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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부모와 생부모는 입양인 지키기 위한 창과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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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1-10 09:29:27 수정 : 2019-01-10 09:2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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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은 사랑입니다.”

입양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국내 입양을 장려하기 위해 정부와 입양기관 등이 적극 내건 슬로건입니다. 그러나 말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부부가 되고, 직접 낳은 아이를 키우는 것도 어려운데 결코 입양이 그보다 쉬울 리는 없습니다. 입양에 대해 보다 제대로 보고 마주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이를 위해 당사자들이 모여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기 위한 행사가 열렸습니다.

지난달 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공공그라운드에서 열린 ‘입양 삼자 토크 콘서트’입니다. 세 시간 남짓 진행된 이날 행사는 각 주체가 수년에서 수십년간 쌓아온 입양과 관련한 이야기와 경험을 털어놓고, 서로를 지지하고 북돋워 주는 자리였습니다. 향후 입양에 대한 어떠한 사후 서비스나 정부·사회의 지원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오랜 시간의 경험이 응축된 결과였던 만큼 별도의 편집 없이 최대한 전체 내용을 그대로 싣습니다. 이번 글은 두 번째 세션 내용입니다.

이설아=“두 번째 세션에서는 입양인 박소영(42)씨와 입양부모이신 정은주(46)씨, 생모이신 이경희(62)씨 세 분이 나와주셨습니다. 박소영씨는 생후 6개월 무렵에 입양이 되셨고, 서른세살이 되던 해에 자신의 입양 사실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정은주씨는 친생자녀가 둘, 입양자녀 둘, 사 남매의 엄마시구요, 이경희씨는 딸을 해외입양 보낸 생모이십니다. 이번 세션에서는 우리가 경험했거나 꿈꾸는 재회에 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먼저 박소영씨께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박소영=“재회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셨을 때 입양삼자 모임을 통한 나 자신과의 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올해 7월부터 모임에 참석했으니까 얼마 안 됐네요. 입양부모와의 만남은 낯설지 않았지만 생모는 사실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5개월간 참여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을 것들을 깨닫게 됐고 많은 것이 변한 것을 느낍니다. 가장 큰 건 10년 전 한 번 만난 이후 만날 필요성 느끼지 못했던 생모와 최근에 다시 만난 것입니다. 생모도 하나의 여자, 인간이라는 것을 곁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내 생모도 나를 보고 싶어하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분노, 그리움, 슬픔 등 내 안의 감정을 만나고 싶은 용기도 갖게 됐습니다. 저는 공개입양이 아니었기 때문에 생모에 대한 기억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생모일지라도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면서 생모와의 만남이 안전하다고 안심하게 된 겁니다. 입양부모님들을 만나기 전에 저는 사실 입양부모님이라면 70세 정도일 줄 알았어요. 우리 부모님이 그러하시니까. 그런데 젊은 분들도 많으시더라고요. 인간적으로는 낯설지만 이들을 통해 부모님에게 인정받기 위해 제가 애썼온 것을 여기에서 또 반복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그렇게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입양부모님들의 다양한 고민을 들었습니다. 우리 부모님과 다르게 입양아의 상실을 애도하도록 도와주는 성숙한 부모님 보면서 질투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저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하며 인간적으로 놀라웠습니다. 사실 삼자모임에서는 입양모와 생모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이 있습니다. 이것이 관전포인트인데요(웃음), 굳이 표현하자면 한 여자를 사이에 둔 두 남자의 느낌이랄까. 내가 입양모 입장에서 이야기하면 생모에게 눈치가 보이고, 생모 입장에서 이야기하면 입양모 눈치가 보이는 거지요. 굳이 눈치볼 게 없는데 왜 이러고 있나 싶습니다. 회를 거듭하며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임에서 느껴지는 역동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모임을 마치고 집에 가면 하루이틀 정도는 집에서 뻗어있어야 할 정도거든요. 그러나 꼭 거쳐야 하는 성장통이라고 믿습니다. 깊은 내 안의 무의식이 건드려지고 아프겠지만 참 반갑고 좋은 일이기도 합니다.”

정은주=“제 딸도 보면 소영씨랑 많이 닮아 있습니다. 멍때리고 있는 모습? 외부와 단절된 느낌 받거나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애쓰는 모습 등을 보면서 우리 딸과 닮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소영씨가 이야기할 때마다 우리 아이도 그랬겠구나 생각하곤 했어요.”

이설아=“나 자신과의 재회란 어떠했나요?”

