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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억들인 제로페이, 관심도 '제로'될라 [체험기]

입력 : 2018-12-30 15:00:00 수정 : 2018-12-30 15: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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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톡톡-제로페이] 직접 써보니
지난 27일 서울 최저기온이 영하 13도를 찍은 혹한의 날, 시범 서비스 일주일차를 맞은 제로페이를 써보겠다고 서울 바닥을 누비고 다녔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역점사업이자 홍보에 수십억원을 들이고 있는 제로페이. 하지만 체험 내내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과연 내가 모든 카드 혜택을 다 버리고 제로페이를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

◆수차례 인증과 통일 안 된 앱... 번거로운 가입 절차
제로페이는 소상공인을 위해 서울시가 내놓은 스마트폰 간편결제 서비스다. 계좌 대 계좌 방식으로 QR코드나 바코드를 이용해 판매대금을 직접 소상공인 계좌로 입금해준다. 소상공인에게는 0%에 가까운 결제수수료, 소비자에겐 40% 소득공제 혜택을 무기로 내세웠다.

일단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깔아야 한다. 이 부분이 제로페이 이용 시 첫 번째 장애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기자도 그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7년 국내 신용카드 보유율은 80.2%, 체크카드는 66.0%에 이른다. 지갑이 두둑해질 정도로 가득 찬 신용카드-체크카드를 놔두고 굳이 보안카드 인증과 ARS 인증까지 해가며 제로페이 가입을 해야할지 의문이 들었다.

실제 간편결제 서비스 이용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가입이나 앱 설치의 복잡함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아르바이트 O2O 플랫폼 알바콜 회원 666명을 대상으로 ‘오프라인 간편결제 이용 경험’에 대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사용 경험이 없는 이유로 ‘가입이나 앱 설치 등의 번거로움’(35.1%)이 가장 컸다. ‘사용할 기회가 없음’(28.0%),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22.7%), ‘이용의 제약(가맹점 부족)’(10.0%) 등이 뒤를 이었다.

계좌를 연결할 은행에 따라 설치해야할 앱이 다른 것도 단점이었다. 스마트폰 이용에 서툰 고령자라면 시작부터 포기할 가능성이 클 듯싶다.

광주은행, 농협중앙회, 새마을금고연합회, SC제일은행, 하나은행 등 10개사는 은행권 공동 앱인 뱅크페이 앱을 이용해야 한다. 반면, 국민은행, 기업은행, 농협은행, 우리은행 등 10개 은행은 뱅크페이뿐 아니라 자사 뱅킹 앱을 통해서도 제로페이에 가입할 수 있다. 머니트리, 네이버페이, 페이코, 하나멤버스-하나머니고 이용자는 해당 서비스 앱을 쓰면 된다.

◆박원순 시장 다녀간 명동 유명 베이커리서 첫사용 “쉽네”
서울 중구 파리바게뜨 명동본점을 찾았다. 이곳은 지난 24일 박원순 시장이 제로페이를 시연했던 곳이다. 손님으로 북적이는 매장 구석에서 제로페이 가입에 성공했다.

빵을 골라 계산대로 가 “제로페이 되나요?”라고 물었다. 바코드와 QR코드가 나타난 스마트폰 화면을 직원에게 보여주었다. 직원이 스캐너로 화면에 뜬 바코드를 읽자 계산이 끝났다. 설치는 한참이었는데 결제는 순식간이었다.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갔다는 스마트폰 뱅킹 앱 알림이 울렸다. 카드 결제와 비슷했다.

첫 성공에 고무되자 ‘이렇게 된 거 제로페이로 하루 살아보기 식으로 기사 주제를 바꿔볼까’ 욕심도 들었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었다.

◆소상공인들 제로페이 잘 몰라... “홍보 부족”
“제로페이? 그게 뭐여?”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명동 유명 충무김밥 전문점에서 기자가 제로페이에 관해 묻자 직원들의 표정이 일순 굳어졌다. 직원들은 기자를 손님 아닌 잡상인 취급하며 ‘그런 건 알지 못한다’고 손사래 쳤다.

