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양육비, 10명 중 7명 '나몰라라'… 제도 허점에 피멍드는 한부모 [심층기획]

입력 : 2019-01-20 20:41:00 수정 : 2019-01-21 18:14:4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양육비 이행 돕고자 관리원 설치 불구 / 강제조치 수단 부족… 매년 이행률 감소 / 잠적·재산 은닉하면 받을 방법 없어 / “강제성 없어 무법상태… 법 개정 시급”/ 양해모, 미이행 문제 해결 직접 나서 / 다음달 ‘아동 기본권 침해’ 헌소 제기 / 文대통령 공약 ‘대지급제’ 도입 검토 / 여가부, 올해안에 대책 발표
#1. 13살 하나(가명)는 피아니스트의 꿈을 포기했다. 부모님의 이혼 후 아빠가 매달 보내는 양육비 30만원으로 레슨을 이어왔지만 2015년부터 갑자기 연락을 끊고 지원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양육비 이행 명령 신청을 통해 총 1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에도 아빠는 끝내 돈을 주지 않았다. 2년 동안 긴 소송이 이어졌지만 법원에서는 ‘금액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과태료 200만원 판결을 내렸다. 또다시 양육비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소송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나의 어머니는 “법원이 판결한 200만원의 과태료는 우리 아이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중학생이 되는 아이의 공부를 위해 학원이라도 보내고 싶지만 월 생활비 100만원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토로했다.

#2. 윤미현(가명)씨는 2013년 전 남편으로 부터 월 양육비 55만원을 지급받으라는 판결문을 받아냈다. 수차례 남편에게 양육비를 달라고 요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2016년 양육비 이행관리원을 통해 통장 및 급여 압류 조치를 취했으나 압류 한 달 전 남편이 갑자기 퇴사하면서 받을 길이 사라졌다. 이행원 담당자는 “비양육자를 재촉하고 자극해서 좋을 것이 없다”며 “일단 기다려 보자”는 말만 반복했다. 결국 남편은 그해 8월 미국으로 출국한 뒤 지금까지 연락두절 상태다.

이혼 이후 배우자로부터 양육비를 제때 받지 못해 고통을 겪는 가정을 위해 정부가 직접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양육비 채무자가 양육비를 주지 않고 버티면 기나긴 소송전이 불가피한 데다 소송에서 이겨도 채무자가 잠적하거나 재산을 은닉할 경우 마땅한 대응책이 없어서다.

◆“법과 현실의 괴리”… ‘한부모’ 두 번 울리는 양육비 이행 절차

우리나라 양육비 이행 관련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양육비 미지급을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 간 채무 관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양육비를 지급할 의무가 있는 부모가 자발적으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을 경우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부모가 직접 나서 여러 차례 민사 소송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정부가 한부모 가정의 양육비 이행을 돕고자 2015년 3월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설치했으나, 아직 효과는 미미하다.
20일 양육비이행관리원에 따르면, 양육비 이행 확정 건수 대비 실제 이행 건수를 나타내는 양육비 이행률은 2016년 36.9%, 2017년 36.3%, 지난해 10월 기준 33.3%로 나타났다. 양육비를 지급하더라도 3회 이상 지속되는 경우는 절반이 안 되는 46.9%에 그치고 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보건복지여성팀 입법조사관은 “소송을 위한 법률지원을 제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데다가 판결에 따른 이행을 하지 않을 경우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취할 수 있는 강제조치 수단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힘들게 소송을 하더라도 양육비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현행법에는 양육비 지급 의무가 있는 부모가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법원에서 급여나 재산에서 양육비를 지급하도록 명령을 내릴 규정은 있다. 그러나 회사를 그만두거나 재산을 빼돌릴 경우 끝까지 받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행을 강제할 최후의 수단은 구치소 감치 명령이다. 하지만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실거주지가 다르거나, 유효기간인 90일 내에 채무자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감치 명령 자체가 무효가 되기 때문에 실효성이 낮다. 양육비이행관리원 출범 이후 지난해 10월 말까지 감치명령을 신청한 1500건 중 560건이 인용됐으나, 그중 실제 감치까지 이어진 것은 69건(집행률 12.3%)에 불과하다.
◆“양육비 미지급은 아동학대”… 직접 나선 부모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양육비 미이행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인 부모들도 있다.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해 고통받고 있는 부모가 결성한 단체인 ‘양육비해결모임’(양해모)은 다음달 14일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아동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아동학대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헌법소원을 접수할 계획이다. 양해모는 지난해 11월부터 약 두 달에 걸쳐 청구인단 250명을 모집했다. 남지원 양해모 대변인은 “강제성이 없다 보니 사실상 무법상태로 볼 수 있을 만큼 아이들의 기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며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법 개정이 시급한 상황이라, 여러 단계로 나눠 지속적으로 헌법소원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양해모는 새해 첫날인 지난 1일에도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들의 사진 전시회’와 기자회견을 열고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출국금지와 운전면허 정지, 신상공개 등을 정부가 적극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또 양육비 지급이 미뤄지면, 국가가 우선적으로 양육비를 지급하고 추후 구상권을 청구하는 ‘양육비 대지급제’ 도입도 촉구했다. 이 과정에서 강민서 양해모 부대표는 머리를 삭발하기도 했다.
양육비 미지급 부모 사진 전시. 연합뉴스
앞서 지난해 7월에는 ‘배드 파더스’라는 온라인 사이트도 생겼다. 배드 파더스는 고의로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들을 고발하는 공간으로 양육비를 받지 못한 피해자들의 제보를 통해 양육비 미지급자의 사진과 함께 이름과 생년월일, 직업, 사는 곳 등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여기에는 유명야구 선수 출신인 스포츠 해설위원도 포함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배드 파더스 관계자에 따르면 사이트를 통해 총 200여명의 ‘나쁜 부모’ 명단이 공개됐고 이 중 30여명이 양육비 지급을 완료했다.
◆대통령 공약인 양육비 대지급제 실현될까… “이르면 2월 양육비 이행 대책안 발표”

양육비 관련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정부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달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담은 ‘양육비 이행지원 강화방안 연구’ 보고서를 만들었다. 

보고서는 아동의 최저 생계비를 보장하기 위해 ‘양육비 대지급제 도입’을 제안했다. 양육비 대지급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하다. 다만 제도를 시행할 경우 약 2537억원의 수당과 함께 행정인력의 인건비 및 시스템 구축 비용 등 상당한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도입 시기에 있어 전략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밖에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자격 조건 완화 △당사자의 재산을 손쉽게 파악하기 위한 조치 강화 △감치영장 집행률 제고 △출국금지조치, 운전면저 정지 및 취소처분 등 각종 법적, 행정적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고 분석했다.

박복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뿐 아니라 국가에도 책임이 있다”며 “법령 개선뿐 아니라 양육비 미지급을 단순히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 아동학대에 해당하는 범죄로 인식할 수 있도록 대국민 인식전환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가부는 10여 차례 진행된 양육비이행심의위원회의 관련 연구보고서와 오는 28일 열리는 토론회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조만간 ‘양육비 이행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정심 여가부 가족정책관은 “여러 가지 대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중”이라며 “출입국 제한, 감치제도 개선과 같이 법령개정이 필요한 사안도 있다 보니 구체적인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올해안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