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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 갈등’ 여론전 벌이는 日…진상규명 의지 있나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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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1-18 10:07:58 수정 : 2019-01-18 10:5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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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국 군함이 자국 초계기에 레이더를 조사(照射:비춤)했다’고 주장하면서 불거진 한일 레이더 갈등이 장기화되고 있다. 양국은 지난 14일 싱가포르에서 실무협의를 개최했으나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일본 방위성이 16일 주일 국방무관을 불러들여 우리측의 15일 브리핑에 항의하자 우리 국방부도 17일 주한 국방무관을 호출해 항의하는 등 갈등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양국이 합의하면 사실규명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일본은 사실규명보다는 여론전에 치중하며 침소봉대(針小棒大:작은 것을 크게 부풀린다는 뜻)에 열중이다. ‘한국 때리기’를 통해 정치적 효과를 얻으려는 의도로 해석되는 이유다.

해군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은 동해상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해군 제공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제시…장기화 가능성도

지난 1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레이더 관련 한일 실무협의에서 일본은 자국 초계기가 수집한 레이더 주파수 특성에 대한 일부 제공을 제안하며, 광개토대왕함의 추적레이더(STIR) 주파수 전체 공개 요구를 되풀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우리측은 “일본의 요구는 무례한 것”이라고 비판하며, 일본 초계기가 접촉한 레이더 주파수 특성(위치, 시간, 방위 등)을 모두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일본은 이에 대해 비공개 방침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레이더 전파와 접촉하면 경보가 울리는 레이더경보기(RWR)의 경보음이 울렸는지 여부를 물었지만 일본은 군사보안을 이유로 답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초계기가 탐지했다는 레이더 정보를 양국 전문가들이 상호 검증할 수 있도록 관련 절차와 방법을 논의할 것을 제안했지만 일본은 답변을 회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측은 일본 초계기의 저공 위협 비행 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일본도 △함정을 향한 비행 △공격모의 비행 △함정 선수를 횡단하는 비행을 금지하는 것이 관례다. 지난달 20일 일본 초계기는 고도 150m로 우리 함정에 500m까지 접근, 광개토대왕함을 향해 약 10분간 이같은 비행을 했다. 일본은 한국 함정이 위협을 느꼈다는 우리측의 입장에 일부 공감했으나 자국 법률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규정을 들어 저공위협비행은 아니었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는 평가다. 광개토대왕함에는 다수의 전자장비가 탑재되어 있다. 대부분 군사기밀로 분류되어 있어 세부 사항은 공개되지 않는다. 특히 추적레이더 주파수는 매우 높은 수준의 보안을 요구하는 핵심 기밀이라 세계 어떤 나라도 주파수 전체를 공개하지 않으며, 기본적인 성능조차 밝히기를 꺼린다. 일본의 요구를 두고 “협상에 임할 의지가 없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광개토대왕함은 탐색레이더(MW-08)와 추적레이더를 사용한다. 적 항공기나 미사일이 접근하면 탐색레이더가 먼저 포착한 뒤 추적레이더를 해당 방향으로 조사해 표적의 위치와 속도, 고도 등의 정보를 얻는다. 이후 시스패로 함대공미사일이나 30㎜ 골키퍼 기관포로 요격한다. 

일본 방위성은 지난달 20일 우리 해군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이 동해상에서 일본 해상초계기의 레이더 겨냥 논란과 관련해 초계기 영상을 같은달 28일 공개했다. 일본 방위성 유튜브 캡쳐
추적레이더 주파수 전체가 외부에 공개되면 상대방이 전파방해를 실시, 추적레이더를 무력화할 수 있다. 표적정보가 없으면 방어용 무기를 사용할 수 없어 적 항공기나 미사일 공격에 속수무책이다. 일본이 공개하는 일부 정보와 맞바꾸기에는 위험부담이 크다. 이같은 상황을 막으려면 광개토대왕함의 추적레이더를 다른 기종으로 교체해야 한다. 돈도 기밀도 잃어버리는 셈이다. 군 관계자는 “줄 수 없는 정보를 요구했는데 어떻게 (일본의 제의에) 응하겠나”라고 말했다.

