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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 이의 소중한 한 끼…무료급식소를 가다 [김기자와 만납시다]

입력 : 2019-02-02 11:30:00 수정 : 2019-02-02 20: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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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소 바깥에서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언제 오나 말하던 중인데 마침 도착하셨네.”

반갑게 기자를 맞이한 봉사자가 말했다. 양파 수십 개가 든 바구니를 옆에 둔 채 그는 빠르게 양파를 썰던 중이었다. 가스불을 살피고 재료를 손보던 다른 봉사자 2명도 인사를 건넸다.

1일 오전 9시30분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원각사 무료급식소를 찾았을 때, 봉사자들은 노인과 노숙자의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1994년 문을 연 급식소는 매일 180∼250명 정도가 온다. 정기 후원자가 없고 개인이 보내는 쌀이나 채소로 버텨 도움의 손길이 간절히 필요하다.

봉사자들은이날 쌀밥과 우거지 된장국, 콩나물 무침, 가지 볶음, 무채를 준비했다.

정담을 나누며 음식을 준비하던 두 봉사자에게 아는 사이냐고 물었더니 ‘오늘 처음 봤다’고 했다. 대화가 너무 자연스러운 것 같다고 하니 “봉사를 위해 모였다면 통하지 않겠어요?”라며 웃었다. 
나란히 놓인 식판(사진 위)과 잘게 썬 음식 재료.
◆명절 무렵엔 찾는 노인 더 많아

급식소는 고정 봉사자 3명과 비정기 봉사자 10여명으로 운영한다. 수월한 봉사를 위해 배식 때마다 최소 7명은 있어야 하지만, 이마저도 채우지 못하는 때가 더러 있다. 다행히 이날은 기자 외에 봉사자 7명이 참여했다.

한번 삶은 다시마를 된장국에 넣으려 여러 장을 겹쳐 작게 썰던 봉사자는 “어르신들은 음식을 쉽게 씹을 수 없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양파와 무, 다시마 크기가 약속이나 한 듯 성인 새끼손가락 반 마디도 되지 않았다.

급식소는 매일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운영한다. 마감 시간이 지나면 배식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배를 채우러 온 이들이 많았던 탓에 10여분 지나서야 배식이 끝났다.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은 266명이 급식소에 다녀갔다.

기자도 봉사자들을 도왔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식판을 대신 자리에 가져다 놓기를 수십번 반복했다. 신속히 앉도록 안내해야 밥 먹는 이가 불편하지 않아서 빈자리가 어디인지 기억해두는 게 중요했다.

“어르신,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기자가 말하니 한 노인이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다른 노인은 맛있게 드시라는 말에 고개를 꾸벅 숙였다.

명절 무렵에는 오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고 한 봉사자는 귀띔했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만나 외로움을 달래고픈 이유다.
점심(사진 위)과 배식 중인 주지 지견스님, 봉사자들.
◆매일 오던 분 안 오면 무슨 일 있는지 걱정

봉사자들은 “매일 오던 분이 갑자기 보이지 않으면 걱정된다”고 말한다.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하지만, 이름이나 연락처를 몰라 이유를 확인할 수 없다. 신원을 알아보려 하면 그들은 마음의 문을 굳게 잠가 버린다.

두 분이 나란히 앉게 식판을 놓아 달라는 말을 봉사자에게 들었다. 알고 보니 노부부였다. 자녀가 있어도 보살핌 받지 못하는 사정이 그들에게 있다고 봉사자는 말했다.

할머니는 남편 밥에 자기 몫 콩나물을 조금 덜었다. 무슨 사정이 있어서 노부부는 매일 급식소에 오는 걸까.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어떤 마음으로 밥을 먹을까.
밥 먹는 사람들(사진 위)과 1월 배식 건수.
한 노인은 밥과 국을 자리에서 세 번이나 더 먹었다. 그에게는 하루 치다.

누군가는 한 급식소에서 그날 밥을 해결하며, 일부는 무료급식소를 전전하며 세 끼를 챙긴다고 한다. 그야말로 살기 위해 먹는 셈이다.

“자, 식판 닦읍시다.”

솥에서 삶은 뒤 꺼낸 식판을 깨끗한 행주로 닦을 때까지 봉사는 끝나지 않았다. 국그릇 쌓기로 작업을 마무리하는 동안 앞으로도 많은 이가 배불리 점심 한 끼 해결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글·사진=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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