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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삼일 그대, 새해란 무엇인가?"… 영민한 질문 던지다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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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1-04 20:48:55 수정 : 2019-01-05 20: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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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잔소리에 지친 젊은세대 향한 조언 / ‘추석이란 무엇인가’SNS 등서 주목받아 / 신문·잡지 기고한 글 에세이집으로 펴내 / 독특한 통찰력으로
깨달음의 여운 남겨 / 글 잘쓰기 위해서는 일단 책 많이 읽어야 / 어릴적 전집류 독파 칼럼은 빨리 쓰는 편 / 죽음을 생각하려면 살아있어야만 하듯 / 몽상에 빠지기보단 맑은 정신 유지해야 / 목적의식 지닌다면 인생이 재미 없어져 /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 갖지 말길
먼저 새해 ‘작심삼일’ 결심에 주눅 든 당신을 위로하는 글귀를 소개한다. “마침내 새로운 해를 맞는다는 의식도 모두 인간이 삶을 견디기 위해 창안해낸 가상현실이다.”(‘새해에 행복해지겠다는 계획은 없다’) 실실 웃음이 배어나오는 다음 문장은 어떤가. “상반신과 하반신에 걸쳐 있는 이 무책임한 비무장지대를 묵상한다. 아, 뱃살은 평생 긴장해본 적이 없구나.”(‘뱃살이 꾸는 꿈’)

모두 요즘 ‘핫’한 칼럼니스트 중 한 명인 서울대 김영민 교수(정치외교학)가 쓴 글이다. 김 교수는 지난해 9월 명절 때 취직, 결혼, 아이 등을 묻는 일가친척에게 ‘당숙이란, 결혼이란, 후손이란 무엇인가’를 되묻자고 조언하는 칼럼(‘추석이란 무엇인가’)으로 주목을 받았다. 젊은세대를 중심으로 김 교수가 과거에 쓴 칼럼들을 찾아 읽는 팬덤까지 생겼다.

김 교수의 칼럼은 재치와 위트가 넘치는 말랑말랑한 글만 있는 게 아니다. 일상과 학교, 사회에서 우리가 다반사로 겪고, 어렴풋이 짐작하고, 마땅히 분노했어야 할 현안에 대한 비판과 통찰도 상당하다. 예컨대 “공부하는 곳에 입학하기 위해 공부가 싫어지는 체험을 해야 하는 역설이 대학 입시 공부에 있다”, “집권세력은 분노의 근본원인을 이해하려 들지는 않지만, 그 분노를 제압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등의 문장은 한 번 읽고 넘기기엔 그 울림이 꽤 묵직하다.

지난달 31일 세계일보 사옥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그가 지난 3년여간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한 칼럼과 인터뷰 기사 56편을 모은 에세이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어크로스) 출간을 핑계 삼고 정치부 기자와 정치외교학부 교수라는 접점을 내세워 ‘팬심’을 가렸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비법과 정치 현안에 대한 촌평, 고달픈 독자를 위로하는 조언도 구했다.

―책 제목이 다소 어둡다.

“일간지에 기고한 첫 칼럼(2016년 6월15일) 제목이기도 하고, 책 중간중간 관련 의미를 부연하는 칼럼들이 많아 책 전체 관통하는 메시지일 수 있겠다 싶었다. 은근히 담고 있는 메시지는 많다. 먼저 ‘죽음’에 대해 생각하려면 살아 있어야 된다. ‘아침’은 피곤하고 애매한 상태인 저녁 말고 정신이 맑을 때 죽음을 생각해보자는 뜻이다. 또 ‘생각’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 훈련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근육이 필요하다. 요컨대, 막연히 죽음에 대해 몽상에 잠기라는 게 아니라 반짝반짝 살아서 생각의 근육을 써서 멀쩡한 정신에 죽음이라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 생각하는 게 좋다는 의미에서 표제작을 골랐다.”
―‘위력이란 무엇인가’ ‘성장이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 등 유독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칼럼 제목이 많은 것 같다.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다. 그간 관행적으로 이어오던 일, 그러나 더 이상 현실에 맞지 않게 된 일에 대해 이 같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근본에서부터 대안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글쓰기 비법과 좋은 글의 요건은.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일단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제 경우 어릴 적 부모님께서 많이 사놓은 전집류 독파하는 재미로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지금도 직업적인 이유로 다독을 많이 한다. 칼럼은 빨리 쓰는 편이다. 다만 글에 비문이 없어야 한다고 믿는다. 비문을 피하는 게 나쁜 글을 안 쓰기 위한 제일 중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글도 비문이 많이 나오면 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글의 리듬과 재미도 중요하다. 리듬이 없는 글은 읽기 어렵고 재미 없는 글은 지루하다.)”