박소영=“잘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실수하고 싶지 않은 나를 봤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힘들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그런 모습들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가정에서 느끼지 못했던 받아들여짐, 내가 잘 하지 못해도 부족하지 못해도 받아들여지는 것을 삼자모임 안에서 보기 시작한 겁니다. 새롭게 발견한 내 모습이 생모와의 만남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생모라 해도 어차피 또 부모님입니다. 그러면 난 또 열심히 하고 만족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 부담이 된 거지요. 10년 전에도 만났고 다시 만날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했는데, 그것은 첫 만남 당시 호구조사 차원 정도로 진행됐기 때문이었습니다. 생모를 만나면 나는 누구이고 왜 이러는지 답을 찾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만나는 게 두렵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설아=“입양인이 나 자신과 만날 수 있도록 우리 부모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정은주=“우리 아이는 10살 때 입양됐습니다. 그 세월만큼 빨리 가속도로 아이를 우리 가족화하려 애를 많이 썼어요. 그러다 보니 부족한 모습을 조금만 봐도 용납하지 못하던 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엄마였던 거지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많았습니다. 어려움을 계속 겪다가 깨달은 게 아이의 감정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의 감정과 생각을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그러면 아이가 자신을 표현하는 데 익숙해지고 자신과 대면하는 데 도움 될 거라는 생각이었지요. 아이의 부족한 모습을 지적하기 보다는 ‘너라서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아이가 엄마에게 무조건 수용받으면 자기 자신을 수용하는 법도 깨닫게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박소영=“삼자모임 참석하고 계시는데 어떤 의미가 있으신가요?”

이경희=“생모는 평생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가는데,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자체로 큰 도움이 됐습니다. 소영씨는 생모를 만나셨는데 10년 전과 무엇이 달라졌는지요?”

박소영=“첫 만남은 입양사실을 알고 나서 1년 이내에 이뤄졌습니다. 제가 아는 분이 생부모 찾아보라고 권해서 홀트에 연락했더니 연락이 2∼3일 만에 왔거든요. 연락하기 1년 전쯤에 생모가 최신 연락처를 남겼다고 해서 그렇게 빨리 된 것 같습니다. 내가 어떻게 생겼고, 입양됐고 그런 내용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밥을 먹고 집에 갔습니다. 그 만남을 통해 인간적인 교류가 있었다고 느껴지지지는 않았고 호구조사, 사실확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만남에서는 놀라운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5시간 정도 만났는데요, 이야기 나누면서 저는 저와 기질이 같고, 성향이 같고, 생각하는 방향이 같은 사람은 평생 처음 만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 안에서 그 분이 나랑 그렇게 기질이 같고 성향이 같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나여도 괜찮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 내가 뭘 애쓰지 않아도 내 모습 그대로가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습니다. 이런 느낌이 존재한다는 걸 정말 몰랐어요. 그러면서 이런 느낌 없이, 받아들여지는 느낌 없이 내가 나여도 좋은 느낌 없이 43년을 어떻게 살아왔나 싶었습니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15% 남으면 충전하라 하고 경고가 뜨고 5%가 남으면 난리가 나는데, 저는 평소에 20%정도로 살아온 것 같습니다. 금방 15%가 되는 거예요. 여기서 조금만 스트레스를 더 받으면 5%로 떨어져 죽기 직전이 됩니다. 저는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어요. ‘나도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지?’ 싶었습니다. 제가 무슨 생각할 때 멍하니 옆 허공을 응시하는 게 있는데, 생모께서도 그렇게 하시더라고요. 그런 것을 경험할 때 저는 100% 충전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100%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43년을 살았던 거예요. 생모를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내가 100%가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100%에서 사는구나’, ‘나처럼 기를 쓰고 살지 않아도 되는구나’, ‘20%로 잘 살아왔구나’라며 저 자신이 대견했습니다.”

정은주=“재회 이후에 어떤 도움을 받으면 입양 삼자가 성장할 수 있을까요?”

