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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롱이는 죽어서 법을 남기고, 통키는 죽어서 숙제를 남겼다 [지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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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2-26 19:26:30 수정 : 2018-12-26 19: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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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서 주목받은 올해의 동물 '빅5' / 서식지 중요성 알린 '복원 반달곰'… 동물복지 화두 던진 '퓨마'
올해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이맘 때면 한해를 정리하며 ‘올해의 OO’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곤 합니다. 올해의 뉴스, 올해의 인물, 올해의 사자성어 등 말이죠.

‘지구의 미래’도 이런 분위기에 맞춰 올해의 동물 빅5를 꼽아봤습니다. 기사건수, 여론집중도, 제도변화를 기준삼았습니다. 여기에 기자의 주관도 상당부분 들어갔음을 미리 고백하니 진지한 시사교양보다는 가벼운 에세이 정도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주인공들을 이 자리에 모셔보겠습니다.

◆‘웅종(熊種)차별 웬말이냐’ KM53과 반이·달이·곰이

복원 반달가슴곰(KM53) / 기사건수 ★★★★ / 여론집중도 ★★★ / 제도변화 ★★★★
반달곰 KM53은 올해도 동물계의 ‘셀럽’이었습니다. 지난해에는 두 번이나 지리산에서 수도산으로넘어가 화제를 모으더니 올해는 세 번째 이동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앞발 뼈가 으스러지는 일을 겪고도 건강을 회복해 다시 자유의 몸이 됐죠.

수도산과 가야산을 오가던 KM53은 동면 장소로 가야산을 택한 모양입니다. 26일 기준으로 행동 반경이 500m 이내로 줄었고, 곧 겨울잠을 잘 것 같습니다.

동면에 들어가더라도 종복원기술원 연구원들은 위치추적기를 들고 KM53의 동태를 살핍니다. 곰은 3월 말∼4월 초에 잠에서 깨는데 그 사이 고로쇠 수액이나 산나물을 채취하러 온 사람들과 만나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거든요.

KM53은 멸종위기종 복원사업에서 서식지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었습니다. 정부는 그동안 개체수 늘리는 데 집중해 국립공원 밖 서식환경에는 크게 신경쓰지 못했는데요, KM53을 계기로 ‘반달곰 공존협의체’를 꾸려 공존활동을 펴기로 했습니다. 지리산뿐 아니라 백두대간 전체로 반달곰이 확산한다는 전제로 주민수용성을 높이고 위험요소는 없는지 살피는 겁니다.

사육 반달가슴곰(달이) / 기사건수 ★★★ / 여론집중도 ★★ / 제도변화 ★
사육 반달가슴곰(반이) / 기사건수 ★★★ / 여론집중도 ★★ / 제도변화 ★
호랑이가 사라진 산 속에서 곰의 천적은 인간이 만든 올무인데요, 그간 지자체 허가받은 올무는 한 달 간 설치할 수 있었지만 지난 10월부터는 모든 올무가 불법으로 바뀌었으니 안타까운 희생은 없었으면 하네요.

정책적으로 극진한 대접을 받는 복원곰과 달리 사육곰은 가장 ‘밑바닥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환경단체가 이달 초 강릉의 한 농장에서 곰 세마리를 구출해 동물원으로 보냈죠.

반이와 달이, 곰이는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답니다. 수컷곰 반이와 달이가 있는 청주동물원의 김정호 수의사는 “사과와 각종 야채, 닭고기, 곰 전용사료 등을 주는데 특히 사과를 좋아한다”며 “(열악한 농장생활 탓인지) 같은 자리를 왔다갔다하는 정형행동을 보이고는 있지만, 내년 곰사를 리모델링해 보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면 호전되리라 믿는다”고 전했습니다.

반이와 달이, 곰이는 겨울잠을 자지 않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사시사철 사람이 주는 먹이를 받아먹었기 때문에 동면이라는 야생성을 잃은 탓이기도 하고, 겨울잠을 자려면 지방 두께가 15㎝ 이상 되도록 두둑이 살을 찌워야 하는데 반이·달이·곰이는 또래 곰의 3분의 2정도로 마른 편이거든요.

500마리가 넘는 나머지 사육곰도 농장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환경부는 “동물원 수요조사를 했더니 경남 산청과 제주에서 곰을 받겠다는 곳이 있었다”며 추가 구출 가능성을 내비쳤습니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주도한 녹색연합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사육곰 한 두 마리를 빼와 여기저기에 분산배치할 게 아니라 보호소를 만들라는 것이죠. 베트남이나 중국에도 사육곰 생추어리(보호구역)가 있다고 하죠.

마침 올해는 국비 700여억원이 들어간 국내 최대 규모의 멸종위기종 복원센터가 경북 영양군에 개원했습니만, 어쩐 일인지 정부는 복원센터에 사육곰 공간을 마련하는 데 난색을 표합니다. 

◆뽀롱이는 죽어서 법을 남기고, 통키는 죽어서 숙제를 남긴다

퓨마(뽀롱이) / 기사건수 ★★★★★ / 여론집중도 ★★★★ / 제도변화 ★★★★★
올해 동물 중에서 가장 짧고 굵게 존재감을 떨친 동물은 퓨마 뽀롱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 9월 대전 오월드 동물원을 탈출해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되고 청와대까지 포획작전에 나섰죠. 뽀롱이는 탈출 네 시간 반만에 결국 사살됐는데 이게 여론을 자극했습니다. 뽀롱이 동정론을 넘어 동물원 폐지 주장까지 나왔습니다.