―정치학을 업으로 삼게 된 계기는.

“아마도 어릴 적부터 여러 가지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학부 때 (책을 실컷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철학을 전공했고 유학을 가서는 정치사상사를 공부했다. 정치사상사는 정치, 역사, 사상 이런 것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방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공부하면 좋은 분야다. 사상사는 소위 심각한 논문에서부터 문학작품, 그림, 연설문 등 거의 모든 종류의 텍스트를 연구 대상으로 포괄한다. 정치라는 것도 어찌 보면 삶에 편재(遍在)돼 있는 것 아닌가. 복수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야 하는 데서 발달한 게 정치다.”

―정치사상사 연구의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최근 아주 흥미롭다고 느끼는 영역이 (미술비평이나 미술사 등) 그림이다. 예컨대 이탈리아 시에나에는 ‘좋은 정부, 나쁜 정부’ 제목을 갖고 있는 벽화가 있다.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벽화를 보면 이탈리아 공화정 사람들이 어떤 이상을 추구했으며 어떤 정치를 갈구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좋은 정치에 대한 답은 각자 다를 수 있고 현재 예술가들도 나름의 답을 작품에 담고 있을 것이다. 연구자에겐 좋은 분석대상이다.”

―한국 정치에 대해 평가한다면.

“정치의 핵심을 리더십과 비전 제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저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한 공론화와 명백한 자기 의견을 나타낼 때가 됐다. 정치인은 여러 이유에서 모호한 언어를 쓸 수 있는데, 언론과 시민은 정치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좀더 명료한 언어로 (비전과 언어를) 구체화하라고 요구할 책임과 권리가 있다.”

―현실정치를 등한시한 순진한 주장 아닌가.

“한 사회에서 이상적 언어는 나름대로 담당하는 기능이 있다. 사람은 지금 주어진 상황보다 더 나아지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존재다. 현실적으로 이해관계나 타산에 의해 굴러가는 게 정치라고 말하고 말면 (발전은 없고) 우리는 굉장히 단세포적인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규범적인 언어 활동의 집약체인) 헌법 전문을 봐라. 규범적인 이야기만 있지만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현실정치가 바뀌었다.”

―칼럼중 ‘행복보다는 불행하지 않기를 바라는 쪽이다’는 말의 의미는.

“행복은 개인이 추구해야 할 사안이다. 행복의 정의나 기준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국가 차원에서 개개인을 행복하게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과도한 개입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반면 불행은 상당히 높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다. 국가나 공적기관은 불행을 막는 데 (가용자원을) 써야 한다. 사회안전망이나 사회보장은 정부가 보다 많은 사람이 불행에 빠지지 않게끔 조치하는 취지다.”

―난민 입국이나 젠더 이슈 등 사회적 갈등이 첨예화하는 양상이다.

“조용히 말했을 때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극단으로 나가는 것이다. 미리부터 양성평등을 실천하고 다민족사회의 기초를 다졌다면 이런 사회 갈등이 많이 해소됐을 것이다. 코피노(한국 남성과 필리핀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문제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리게 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른 사안 역시 계속 틀어막고 듣지 않으면 나중에 굉장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극단적인 양상으로 분출될 수 있다.”

―‘용기와 도전’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용기는 굉장히 흥미로운 덕목이다. 누가 사람과 기계의 차이를 묻는다면 저는 단연코 용기라고 말하고 싶다. 용기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굉장히 신비로운 일이다. 유물론적 인과론에 의해서 설명할 수 없어서다. 사람들 기대나 예상, 반복가능한 현상을 넘어설 때 발휘하게 되는 인간의 섬광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공지능(AI)도 못하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독자들, 특히 젊은세대에게 조언 한 말씀.

“행복에 대해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목적의식을 가지면 인생이 좀 재미가 없어진다. 가뜩이나 힘들고 어려운데 ‘반드시 행복해야 돼’라는 강박관념을 가지면 얼마나 괴롭고, 스트레스가 쌓이겠는가. ‘결과적으로 행복했다’와 같은 생각을 갖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좀더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서 매진하는 경험이 중요하고,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이나 지나온 과정이 행복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취업 문제로 어여쁜 제자가 찾아와 하소연해도 이 같은 조언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김 교수는 “그가 채식주의자만 아니면 고기를 사주겠다”고 했다. 이런저런 여러 말을 하는 게 쓸모 없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김영민 교수는… ●서울 출생 ●초등학생 때 전집류 독파 등 책읽기에 매진 ●1980년대 중반 책을 실컷 읽을 수 있겠다며 고려대학교 철학과 진학 ●미국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사상사 연구로 박사학위 ●1998년 일간지 신춘문예 영화평론 당선 ●미국 브린모어대 교수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저서 ‘A History of Chinese Political Thought’(중국정치사상사)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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