박소영=“첫 만남에서는 입양기관의 관계자 분이 가운데 있었고 우리끼리 간단한 이야기하는 정도였습니다. 이번 재회에 함께 해주신 이선경 선생님이 저랑 20년지기 지인이신데요, 제가 이전에 힘들어하고 상태 안 좋을 때의 저도 알고 계십니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이 분이 상담전문가로서 그 자리에 있어주셨습니다. 다른 문화에서 생모와 제가 살아왔기 때문에 대화하는 법, 감정의 높낮이도 다른데 그런 걸 조율해주신 겁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면 이선경 선생님이 ‘소영이는 이런 말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는 어떻게 느끼세요?’ 이런 식으로 중재하는 역할을 계속 해주셨어요. 서로 감정이 너무 지나치면 상처가 되고, 머리로만 이야기하면 무미건조해지는데 그 균형을 잘 맞출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 부분이 두 번째 만남에서 일치감,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힘이 아니었나 싶어요. 이 이야기는 창피해서 하기 싫었는데, 생모 만나야지 하면서 집에 가는 길에 눈물이 막 나는 거예요. ‘왜 날 버렸지?’ 화가 마구 났어요. 그런데 이 감정으로 만나면 머리채 잡을 것 같은 거예요. 제가 정말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서. 이 분노와 힘든 감정을 일단 정리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빠서 상담받을 시간이 없쟎아요. 저 혼자 집에 가서 떠올려봤습니다. 그래도 상담은 꽤 받아봤으니 그 경험을 떠올려 해본 겁니다. 6개월 기관에 맡겨진 내가 어땠을까. 저의 외침은 한 가지였습니다. ‘엄마 어딨어?’, ‘왜 나를 버렸어?’, ‘내가 얼마나 힘든줄 알아?’, ‘사람들아 엄마 좀 데려와’ 그러면서 대성통곡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느끼면서 혼자 집에서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습니다. 옆집에서 들으면 신고할까봐 6개월 아이처럼 했습니다. 한참을 하다보니 그 아이를 너무 위로해주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를 토닥이며 ‘불쌍해서 어쩌나’라고 계속 하니까 6개월의 소영이가 좀 잠잠해지더군요. 그래도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엄마를 데려올 수도 없고, 지난 일 어떻게 할 수도 없쟎아요. 그래서 ‘예수님 얘 좀 도와주세요’ 하니까 좀 편안해졌습니다. 그 뒤로 생모를 만나러 갈 때까지 끓어오르는 분노, 화남이 없었습니다. 생모도 재회를 앞두고 많은 감정처리가 있어야 하겠지만, 입양인 또한 감정처리 미리 많이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설아=“두 번째 재회를 통해 인간적으로 깊은 관계가 시작돼서 이 자리에 생모께서도 오셨습니다. 두 분의 재회에 박수 부탁드립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이경희님이 들려주시겠습니다.”

이경희=“제목은 ‘두 번의 재회’입니다. 저에게는 두 번의 재회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친엄마인데 재회를 했고, 지금은 입양보낸 딸과의 재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엄마의 차이점은 어머니는 모든 것을 자녀를 위해 헌신과 희생을 하신 입양어머니시고 엄마는 낳기만 한 생모네요. 그렇다면 저는 입양인의 엄마 입장에서 기꺼이 용서구하겠습니다. ‘용서해줘’, ‘그리고 살아있어줘서 고마워’, ‘나도 입양 보내고 힘들었어’, ‘같이 행복하게 살자’ 하고요. 입양 보낸 경험은 고통스럽습니다. 죽음은 고통에 끝이 있고 슬픔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입양으로 떠나 보내면 아이를 삶에서 지워야 하고 행복한지, 살아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입양삼자가 모여 목소리를 내는 자리까지 왔습니다. 앞으로 함께 아름다운 이야기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이설아=“이 자리에서 입양 보낸 어머니들이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것을 위한 자리도, 수용해 주는 사회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처음으로 말씀을 꺼내는 겁니다. 입양인 입장에서는 어떻게 들으셨나요?”

박소영=“생모분들에 대해 보내면 그만인가보다 했는데 이것이 단순히 한 사건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평생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마음이 아프고 선생님의 삶에 끼친 영향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에 대해 가슴이 아픕니다.”

정은주=“입양으로(입양을 보내) 아이를 잃는 경험은 아이를 죽음으로 잃는 경험보다 더 힘들다는 표현이 있는데 가슴이 정말 아팠습니다. 입양이란 게 저에게는 아이를 선물로 받는 좋은 거지만 생모에게는 아이를 잃은 것이고,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를 잃은 날이니까요. 생모와 입양인에게 설명할 수 없는 미안한 마음이 새삼 듭니다.”

이설아=“입양에 모순된 감정이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이경희 선생님은 해외입양인 만나면서 어떤 생각 드셨나요.”

이경희=“저에게는 사명라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정은주=“이경희 선생님께서는 따님과 재회하신다면 어떤 바람이 있으신지요.”

이경희=“딸이 미국에 입양 가 있습니다. 결혼하면 가서 축하해주고 싶고, 신혼여행을 한국으로 와서 행복하게 살면 좋겠습니다.”

