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검찰은 박 전 대법관과 나란히 영장이 기각됐던 고영한 전 대법관의 영장은 재청구하지 않았다. 검찰은 ‘고 전 대법관이 일부 혐의를 인정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동안 박·고 전 대법관의 혐의를 “특정인의 개인적 일탈이 아닌 업무상 상하관계에 의한 지시 감독에 따른 범죄 행위”라고 강하게 주장하던 모습과 온도 차가 있다.
양승태(왼쪽)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 |
검찰은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이 구속된 만큼 상급자인 고 전 대법관의 책임이 더 크다는 판단을 바탕으로 수사를 이어왔다. 고 전 대법관 역시 박 전 대법관에 이어 행정처장을 지낸 인물이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두 전직 대법관의 영장을 동시에 청구했지만 기각되자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철저한 상하 명령체계에 따른 범죄로서, 큰 권한을 행사한 상급자에게 더 큰 책임을 묻는 것이 법이고 상식”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랬던 검찰이 7개월간 수사하며 구축한 논리를 불과 한 달여 만에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고영한 前대법관. 세계일보 자료사진 |
검찰이 고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 재청구 카드를 접었지만, 법원으로서는 여전히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의 운명을 결정짓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 특히 전직 사법부 수장이 구속 기로에 서는 건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법원이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영장을 발부하면 ‘사법 농단’ 의혹이 일정 부분 소명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반면 영장을 기각할 경우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서울중앙지법은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을 맡을 영장전담판사 및 영장심사 일정을 오는 21일 오전 중 발표할 방침이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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