군은 광개토대왕함이 추적레이더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기록과 자료 등 과학적 증거를 확보하고도 공개하지 않는 이유도 광개토대왕함의 성능이 일본에 노출되는 상황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우리측은 P-1 초계기가 접촉한 레이더의 주파수 특성과 접촉 위치, 시간, 방위 등의 정보를 모두 확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본이 공개를 꺼려하는 전자정보 수집능력이 노출될 수 있는 부분이다. 해상자위대 전자정보 데이터베이스에 한국 해군 레이더 주파수가 적대 국가로 분류되어 있어 레이더 경보가 울렸다는 일각의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양국 관계는 파국이 불가피하다. 

일본 P-1 초계기는 미국제 P-3C를 대체하는 최신 항공기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여론전에 ‘올인’ 日…동해 장악 노리나

일본 정부는 레이더 문제를 부각시키며 여론전에 적극 나서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15일 위성방송 BS닛테레에 “그런 일(한국 해군 구축함의 자위대 초계기에 대한 화기관제 레이더 조사)이 있었던 것은 사실임이 틀림없다”며 “한국에 계속 확실하게 주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오후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우리 군함 레이더 정보 전체를 요구한 것은 무례”라는 우리 국방부의 발표에 대해 “상호주의 관점에서 양측이 데이터를 제시하는 것이 불가결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자국 초계기가 수신한 정보를 모두 제공하라는 우리측의 요구를 거절한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방위상도 같은날 한국이 일본에 사과를 요구한 것에 대해 “사죄할 성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아베 정권이 한국을 위협으로 부각시켜 정치적 결집 효과를 노리면서 동해에서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독도 동북방 100마일(161㎞) 해역으로 일본이 주장하는 배타적경제수역(EEZ)과 우리가 주장하는 EEZ가 겹치는 중간수역이다. EEZ는 연안에서 200해리(370㎞)까지 해당되나 동해에서는 한일 양국의 EEZ가 겹쳐 잠정적으로 중간수역을 두고 있다. 

일본 아베 총리. AP연합뉴스
EEZ는 자원개발 등 경제적 권리만 주장할 수 있을 뿐, 영해는 아니므로 자유로운 항해와 비행이 가능하다. 우리 함정도 일본 초계기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곳이다. 다만 해당 해역에서 얼마나 자주 활동하는가에 따라 주도권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동해처럼 좁은 바다에서는 자국의 활동영역을 넓히고 경쟁국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심해진다.

러시아와 미국, 우크라이나가 갈등을 빚고 있는 흑해의 경우 2014년 4월 미 해군 구축함 도널드 쿡에 러시아 수호이(SU)-24 전투기 1대가 12차례에 걸쳐 90분간 근접비행했다. 도널드 쿡은 전투기가 고도 150m로 비행하며 900m 거리까지 근접하자 수차례 경고 메시지를 보냈으나, 러시아 전투기는 무시했다. 2017년 2월에는 SU-24 전폭기와 일류신(IL)-38 해상초계기가 세 차례에 걸쳐 미 구축함 포터함에 접근했다. 지난해 11월에는 흑해 국제공역을 비행하던 미 해군 EP-3 정찰기에 러시아 SU-27 전투기가 빠른 속도로 정면에서 다가와 스쳐 지나가는 일이 25분간 발생했다.

동해도 마찬가지다. 독도의 자국의 고유한 영토라고 주장하는 일본으로서는 한국 해군이 독도 동북방까지 진출하는 것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동해에서 자국의 활동영역을 최대한 넓히면 러시아와 북한 등의 위협에 대응할 완충구역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 해군의 활동을 견제할 동기는 충분한 셈이다. 일본조차 관례상 금지하는 △함선을 향한 비행 △공격 모의 비행 △함정 선수를 횡단하는 비행을 실시한 것이 흑해에 진출한 미 해군을 위협하며 견제를 시도한 러시아 항공기와 유사한 모습인 것도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상대방의 과실로 자신이 상처를 입었다면 그 상처를 상대방에게 먼저 보여주거나 진단서를 제시하며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일본은 초계기가 수신한 레이더 주파수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상호 검증할 수 있는 절차와 방법을 논의하자는 우리측 제의에도 답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실무협의에 나서면서 레이더 전문가를 참여시키지 않았다. 사실 관계를 규명하려는 자세로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다. 여론전을 통해 한국이 가해자라는 점을 기정사실화하면서 우리 해군의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태도는 우방국을 대하는 적절한 자세가 아니다. 정부의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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