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배연국칼럼] 늑대가 되지 말라

관련이슈 배연국 칼럼

입력 : 2019-01-31 21:04:12 수정 : 2019-01-31 20:10:1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권력은 善惡 두 개의 얼굴 가져/통제받지 않으면 늑대로 돌변/아무리 거창한 명분일지라도/절제해야 독주와 전횡 사라질 것 권력은 야누스다. 개와 늑대, 두 개의 얼굴을 가졌다. 때론 개처럼 국민에게 헌신하고, 때로는 국민을 해치는 늑대가 되기도 한다. 어느 얼굴로 변하느냐는 권력 내부보다는 외부의 환경에 달렸다.

태생부터 100% 나쁜 권력은 없다. 개와 늑대가 조상이 같은 것처럼 선한 권력이든, 악한 권력이든 뿌리는 대체로 엇비슷하다. 사악한 권력도 처음에는 선과 정의의 깃발을 내건다. 권력이 늑대로 돌변하는 순간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통제장치가 무너진 때이다. 길들여지면 온순한 개가 되고, 야생에 방치되면 사나운 늑대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치 권력 역시 독일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로 탄생했다. 그러나 통제의 울타리를 벗어나면서 야성의 늑대로 변하고 말았다.

배연국 논설위원
늑대의 발현을 막기 위해선 미리 고삐를 단단히 죄고 울타리를 쳐야 한다. 우선 권한을 한곳에 집중시키지 않고 삼권으로 나눈다. 중앙과 지방으로 분산하고, 언론에게는 권력의 동태를 살피는 감시견 역할을 부여한다. 이런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만든 것이 민주 시스템이다.

하지만 권력에 대한 완전한 견제는 평행봉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권력의 균형추가 한쪽으로 기우는 일이 허다한 까닭이다. 요즘 우리 정치현실이 딱 그런 경우다. 사법부와 국회가 집권세력으로 쏠리는 바람에 삼권분립은 거의 기능을 상실했다. 지방정부와 언론도 제 기능을 기대하기 힘든 처지다.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 권력은 늑대보다 위험하다. 반드시 독주와 전횡을 부르기 때문이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일탈과 손혜원 의원의 스캔들은 비근한 예에 불과하다. 온갖 비리로 국회 청문회 문턱조차 넘지 못한 인물을 일방적으로 임명한 것만 벌써 8번째다. 이제는 24조원짜리 공사를 나라 곳곳에 벌이면서 가장 기초적인 타당성도 따지지 않겠다고 한다.

적폐청산의 칼자루를 잡은 권부의 입과 행동도 갈수록 거칠어진다. “미꾸라지 한 마리”, “동남아 가라”는 말을 예사로 한다. 자식의 계좌를 멋대로 뒤지고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다. 지난주 수감된 전직 대법원장에게는 40개가 넘는 죄목이 붙었다. 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몇 개의 죄목쯤은 찾아낼 수 있다는 섬뜩함이 엿보인다. 순치된 개의 얼굴이 아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괴테의 경고와는 달리 집권세력은 점점 늑대를 닮아가고 있다.

권력에 취한 세력은 피 맛에 홀린 늑대의 운명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늑대 사냥에 나선 에스키모인들은 날카로운 칼을 눈 위에 꽂아 둔다. 칼날에는 동물의 피가 묻어 있다. 잠시 후 피 냄새를 맡은 늑대들이 칼날을 핥기 시작한다. 처음엔 혀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피를 핥지만 차가운 금속을 계속 핥다 보니 혀가 마비된다. 피 맛을 들인 늑대는 자기 혀가 베이는 줄도 모른 채 열심히 피를 핥다 결국 과다 출혈로 죽고 만다.

이런 재앙을 맞지 않으려면 권력 스스로 자중하는 수밖에 없다. 모름지기 ‘법연사계’를 경책으로 삼을 일이다. 중국 북송의 법연 스님이 대사찰 주지를 맡는 제자에게 내린 첫 번째 당부는 “세력을 다 쓰지 마라”였다.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지 말고 얇은 얼음을 밟듯이 조심하라는 주문이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에게 절실한 것이 법연 스님이 강조한 절제의 덕목이다. 민주적 견제장치가 고장 난 작금의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국정 운영은 5년 동안 달리는 마라톤 경주와 비슷하다. 초반에 너무 힘을 빼면 완주가 어렵다. 집권 3년차가 되도록 적폐몰이에 힘을 탕진하는 것은 분명히 과잉이다. 어떤 선수도 이런 식으로 힘을 안배하지 않는다. 부디, 국민통합을 위해 힘을 남겨두라. 독주가 계속되면 국가와 국민은 더욱 찢어질 것이다.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 어록이다. 대체 언제까지 통합의 청사진을 머릿속에만 둘 건가. 이제 끄집어낼 때도 되지 않았나.

배연국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