이후 유명 칼국수집, 감자탕집, 중국집, 돈가스집 등을 전전했으나 모두 헛수고였다. 서울시는 제로페이 시행에 30억원을 들이고 이 중 절반 이상이 홍보비로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날 인터뷰한 자영업자들은 제로페이를 쓰지 않는 이유로 ‘시의 홍보 부족’을 공통으로 꼽았다.

감자탕집을 운영하는 나모(55)씨는 “여기저기서 제로페이에 대해 많이 떠들기는 하던데 주변에 갖다놓은 사장님들이 없다”며 “손님들이 제로페이를 찾지도 않아서 굳이 초반에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아직 안 들여놓았다”고 설명했다.

중국집을 운영하는 김모(50)씨는 “광고는 많이 봤는데 제로페이에 대해 (공무원 등으로부터) 따로 설명 들은 것이 없다”며 “뭔지는 알지만 어디서 신청하는지 어떻게 쓰는지도 몰라서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로판매대 사장님들 “광고 봐도 뭔지 몰라”
(가판대)

주로 구둣방, 복권방, 분식점 등이 입점한 가로판매대 겉면에는 제로페이 광고가 큼지막하게 붙어있다. 혹시 몰라 구둣방에서 제로페이를 쓸 수 있는지 묻자 역시나 ‘그게 뭐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사장님 출퇴근하실 때마다 매장 바깥에 붙어있는 이 광고 못 보셨냐”고 했더니 구둣방 사장님은 “이건 그냥 공무원들이 새벽에 와서 자기들 마음대로 붙이고 가는 거야. 우리한텐 하나도 설명 안 해주고. 광고는 자기들 마음대로 계속 바꿔”라고 전했다.

복권방 사장님도 마찬가지였다. 제로페이에 대해 복권은 애초에 카드로 계산할 수 없고, 곁들여 파는 껌도 카드는 일체 받지 않아 제로페이를 쓸 이유가 없단 것이었다. 그 역시 매장 오른편에 붙은 제로페이 광고에 대해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쓸 곳 없어 ‘제로(0)페이’?…서울시청 근처 소상공인들 “앞으로 할 것”
이쯤 되니 ‘쓸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이름이 ‘제로(zero)페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실제 제로페이에 가입한 서울 시내 소상공인 점포는 2만여곳. 전체의 약 3%에 불과하다.

제로페이 주무부서가 있는 서울시청 근처에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명동에서 서울시청으로 이동했다.

아쉽게도 서울시청 근처 음식점들도 사정은 명동 쪽과 비슷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이들의 대답이 “몰라요”가 아닌 “앞으로 하려고요”로 바뀌었다는 것.

이곳 사장님들은 대부분 제로페이에 대해 알고 있었다. 서울시 공무원들이 제로페이에 대해 설명하고 신청서도 갖다 주었다고도 했다. 한 업주에게 ‘왜 알면서도 신청하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너무 바빠서 어디서 신청해야하는지도 모르고 할 시간도 없다”며 “본사에서 지침이 내려온 것도 없고 손님들도 안 물어봐서 안 했다”고 털어놨다.

한 프랜차이즈 고깃집 사장 백모(52)씨는 “전 이런 거에 빠른 편이라 신청은 해놨다”면서도 “그런데 (뱅크페이) 가입하려고 하니 가입비를 내라고 하더라. 이 부분에서 막혀서, 아직 오류도 있을 수 있고, 그래서 안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카드 포스기만 해도 먹통 되면 하루 장사가 난리가 난다. 아직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제로페이를 돈까지 주며 가입하는 건 좀 무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단비처럼 만난 제로페이 가맹점 “많이 써주셨으면”
지속된 실패에 힘이 빠질 무렵 반가운 제로페이 가맹점을 발견했다. 젊은 사장님이 운영하는 김밥집이었다. 반가운 마음과 허기짐에 곧바로 메뉴를 시켰다. 사장님은 기자가 제로페이를 쓴 2번째 손님이라고 했다.