이설아=“정은주 선생님은 이별한 엄마, 희생한 엄마라는 표현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정은주=“희생이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두 엄마(입양모와 생모)를 모순이라 표현하고 싶어요. 창과 방패가 서로 대립각을 세우지 않고 아이를 지켜내는데 힘을 모은다면 그보다 큰 힘은 없는 거쟎아요. 두 부모가 입양인에게 모순과 같은 존재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서대문구 동방사회복지회에서 한 자원봉사자가 입양될 아이를 돌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설아=“입양인에게 생부모와 입양부모는 각각 어떤 존재인가요?”

박소영=“이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느낌이에요. 입양하신 엄마는 우리가 가요무대를 보거나 인간극장에서 부모님 보면 눈물나는데 그럴 때 생각나는 부모님인 것 같습니다. 늙어가시면서 저도 같이 늙어가는데 그들의 삶에 대해, 선택에 대해 더 이해하게 되는 부모님이다. 생모분은 미지의 세계, 다이아몬드가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파헤쳐지지 않은 광산 정도의 느낌입니다. 나의 정체성, 세계에서 유일하게 DNA가 같은, 100% 풀차지해줄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이설아=“다음으로 정은주님의 입양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정은주=“저는 제가 재회를 맞을 준비가 돼 있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두 명의 입양자녀와 두 명의 출생자녀가 있습니다. 저는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가 돼 있는지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작년 생일에 딸은 네이버에 이름, 배로 난 엄마를 검색하면 찾을 수 있을까? 왜 나를 찾을 수 없었대?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설명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보니 답답함만 전해져 왔습니다. 10살에 입양된 딸은 자유롭게 질문하는 아들을 보면서 부러워 하기도 하고 생모를 본 적이 있느냐고 돌려 말하기도 합니다. 어렴풋한 동경이 있는 것 같은데 스무살이 되면 생모를 찾자고 했습니다. 생모가 준비 안 됐으면 만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해줍니다. 현실을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그렇다면 저는 그러면 재회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을까요. 재회 이후 저와 아이의 관계는 어떠할까. 재회가 안된다면 아이를 어떻게 위로해야지? 재회 이후 아이의 감정을 어떻게 달래야 할까. 재회가 지속될 때 나의 감정은 어떠할까.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질문을 해봅니다. 이에 대해 제대로 답 못하는 걸 보니 재회에 대한 준비가 안 된 것 같습니다. 재회로 아이의 근원적 질문이 해결될까? 재회가 이뤄지지 않으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 이런 질문에 아이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입양부모 입장에서 재회는 외면하고 싶은 생채기 같은 것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이가 원한다면 잘 준비해야 합니다. 왜냐고 묻는다면 저는 아이들의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만 가진 고유성을 존중해야 하니까. 재회는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이전부터 이후까지 준비가 많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5년이 지나면 아이는 스무살이 됩니다. 아이는 재회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재회에 앞서 먼저 두 가지 만남이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먼저 부모로서 나 자신과의 만남인데요, 나 자신이 건강하고 성숙한 어른인지 돌아보는 것이 우선입니다. 성인 아이를 잘 떠나보낼 수 있는지, 입양부모로서 엄마는 엄마일 뿐이라는 의연함 자신감 가져야 합니다. 둘째로 자녀와의 관계는 얼마나 친밀한지, 신뢰는 어떠한지 돌아봐야 합니다. 재회에 대해 아이가 언제든 꺼낼 수 있는 소통할 수 있는 부모가 되길 바랍니다. 재회 이후 아이의 마음에 변화가 있다면 그것을 달래기 위한 베이스캠프가 되고 싶습니다. 재회는 입양부모에게 불편한 게 아니라 내가 필요한 퍼즐을 찾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서로의 존재에 감사할 수 있는 재회를 꿈꿔봅니다.”

이설아=“이경희 선생님은 입양부모님들의 감정이 복잡한 것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

이경희=“성장통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이설아=“정은주씨께서는 두 아이를 입양하셨고, 둘 다 재회를 할텐데 어떻게 다른가요.”

정은주=“아들인 둘째는 아직 어려서 막연히 환상, 동화같은 생각이 있어요. 첫째는 4∼5년 밖에 안 남아서 구체적인 준비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제 주변에서 전혀 준비 없이 어릴 적 헤어진 생모와 재회했다가 그 이후 더 큰 심리적 괴로움에 아파한 케이스를 알고 있기에 저는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경우에 대해 재회 이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만큼은 가족들이 축복하고 환영받는 재회를 하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이설아=“준비되지 않은 채로 만나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클 수 있겠습니다. 소영님이 이전에 첫 번째 재회를 하러 갈 때 입양부모님께선 어떤 반응을 보이셨나요.”

