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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 쏟고도 먼지만 쌓이는데…장밋빛 시설 투자 열올려 [뉴스인사이드]

입력 : 2019-01-06 13:00:00 수정 : 2019-01-05 20:3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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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강정터미널 작년 3척만 입항 / 이용자 별로 없는데 연 10억 운영비 / 제주민군복합형 터미널은 더 심각 / 600억 들였지만 8개월째 입항없어 / 사드여파로 중국발 여객선 확 줄어 / 지자체마다 앞다퉈 인프라 구축 / 북·중·러·동남아 여행루트 선점 / 지역경제 활성화 위해 적극 추진 / 중국 여행객에만 의존 심화 한계 / 준비없이 투자땐 애물단지될 우려
3일 오후 강원 속초시 속초항 국제크루즈여객터미널에 들어서자 내부는 싸늘한 기운만 감돌았다. 1층 로비는 이용자가 없어 텅 비었고 환전소와 안내센터는 불이 꺼진 채 방치되고 있었다. 화장실을 이용하는 관광객만 가끔 눈에 띄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 2층 출국장도 이용자가 없어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매표소와 내국세를 환급해주는 부스에는 먼지 쌓인 빈 의자만 놓여 있었다. 속초항 국제크루즈 여객터미널은 환동해권 크루즈 관광객을 유치해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목적으로 2017년 9월 문을 열었다. 사업비는 373억원이 들어갔다.

3일 강원도 속초항 국제크루즈여객터미널 1층 로비가 텅 비어 있다. 
속초=박연직 선임기자
◆수백억 쏟아부은 속초·강정 크루즈터미널 ‘인적 끊겨’

지난해 이곳에는 단 3척의 크루즈만 입항했다. 이 중 1척은 태풍 영향으로 부산항에 입항하지 못해 속초항으로 기항지(잠시 내렸다 타는 항구)를 변경한 것이었다. 지난해 속초항 국제크루즈여객터미널에 입항한 크루즈 관광객은 총 6000여명인데 7∼8시간 속초지역에 머물다 떠났다. 체류시간이 짧은 만큼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 강원도에 따르면 지난해 속초항을 통해 찾은 관광객 1인당 지출액은 7만5000원 정도로 50만원 안팎의 제주도에 비해 15.0% 수준에 그쳤다.

이곳 여객터미널을 이용하는 크루즈가 적다 보니 음식점과 면세점 등 편의시설이 들어서지 못하면서 반쪽짜리 터미널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원도와 속초시는 크루즈선박 유치를 위해 속초항 국제크루즈여객터미널을 이용하는 선박에 최고 1000만원의 운항장려금과 예·도선 비용 30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용자가 없는 여객터미널이지만 전기료 등으로 연간 10억원의 운영비가 쓰인다.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앞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 크루즈터미널은 더욱 심각하다. 600억원을 들여 지난해 5월 말 준공했지만 지금까지 크루즈 입항은 단 한 차례도 없이 8개월째 ‘개점휴업’ 상태다. 제주 크루즈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는 중국발 크루즈들이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제주 운항을 중단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관광미항은 15만t급 크루즈 2척이 동시 접안할 수 있는 부두와 세관, 출입국 관리, 검역(CIQ)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터미널(연면적 1만1161㎡), 항구 게이트를 연결하는 1㎞ 남짓한 무빙워크, 차량 135대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까지 갖췄다.

제주 국제크루즈전용부두는 제주항에도 있다. 지난해 이들 두 곳 크루즈항에 예정된 국제 크루즈 입항은 601회였으나, 실제 입항은 20회(3.3%)에 불과했다. 제주에 입항한 크루즈 중 중국을 기항지로 삼은 사례는 한 번도 없었다. 이로 인해 2016년 120만명을 넘어선 제주 크루즈 관광객은 2017년 18만9700여명으로 대거 줄었고 지난해는 2만1700여명으로 추락했다. 올해 두 크루즈터미널의 크루즈 입항 계획에 따르면 총 20개 선사에서 520회를 예약했지만, 이 중 중국발 크루즈가 483회(92.9%)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에서 크루즈 관광객들이 올지는 미지수라는 점이다.

◆마산항 유람선터미널도 사업자 없어 2년째 ‘임시폐쇄’

국내 연안여객선 터미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경남 창원시 마산항 제2부두 관광유람선터미널은 인적이 끊긴 채 찬바람만 불고 있다. 창원시가 2013년 9억원을 들여 지은 9053㎡ 규모의 터미널 건물 입구 유리문에는 ‘임시폐쇄’라고 쓰인 종이가 붙은 채 굳게 닫힌 상태다. 마산만과 거가대교 일대를 둘러보는 전남 여수 선적 700t급 극동크루즈 연안여객선이 적자운항을 이유로 2017년 1월 운항을 중단하면서 터미널 건물은 지금까지 화장실 용도로만 사용되고 있다.

