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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판도 가물가물… 이젠 운전대 놓아야" [이슈&현장]

입력 : 2019-01-15 06:00:00 수정 : 2019-01-16 17: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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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운전자 운전능력 자가진단 / “나이 들었다고 위험하다 판단 말길” / “노인배려 차원 쉽게 해야” 하소연도
“너무 빨라요. 노인네들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숫자 빨리 지나가게 한 거 아닙니까.”

지난 12일 서울 강서구 강서운전면허시험장을 찾은 정인태(81)씨는 모니터 앞에서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모니터 속에서는 트럭이 화면 좌우를 빠르게 오가고 있었다. 트럭은 3∼5초 만에 화면에서 사라졌다. 정씨는 짧은 시간 안에 트럭에 적힌 4자리 숫자를 확인한 뒤 간단한 수학문제를 풀고 나서 화면에서 제시되는 보기 중 정답을 골라야만 했다. 30분에 걸쳐 검사를 마친 정씨는 “노인 배려 차원에서 좀 쉽게 해주면 안 됩니까”라며 “괜히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이날 정씨를 끙끙 앓게 한 검사는 고령운전자 교통안전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인 운전능력 자가진단이었다. 만 75세 이상 고령운전자가 운전면허 갱신·적성검사를 받기 전 반드시 받아야 하는 진단으로 올해부터 처음 의무화됐다. 교통표지판 구분·방향표지판 기억·공간기억 검사 등 운전과 인지 능력을 확인하는 것이 검사 목적이다. 

 
지난 11일 서울 강서구 강서운전면허시험장에서 열린 ‘고령운전자 교통안전교육 프로그램’에 참석한 한 수강생이 운전능력 자가진단 검사를 수행하고 있다.
이창훈 기자
교육 의무화와 더불어 만 75세 이상 고령운전자의 갱신 기간이 5년에서 3년으로 줄어들면서 총 18만6478명이 검사 대상에 포함됐다. 치매가 있거나 인지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정될 경우 수시 적성검사 대상으로 넘어가 운전면허 자격을 잃을 수도 있다.

“인제 그만 운전대를 놓아야 하는 때가 온 건가 싶습니다.” 박두식(77)씨는 “당뇨가 심해서 2년 넘게 운전을 안 했는데 이번에 자가진단을 해보니 표지판도 가물가물하고 변하는 도로 상황을 잘 인식하지 못했다”며 “덕분에 내 신체·정신 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됐다”고 교육 참여 소감을 밝혔다. 운전진단 결과는 1∼5등급으로 분류됐다. 교육에 참여한 10명의 운전자는 기초인지 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1명을 제외하고 모두 3∼5등급을 받았다. 3등급을 받은 나정자(77·여)씨는 “젊은 사람이 음주운전을 하면 우리보다 훨씬 위험한데 나이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위험하다고 판단하지는 말았으면 한다”며 “오히려 풍부한 운전경험을 바탕으로 안전운전하는 고령운전자가 덜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명철 도로교통공단 안전교육부 교수는 “20∼30대 운전자도 1등급을 받기가 어렵다. 검사 목적은 고령운전자 스스로가 자신의 신체·정신능력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안전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갖도록 하는 데 있다”며 “올해 운전면허증을 갱신해야 하는 만 75세 이상 고령운전자들은 가까운 운전면허시험장을 찾으면 해당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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