그는 “수수료가 없다는 게 우리 같은 자영업자들한텐 정말 큰 도움이 된다. 김밥 몇천원짜리 한 줄 팔아 수수료 내면 남는 게 없다”며 “앞으로 제로페이가 많이 알려져 쓰는 손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김밥집 바로 옆의 복사집도 제로페이 가맹점이었다. 다만 아직 제로페이를 이용한 손님은 한 명도 없다고 했다. 벽에 붙은 ‘카드 결제 시 부가세 별도’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현금과 카드 결제 금액을 다르게 받는 것은 공공연한 불법행위다. 복사집 사장님은 “몇백원하는 복사비에 카드 수수료가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라며 “제로페이로 결제하면 현금처럼 부가세를 안 받을 생각”이라고 털어놨다.

◆소상공인들 “제로페이로 바꿀 이유 못 찾아”

제로페이는 연매출 8억원 이하인 소상공인들에게 수수료 0%라는 파격적 혜택을 준다. 지난 2016년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영업자 절반은 연매출이 46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5억원 이상인 자영업자도 고작 7.7%로 나타났다. 상당히 많은 소상공인들이 제로페이로 혜택을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업주들은 제로페이 도입에 소극적이었다. 이들은 굳이 지금의 결제 방식을 제로페이로 대체할 이유를 찾지 못해 보였다. 이미 정부는 영세-중소 자영업자에게 카드 우대수수료율을 적용하고 부가가치세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연매출 3억원인 영세가맹점은 매출세액공제를 통해 카드수수료를 한 푼도 부담하지 않고 오히려 연 150만~540만원, 연매출 5억원인 중소가맹점은 연 350만원까지 이득이 생기는 셈이다.

실제 이날 인터뷰한 한 분식점 업주는 “우리집은 어차피 영세해서 현금만 받는다. 그러면 소득이 얼만지 잘 안 잡히는데 제로페이를 쓰면 그게 드러나지 않겠나”라며 “괜히 세금만 더 많이 내게 될까봐 걱정”이라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착함’에 호소하는 결제 서비스... 소비자 혜택은?
지난 20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에만 100만명, 전국적으로 500만명에 이르는 자영업자들이 힘든 영업환경에 처해있다”며 “영업이익의 30~50%까지 차지하는 카드수수료가 (제로페이를 통해) 제로화 될 수 있다면 엄청난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로페이가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은 주지 않으면서 감정에 호소만 한다는 비판도 크다. 소비자는 제로페이를 쓰면서 즉시 할인이나 캐시백 등 체크-신용카드 혜택을 포기해야 한다. 서울시는 연소득 5000만원인 경우 2500만원을 오로지 제로페이로만 썼을 때 최대 47만원의 소득공제 혜택이 있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러한 계산이 비현실적이란 지적이다. 10∼20% 즉시 할인 혜택을 주는 카카오페이 등과 비교되는 모습이다.

서울시는 TV 광고 등을 통해 소상공인에 대한 연민을 건드린다. 반면 아직 제로페이 가맹점주 대부분은 대형 프렌차이즈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카드 혜택을 포기하며 소비자가 누구를 돕는지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다. 정식 서비스 시행 시 소비자를 유인할 매력적인 혜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원순 시장도 같은 입장이다. 그는 24일 파리바게뜨 명동 본점에서 제로페이 결제 시연을 한 뒤 “(점주들은) 그만큼은 수수료를 안 내게 되니 이익을 본다. 초기에는 상응하는 보너스를 (소비자에게) 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밝혔다.

박 시장은 “예컨대 ‘원플러스원’(1+1)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자에게)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했다. 또 가맹점주들도 소비자에게 제로페이 사용을 적극 권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사진=이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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