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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의마음치유] 세상의 모든 ‘한눈이’와 ‘세눈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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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2-07 23:20:33 수정 : 2019-03-22 16:3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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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악’은 보지 못하고 상대 비난 / 서로 타협하며 존중하는 사회돼야

그림 형제가 채록한 독일 민담 중에 ‘눈이 한 개, 세 개, 그리고 두 개인 자매’의 이야기가 있다. 엄마는 눈이 두 개인 딸을 다른 천한 백성과 똑같다며 구박을 하고, 특별하게 생겼다고 한 눈이와 세 눈이만 돌보고 사랑한다. 어느 날, 헐벗고 배고픈 두눈이에게 신비한 여성이 나타나 주문을 알려 준 덕에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됐지만, 비밀을 눈치 챈 자매와 엄마 때문에 곤경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두 눈으로 똑바로 보고 정직하게 행동하는 덕에 행복을 다시 찾고, 결국 어머니와 자매도 용서한다는 내용이다.

 

눈이 한 개나 세 개가 있는 자매는 비뚤어진, 혹은 모자라거나 넘치는 관점으로 세상을 대하는 이들이고, 가족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두눈이는 정상적인 관점임에도 세상으로부터 모욕을 당하는 이를 상징하는 장치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민담에는 그런 잘못된 상황을 바로잡는 지혜로운 여성의 주문과 또 두눈이의 가치를 알아주는 이가 나타나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하지만 현실은 꼭 그런 식의 인과응보가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일제강점기, 조선이 일제에 합병돼 소멸될 것이라 믿은 사람은 독립을 위해 재산과 생명을 바치는 이들을 한심하게 생각했고, 군사독재 기간 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라고 경멸했다. 한눈이와 세눈이, 그 어머니의 관점이다.

 

사람들은 민담속 가족처럼 대부분 자신의 모자라거나 넘치는 신념이 옳다고 믿으며 균형 잡힌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편한 쪽으로 상황을 해석한다. 어쩔 수 없이 오류가 드러나도 이를 부정하면서 정당한 관점을 박해하고, 잘못된 것은 모두 상대방에게 돌리는 ‘투사’라는 자기 방어 기제에 매달린다. 융 심리학에서는 이를 내 안의 ‘악’을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만 비난하는 ‘그림자 콤플렉스’로 설명하고,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를 ‘귀인이론’으로 요약해 준다. 어떤 일을 실행하고 있는 이와 이를 관찰하는 사람이 같은 일을 다르게 보는 상황, 자신의 관점에 맞는 사실만 인정하고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사실은 왜곡시키는 확증 편향의 심리, 상황적 진실은 보지 않고 모든 원인을 특정 개인의 잘못으로만 귀결시키는 습관, 자신에게 불편하거나 해로운 일이 일어나면 상대의 인격을 폄훼하고 공격하는 등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매우 비합리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을 실험이 증명해 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개인뿐 아니라 집단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동창회, 부녀회, 조합, 학교, 교회, 회사 등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꼭 극단주의자가 나타나 큰 소리를 내기 마련이고, 동조하는 추종자끼리 파열음이 생겨 마침내 공중분해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극단적 입장에 갇혀 자신을 되돌아 볼 능력이 없는 이들의 눈에는 모든 역경이 ‘적’의 횡포 때문이다. 타협하고 통합하려는 입장은 양비론, 회색분자, 기회주의적 타협으로 거칠게 매도하기 십상이라 중도나 중재자들은 입을 닫기도 한다.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상대방의 티끌만 뭐라 한다’는 ‘그림자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의 의견에 대해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것은 불의와 타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불완전성을 인정하지만 좀 더 평화롭게 서로 존중하는 사회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나미 서울대병원 교수·정신건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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