경남 창원시 마산항 관광유람선터미널이 2017년 연안관광 유람선 운항 중단 이후 새 사업자를 찾지 못해 2년째 방치되고 있다. 창원=이보람 기자
극동크루즈는 마산항관광유람선터미널 측이 5차례에 걸친 공모를 통해 간신히 유치해 2014년 3월부터 3년간 운항했으나, 이용객은 총 15만명으로 운항사 기대치(30만명)의 절반에 그쳤다. 창원시는 그동안 세 차례에 걸쳐 새로운 크루즈 운항사를 물색했으나, 사업자가 쉽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시는 창원시정연구원에 의뢰한 연구용역 결과가 조만간 나오는 대로 관광유람선 활성화 방안을 수립하고 새 운항 사업자를 모색할 계획이다.

◆‘황금알 낳는 거위…’ 지자체마다 터미널 구축 앞다퉈

상황이 이런데도 최근 주요 항구를 끼고 있는 지자체마다 외국 크루즈 선사를 대상으로 기항 유치와 부두·터미널 등 인프라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크루즈 여행에 관심이 높아지는 데다 남북 화해 무드로 북한, 중국, 러시아, 동남아 등지를 연결하는 여행루트를 선점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복안에서다.

인천항만공사는 송도 남항 인근에 조성한 크루즈터미널(연면적 7364㎡)을 오는 4월 개장한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22만5000t급 크루즈선이 정박할 수 있는 길이 430m 부두를 갖췄다. 22만5000t급 크루즈선은 한 번에 관광객 5000∼6000명이 탈 수 있다. 인천을 모항으로 하는 크루즈선도 운항한다. 터미널 바로 옆에는 축구장 9개 넓이보다 큰 6만7000㎡ 규모로 건설 중인 신국제여객터미널을 올해 하반기 준공한다.

경북 포항시와 해수청은 영일만항에 최대 7만5000t급 국제크루즈가 접안할 수 있는 전용부두 공사를 2017년 착공했다. 454억원을 들여 추진 중인 공사를 2020년 완료하면 중국 동북 3성과 러시아 연해주, 일본 서안을 잇는 환동해권 크루즈 기항지가 돼 2025년 이후 방문 여행객이 10만명에 달할 것으로 봤다.

울산시도 송철호 시장의 공약 사항인 크루즈 사업을 본격화해 여객터미널 등 인프라 구축과 관광상품 개발에 나섰다. 대만 등 해외 아웃바운드 여행사를 대상으로 크루즈선 관광객 유치 활동을 벌인 데 이어 현재 울산항 중장기 항만개발 운영 마스터플랜 용역을 진행 중이다. 결과가 도출되면 해수부에 건의해 2022년까지 크루즈 터미널과 전용부두를 설치할 계획이다.
3일 강원도 속초항 국제크루즈여객터미널의 환전소와 안내센터가 텅 비어 있다. 
속초=박연직 선임기자
◆국내 여건은 ‘걸음마’ 수준 “관광객 다변화 등 노려야”

정부와 지자체는 10여년 전부터 유럽, 북미지역 크루즈 관광이 아시아로 확대되면서 다양한 육성 계획을 마련하고 해외 홍보를 강화했다. 최근에는 크루즈산업 발전 기여를 목표로 한국크루즈포럼이 출범하고 국제 세미나를 개최해 동북아 크루즈 협력과 발전 방안을 모색하고 나섰다. 크루즈 인더스트리 발간 자료에 따르면 세계 크루즈 관광객이 2009년 1780만명에서 2017년 2580만명으로 늘었다. 문제는 세계 크루즈 시장의 급속한 성장에 비해 우리나라 크루즈산업 여건이 여전히 저조하다는 점이다. 크루즈 여행객을 중국에 의존하면서 지속가능한 관광수요 창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해수부에 따르면 크루즈를 이용한 방한 관광객은 2014년 100만명을 돌파한 이후 2016년 195만명을 넘어서는 등 급성장했다. 하지만, 중국의 금한령 이후 2017년 39만4000여명으로 대거 줄었고 지난해 11월 말 현재는 20만명으로 곤두박질쳤다.

전문가들은 치밀한 사전 검토와 기항 크루즈 관광객 다변화, 연계 관광체계 구축 등 준비 없이 시설투자에 급급하면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정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원은 “크루즈 기항은 체류시간이 한나절 정도로 짧기 때문에 신속한 입국체계와 관광·쇼핑 등 연계 체계를 잘 갖춰야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국민의 크루즈 여행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므로 사회적 분위기 확산과 함께 중장기적으로 조선산업과 연계하고 국내 주요 기항지의 기능을 모항으로 전환해 산업화를 이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주·속초·창원·제주=김동욱 기자·박연직 선임기자·이보람·임성준 기자 kdw763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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