 누가 주범인지, 어느 쪽의 법적 책임이 더 큰지는 향후 법정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입니다.

◆사법부 국민 신뢰 되찾을 수 있을까?

이제 사법부는 국민 신뢰를 다시 찾아야 하는 엄중한 과제를 안게 됐습니다.

김명수 사법부도 이같은 점을 알고 뼈저린 자기반성과 함께 스스로 환골탈태하기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다만 사법부가 내놓은 자체 개혁안이 외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실망 섞인 목소리도 적지 않은 상황입니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오는 6월 활동종료 전까지 입법을 통해 사법개혁 틀을 제도화할 예정인 가운데, 여야의 극한 대치가 향후 논의 전망을 점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전문가들은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불러온 사법 농단 의혹의 배경에는 사법부 내 권력을 거머쥔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에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전국 법관 인사권은 물론, 예산집행권까지 사법행정권 전반을 독점하다 보니 수직적이고 보수적인 조직문화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이런 조직문화 속에서는 법관과 재판의 독립은 온전히 지켜지지 않고,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가 막강한 사법행정권을 악용해 일선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하는 병폐가 쌓여왔다는 진단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데요.

사법 농단 수사로 사법부는 참담한 분위기에 휩싸인 동시에 스스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자정의 목소리도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입니다.

◆김경수 지사 법정구속 변수?…정치쟁점화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도

사법행정 시스템을 전면 개혁하는 방안은 실천으로 옮겨졌는데요. 김명수 사법부는 지난해 12월엔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회의와 법원사무처를 신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반응은 싸늘했는데요. 여야 정치권과 시민사회 가릴 것 없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질타가 쏟아졌습니다.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을 견제하기에는 사법부 안이 너무 미흡하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국회 사개특위 활동 종료 시점이 6월로 다가온 가운데, 검·경의 국회 여론전은 과열 양상을 띠고 있는데요.

검찰과 경찰은 최근 국회 사개특위 위원들에게 상대방을 각각 독일 나치 정부의 '게슈타포'(비밀국가경찰), 중국 공안에 비유하며 서로를 비방하는 설명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두 기관의 비방 행태가 도를 넘어서자 김부겸 행안부 장관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공동명의로 성명을 내고 "상대 기관을 비난해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자제하라"는 내용의 경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수포로 돌아간 과거 개혁 시도처럼 이번 사법개혁도 무산되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은데요.

이런 가운데 김경수 경남지사 1심 유죄판결 결과를 놓고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사법부를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민주당은 '사법농단세력 및 적폐청산위원회'를 통해 법관탄핵 등 논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입니다.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은 지난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개혁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사법농단에 관여됐던 판사들이 아직도 법대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냐"며 "사법 개혁을 제대로 해달라는 주문이 있었다. 사법부가 사법개혁을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사법부를 압박해야겠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당에서는 김 지사 판결에 대한 대응책으로 이른바 '적폐 판사'를 탄핵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는데요. 실제 윤 사무총장은 사법농단 연루 판사에 대한 탄핵을 계속 추진할 것인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배제한 적이 없다"고 답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다만 김 지사 1심 판결이 정치쟁점으로 부각되는 것은 본질에서 벗어나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번 판결 자체를 사법농단으로 규정하고, 재판부를 구성한 법관 탄핵을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입니다.

한 전문가는 "개별 재판에서 법관 판단만 가지고 탄핵을 언급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며 "이는 자칫 잘못하면 사법농단에 대한 탄핵 요구의 본질을 훼손하고 왜곡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민주사회 최종 보루인 사법부와 법원이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지 세인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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