과거에도 강원도의 한 동물원에서 경영난으로 방치된 호랑이가 아사 직전에 구조되는가 하면 서울대공원에서는 호랑이가 사육사를 물어죽인 비극도 벌어졌지요. 하지만 논의는 주로 책임소재를 가리는 데 집중됐고 ‘동물원이 과연 필요한가’ 고민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지난 13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개정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법)은 정부가 5년마다 동물원과 수족관 관리 종합계획을 세우고 동물관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습니다.

개정안이 만들어진 건 뽀롱이 사건 이전이지만, 뽀롱이의 사망을 계기로 추가 개정 작업에 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지금은 등록만 하면 동물원을 만들 수 있는데 이를 허가제로 바꿀 계획이죠.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올라간 만큼 사육시설 기준도 재검토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 사육시설 설치기준에 퓨마 사육장은 넓이 8.4㎡, 높이는 2m면 됩니다. 뽀롱이가 살았던 곳은 340㎡로 기준에 비하면 ‘펜트하우스’급입니다. 하지만 퓨마는 시속 80㎞로 달려 5m 높이 나무 위로 껑충 뛰어올라가는 동물입니다. 퓨마에게 340㎡는 펜트하우스가 아니라 쪽방인 셈이죠.

북극곰(통키) / 기사건수 ★★ / 여론집중도 ★★ / 제도변화 ★★
지난 10월 눈을 감은 북극곰 통키도 동물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올해 23살, 사람 나이로 70∼80살이 됐으니 고령에 떠난 것은 맞지만 과연 행복했는지 의문입니다. 영하 20∼30도의 추위에 살도록 적응해 온 북극곰이 여름이면 40도에 육박하는 우리나라에서 꾸역꾸역 버틴 것은 아닐까요. 통키는 평생을 딱딱한 콘크리트 사육장에서 그 중 많은 시간을 에어컨도 없이 지냈습니다.

동물단체는 북극곰처럼 우리나라와 기후 환경이 전혀 맞지 않거나 동물 습성상 좁은 환경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동물을 ‘사육부적합종’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동물원의 대표선수인 코끼리도 이런 동물에 속합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북극곰과 반대로 코끼리는 20도 이상에서 살아가는 동물이라 겨울에는 내실에 갇혀지내는 시간이 많다”며 “우리나라 동물원은 코끼리에게 최소한의 복지수준도 제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합니다. 

레서스원숭이 /기사건수 ★ / 여론집중도 ★★ / 제도변화 ★
◆기막힌 타이밍에 도망친 레서스원숭이… 그리고

지난달 6일 전북 정읍에서 영장류자원지원센터가 처음 문을 연 바로 그날 이곳에 있던 레서스원숭이 1마리가 도망칩니다. 원숭이는 2주 뒤 센터 인근의 숲에서 발견돼 지금 건강히 잘 있다고 합니다.

센터는 영장류 3000마리를 대량으로 키워 ‘영장류 자원의 국산화’를 이루겠다는 목표로 세워졌습니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중국 등 해외에서 수입해 왔거든요. 문제는 동물실험은 자꾸 느는데 실험윤리는 제자리라는 겁니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집계하는 ‘동물실험 및 실험동물 사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실험에 사용된 동물은 2013년 196만6848마리에서 2015년 250만7157마리, 지난해에는 308만2259마리로 급증했습니다. 매일 8000여 마리, 지금 이 글을 읽는 5분 남짓한 시간에도 30마리의 동물이 어디선가 실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실험동물 3마리 중 1마리는 극심한 고통이나 억압, 회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동반한 ‘E그룹’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동물실험이 불가피하다면 적어도 실험윤리라도 제대로 지켜졌으면 좋으련만 글쎄요.

정부는 10년 전 각 실험기관이 동물실험 윤리위원회를 열도록 법제화했습니다. 그런데 2013년 이후 5년간 기관 당 위원회 개최횟수는 14.8회에서 8.2회로 줄고, 개최횟수 당 심의건수는 4.2건에서 9.8건으로 늘었습니다.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오른쪽)이 푸마를 닮은 벵갈 고양이를 놓고 대전동물원 푸마 사살 관련 질의를 하고 있다.
위원회에 참석한 적 있는 한 민간단체 관계자는 “회의 자체가 워낙 전문내용이 많고, 외부위원도 많지 않아 실질적으로 실험윤리를 감시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합니다.

동물보호법 규정을 보면 전체 위원(3∼15명) 중 3분의 1 이상을 실험과 이해관계가 없는 외부인으로 두도록 돼있는데 위원회 결정은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이면 됩니다. 외부위원 전원이 실험을 반대하더라도 다수인 나머지 위원이 찬성하면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죠.

올해의 동물 빅5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런데 사실 마지막 동물을 정할 때 올해 국정감사장에 뜬금없이 등장한 벵골고양이를 넣을까 했습니다.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퓨마 뽀롱이 문제를 지적한다고 퓨마와 닮은 벵골고양이를 데리고 나타나 논란이 됐었죠. 이후 동물을 국감장에 들이지 않게 하는 국회법 개정안(일명 ‘벵골고양이 방지법’)도 발의됐습니다만, 빅5에서 지운 까닭은 ‘취재가 안 돼서’입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의원실은 고양이 출처와 근황을 묻는 모든 질문에 ‘모르겠다’고 답합니다. 고양이를 사고 파는 게 불법도 아닌데 말이죠. 벵골고양이를 비롯해 KM53과 반이·달이·곰이, 레서스 원숭이 모두 동물답게 사는 새해를 맞이했으면 합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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