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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미니즘에 분노했다"…등돌린 여성들 왜? [이슈 속으로]

입력 : 2019-01-18 19:17:12 수정 : 2019-01-18 19: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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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성평등인가/ 성폭행 피해 페미니즘 동아리에 공유/ 동의 없이 언론 제보… 2차 피해 초래
20대女 성평등 인식 물으니…/ 79% “우리사회 성차별 문제에 관심”/“나는 페미니스트” 응답은 43% 불과
페미니스트 아니면 적/ 탈코르셋 운동 변질… 과격 행동 ‘눈살’/ 여성 사이서도 ‘상급·하급 페미’ 구분
“그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급급했다. 나는 페미니즘에 분노했다.”

최근 ‘반(反)페미’를 선언한 여대생 A씨는 페미니즘 동아리로부터 받은 실망감을 이같이 털어놨다. 2015년 8월 ‘유사강간’을 당했다는 그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결심에 자신의 사연을 대학 내 익명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커뮤니티인 대나무 숲에 공유했다. 이후 한 페미니즘 관련 동아리에서 “함께 연대하자”,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될 수 있다”며 A씨에게 연락이 왔고, 그는 고마운 마음에 피해 내용을 공유했다. 그러나 한 달쯤 지나 페미니즘 동아리에 대한 A씨의 믿음이 무너졌다. 해당 동아리가 동의 없이 자신의 피해사실을 언론에 제보하고 페미니즘 활동에 사용하는 등 2차 피해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A씨가 불쾌감을 피력하자 동아리 측은 되레 A씨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그는 SNS상에서 여성인권문제를 다뤄온 다른 페미니즘 동아리에 이 같은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그 동아리 역시 바쁘다며 사양했다. 결국 A씨는 “페미니즘에 너무나 큰 실망을 했다”며 피해사실을 지난해 7월 한 시민단체에 제보했다.

지난해 7월 서울 혜화역에서 열린 편파판결 불법촬영 규탄시위.
◆페미니즘에 우는 여성들… 일부 누리꾼은 피해사례 수집 나서

18일 여성계에 따르면 페미니즘에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이 나오고 있다. 여성의 인권신장과 성 평등을 위한 페미니즘이 변질돼 같은 여성이 페미니즘의 피해자가 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 대학의 여학생이 많은 ‘여초학과’에 다닌다는 B씨의 경우 ‘이수역 폭행사건’이 이슈화하던 지난해 11월 대학 선배에게 ‘페미니즘’을 강요받아 괴로웠다고 토로했다. 그는 “당시 이수역 폭행사건 청와대 청원이 30만명 돌파를 앞두고 있던 상황에서 한 선배로부터 지속적으로 페미니즘 활동에 참여하라는 압박을 받았다”며 “저와 동기들은 청원내용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선배 성격이 워낙 불같아서 수차례 페미니즘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피해 사례가 잇따르자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의 저자 오세라비 작가와 일부 누리꾼은 이달 초 사연들을 모아 자체적으로 사례집까지 내겠다고 나섰다. 오 작가는 “메갈, 워마드 이후 여성인권을 위한 페미니즘이 여성에게 또 다른 피해를 끼치는 결과를 낳고 있다”며 “피해 사례를 제보받을 때마다 심각성을 느낀다”고 했다.

◆“성차별은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페미니스트엔 반대한다”

급기야 일부 극단적이고 과격한 페미니즘에 실망을 느껴 여성들이 등을 돌리는 이른바 ‘안티 페미니즘’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영상플랫폼 유튜브에는 최근 ‘안티 페미’, ‘반페미’를 주장하는 여성들의 영상이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한 유튜버는 지난 2일 올린 영상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혐오적인 범죄에는 분명 고쳐나가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이 여권신장에 도움을 주지 않고 하락시킨다”며 ‘안티 페미니스트’가 된 배경을 설명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 15일 발표한 ‘한국사회의 성평등 현안 인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20대 여성 79.4%가 ‘우리사회 성차별 문제에 대해 관심 있다’고 응답한 반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는 20대 여성은 42.7%에 그쳤다. 성차별 문제와 페미니즘이 무관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격차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20대 여성의 비중도 지난해 7월 48.9%에서 11월 42.7%로 줄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마경희 정책연구실장은 “워마드 논란 등 페미니즘이란 단어에 부여된 일종의 사회적 낙인의 영향으로 성차별과 페미니즘 사이의 인식 차이가 발생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분석했다.

◆‘탈코르셋 운동’의 변질도 페미니즘 거부감 부추겨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배경에는 지난해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유행한 ‘탈코르셋 운동’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탈코르셋 운동은 본래 여성이 받아 온 문화적·육체적 억압에서 벗어나자는 취지로 일어났지만, 일부 ‘극단적 페미니스트’가 탈코르셋을 화장하지 않거나 옷을 꾸며 입지 않는다는 뜻으로 규정해 논란이 됐다. 이들 페미니스트는 자신의 주장에 반하는 여성이나 한국 남성과 결혼한 여성들을 ‘흉자(남성 흉내를 내는 여성)’라고 비하하는 등 페미니즘 사이에서도 같은 여성을 배제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김선희 이화여대 교수(철학)는 “2018년 후반 (페미니즘 사이에서) 탈코르셋 운동이 일어나면서 여성들끼리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며 “(탈코르셋 운동은) 복장, 머리 등 여성이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해방모토인데 역설적으로 (일부 페미니스트는) 짧은 치마를 입지 않거나 머리는 짧은 그런 일반적인 규범들을 제시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그 과정에서 많은 여성이 그들을 비판하며 (페미니즘에서) 이탈했다”며 “같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상급 페미’, ‘하급 페미’라는 계급까지 생겼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이런 논쟁이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백래시(backlash·반발) 현상’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역사적으로 페미니즘 운동은 뿌리 깊은 성차별을 뒤집어야 했기 때문에 사회에 적합하다고 인정받은 적이 없었다”며 “반발과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는 상냥한 언어로는 사회가 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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