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법조계와 의료계에 따르면 말기암 환자 같은 중증환자가 아니어도 의사 처방을 받아 마약류 함유 의약품을 투약하는 사례가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의료인 본인이 환자 명의를 도용해 마약류 함유 의약품을 처방받아 투약한 사례도 있다. 지난 4월에는 대형병원에 재직하던 20대 간호사가 환자 이름으로 처방전을 받아 마약류 진통제인 페치딘을 투약한 혐의로 적발돼 재판에 넘겨졌다.
실제로 환자가 아닌 의사가 자신에게 직접 처방을 내려 마약성 진통제를 투약하는 경우 현행법상 혐의 입증이 어렵다. 마약중독이 의심되는 의사가 “내가 현행 의료법에 따라 스스로 치료한 것”이라고 주장하면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2015년 12월 정형외과 전문의 한모씨가 마약류 페치딘, 향정신성의약품 졸피뎀 등 약품을 약 200회에 걸쳐 투약했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하지만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가 적용된 투약 횟수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79회에 불과했다. 나머지 120회 이상의 투약은 “내가 스스로 치료할 목적으로 의료법에 따라 한 것”이란 한씨의 항변을 수사기관은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의사가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처벌을 받는 경우 자격정지 기간은 고작 3개월에 불과하다. 의사면허가 취소되더라도 3년이 지나면 서류심사로 재발급이 가능하다.
검찰 출신인 김광삼 변호사는 “일부 의료인이 마약류 의약품 처방을 남발해도 치료 목적이었다고 주장하면 처벌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의약품별로 처방할 수 있는 환자 영역을 명확히 규정하고, 제3의 기관이 마약류 의약품 관리와 처방을 ‘크로스체킹’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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