박소영=“갈 때는 잘 다녀오라고 했는데, 나중에는 ‘나 너 뺏기는 줄 알았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아니, 우리 엄마는 내 엄만데 왜 그런 생각을 하시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말 자체가 제가 입양되었기 때문에 엄마가 하지는 거라 생각되어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설아=“생모와 재회하고 나서 입양부모님과 관계의 변화가 있으셨나요.”

박소영=“엄마가 생모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는데, 소영이가 생모를 만나고 있겠구나 지레짐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멀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그게 저에게 상처였습니다. 다시 버림받는 느낌으로 힘들었는데 10년 지나면서 다시 회복하게 됐습니다. 남동생 둘이 있는데, 그들보다 엄마가 저에게 더 많이 의지합니다. 지금은 많이 회복했지만, 그땐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설아=“입양부모님 입장에서는 생모만나러 간다할 때 힘든 것 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입양부모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요.”

정은주=“재회하는 자리에 어머니의 자리를 잠시 내어주는 게 쉽지는 않을꺼 같습니다. 생모랑 살러 가는 거 아닐까? 오해나 편견을 가질 수 있는 겁니다. 저도 사실 재회를 생각하면 살짝 그런 마음이 들어왔다 나갈 때가 있습니다. 아까 소영씨가 재회를 통해 100%로 충전된다는 느낌을 받는 거라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것이 자기의 근원, 정체성 찾는 순간이기 때문이란 생각입니다. 입양인과 입양부모가 재회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고, 어떻게 이야기 풀어갈 것인지, 재회를 했을 때 생모와 입양인은 어떤 대화를 어떻게 나눠야 할지, 재회 이후에 입양인과 입양부모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에 대한 자세한 교육과 상담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재회 이후에도 발생하는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선경님이 박소영님의 재회에 전문가로 함께 했던 것처럼 재회를 위한 전문서비스가 준비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설아=“소영님이 입양부모라면 아이가 생모랑 재회할 대 어떻게 도움을 주고 싶으신가요.”

박소영=“재회를 앞둔다면 아이가 무얼 기대하는지 물어봐주고 함께 마음의 준비를 해주고 싶습니다, 부모들이 이럴 수 있을지, 제 생각이 비합리적이거나 이상화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두 번째로 부모님들이 기뻐해주시면 좋겠어요. 저 같아도 안 기쁠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입양인에게는 축제의 날인 거쟎아요. 더 심하게 말하면 구원의 날, 두 번째 생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그것을 함께 기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엄마가 진심으로 기뻐하지 않을 것을 알고는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생모를 만나고 와서 그 기쁨을 가장 나누고 싶었던 사람이 입양엄마였습니다. 집에 가면서 엄마에게 이렇게 좋은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었던 거에요. 그래서 입양부모님이라면 함께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을만큼 성숙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정은주=“입양부모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주면 도움이 될까요.”

박소영=“입양인들은 안 그럴 수 있는데 저같은 사람은 입양부모님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돌봄을 계속 받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눈치를 보면서 노력합니다. 생모를 찾고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양부모님께서 좋아하지 않을 때, 원치 않을 때 만남(재회)을 미루거나 포기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눈치 안 볼 수 있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재회는 성인 입양인에게는 본인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입양부모도 자식이 생모를 만나는 것에 대한 느낌은 입양부모 본인의 것인데 아무도 해결해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해결의 숙제를 입양인에게 넘기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을 스스로 깨닫고 감정을 해결할 수 있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이설아=“이경희 선생님은 어떤 생각이신가요.”

이경희=“입양부모를 뵈면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정은주=“아이들 생일이 다가오면 가슴이 아픕니다. 보낼 수는 없지만 생모를 향한 편지를 써봅니다. 우리 아이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그것과 함께 올해에는 아이가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 적습니다. 그 편지를 생모에게 전달해주고 싶어요. 먼저 말씀드릴 것은 정말 감사하다고. 아이는 정말 갈망하지만 생모에게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 나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 공간에서 같이 살지는 않았지만, 매 순간마다 생모의 존재가 나타나곤 합니다. ‘나는 11층 사는데 배로 낳은 엄마는 몇층 살까’, ‘나는 이거 좋아하는데 배로 낳은 엄마는 뭐 좋아할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생모란 함께 살아왔고 존재하는 분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설아=“이경희 선생님께 입양삼자 모임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경희=“내가 이전엔 알 수 없었던 수많은 것 깨닫고 새롭게 변했다는 부분에서 너무 감사합니다. 입양삼자 모두가 그 역할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설아=“네. 두 번째 세션에서는 입양 삼자가 바라는 재회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았습니다. 용기 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주신 세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사진=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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