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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음식은 한식의 꽃… 민족 정체성 담겨”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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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1-11 20:55:25 수정 : 2019-01-11 20:5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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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한식 연구 외길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세계무대서 한식 대한 관심 커져/이럴 때일수록 기본을 중시해야/궁중음식 연구, 잔치음식에 치중/
잘못된 통념들 많아 안타까워/왕실밥상, 격식·품위·위생 중시/저평가된 한식문화 재조명되길
“궁중음식은 굉장히 화려하고 진기하리라 막연히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았어요. 어떤 면에서는 현대인이 왕보다 더 잘 먹고 있어요. 왕이 푸아그라, 캐비어를 맛봤겠어요? 과거에는 재료에 한계가 있었죠. 하지만 왕실 음식은 한식의 꽃이에요. 소중한 문화유산이니 모두가 배워야 합니다.”

한식이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김치·불고기만 외치던 과거와 달리 순두부찌개, 삼계탕, 파전 등 각양각색 한식을 찾는 외국인이 늘고 있다. 30년간 한식을 연구한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이런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뿌리를 알아야 ‘21세기 한식’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식의 정수인 왕실 음식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정 교수가 왕실의 식사를 연구해 신간 ‘조선 왕실의 밥상’으로 엮었다. 

궁증음식은 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로 폭넓게 연구돼 왔지만, 대부분 잔치음식에 집중됐다. 정 교수는 궁인들이 기록한 발기(發記)에 주목했다. 이를 토대로 고종 황제가 즐긴 삼시 세 끼를 엿보고 왕실의 생신·혼례 상차림 등을 정리했다. 발기는 왕실에서 의례에 사용한 물품·수량 등을 기록한 고문서다.

지난 7일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난 정 교수는 “발기를 보고 가슴이 뛰었다”며 “이렇게 좋은 기록이 있는데, 음식 차리는 분들조차 발기를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왕실 밥상에 대한 잘못된 통념으로 ‘12첩 반상’을 들었다. 

“왕실에서 12첩 반상을 먹었다고 하는데, 사실 정조 때는 밥·김치·장 등의 기본에 7기(그릇)의 반찬이 놓였어요. 고종 때는 9기로 늘어났죠.”

정 교수의 도움을 받아 고종이 어느 날 아침 받았을 법한 상차림을 그려보면 이렇다. 찹쌀밥과 명태탕, 김치, 간장 종지가 놓인 가운데 채소와 고기를 꼬치에 꿴 적, 젓갈, 소의 콩팥 볶음, 해삼전, 편육, 소를 푹 고아서 젤라틴을 굳힌 족편이 놓인다. 또 장아찌 같은 각색 자반, 무나물이나 도라지 등의 나물이 곁들여진다. 고종은 밥식혜를 좋아했고 겨자도 즐겼다. 감귤, 화채, 수정과 역시 챙겨 먹었다. 점심에는 메밀면 등 국수가 일반적이었다.

“왕실 밥상은 비교적 균형 잡힌 식단이었어요. 5대 영양소가 골고루 들었죠. 하지만 나라에 가뭄이 들면 밥상을 줄였어요. 반찬 수를 줄이는 감선, 심하게는 끼니를 굶는 철선을 했어요.”

요즘은 몸에 좋은 음식에 우르르 몰리는 세태가 비판 대상이지만, 조선은 ‘약식동원(藥食同源)’이 철학인 나라였다. ‘약과 음식은 근본이 같다’는 사상은 중국에서 나왔지만 조선에 와서 꽃을 피웠다. 

흔히 한식은 ‘비위생적이다, 플레이팅 개념이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정 교수는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왕실 밥상은 격식과 품위를 중시했어요. 음식의 색이나 높이를 통해 아름다움을 추구했습니다. 상도 다 다르고, 그릇도 계절별로 여름엔 백자, 겨울에는 놋그릇 식으로 다르게 썼어요. 또 서양식이 센터피스(식탁에 놓는 꽃)를 중시하듯, 조선 시대에도 ‘상화’가 있었어요. 꽃을 죽인다고 해서 생화를 쓰지 않고 종이·비단꽃을 놓았죠. 냅킨 격인 휘건도 사용했어요. 한식을 제대로 알면, 여러 사람이 찌개에 숟가락을 담그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이건 일제 시대 영향이죠. 오히려 한식이 철저히 위생을 추구했어요. 왕실 음식은 일인독상 차림이었습니다.”

정혜경 호서대 교수는 최근 한식이 너무 달고 매워졌다는 지적에 대해 “한식은 결코 짜거나 맵지 않았다”며 “왕실 음식 역시 슴슴했다. 재료의 맛만으로 감칠맛을 내려니 좋은 식재료가 쓰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남정탁 기자
정 교수는 이런 전통의 단절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요즘 서양의 푸드 스타일을 배우고 있지만 우리가 훨씬 아름다운 문화를 갖고 있었다”며 “서양 식탁 예절을 모르면 촌스럽다고 여기면서 우리 예절은 무시하고 잘 가르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우리가 디저트 문화가 약하다고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떡과 한과류를 보면 압도할 만큼 종류가 많은데 다 사라졌어요. 만들기 귀찮고 힘드니까요. 한식 자체가 섬세한 손을 많이 요구해요.”

한식 조리법은 섬세하게 세분화돼 발달했다. 소를 이용한 요리만 봐도 그렇다. 왕의 밥상에는 소의 위, 간으로 만든 전이 올랐다. 정 교수는 “조선은 소의 나라라고 할 만큼 쇠고기를 많이 먹었다”며 “소를 잡아서 버리는 것 없이 내장까지 잘 분류해서 먹은 걸 보면 정교한 조리법이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문화의 척도 중에 섬세한 조리법이 있어요. 미국 사람이 식문화 면에서 프랑스에 기죽는 이유죠. 우리 음식문화 역시 일본에 영향을 많이 미쳤어요. 차 문화도 한국에서 건너가 일본에서 꽃피었고, 두부·도기도 한국에서 전해졌어요. 우리의 장 담그기도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게 정설입니다.”

정 교수는 “이런 우리만의 미식 전통을 정규 교육 과정에서 배울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민족의 정체성은 음식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프랑스는 물론 이탈리아·영국에서도 학교에서 맛 교육을 할 만큼 자국 음식을 가르치는 게 세계적 추세”라고 덧붙였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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