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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했던 고려 예술 500년을 훑어보다

입력 : 2018-12-12 03:00:00 수정 : 2018-12-11 19: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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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대고려전’ / 국내외 유물 450여점 테마별로 공개 / 비색의 명품 국보 자기들 단연 돋보여 / 화려한 채색의 불화도 눈길 사로잡아 / 국내 유일한 금속활자 1점도 선보여 / 기대했던 북한 유물 전시는 성사 안돼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이 마련한 특별전 ‘대고려전’. 관람객들을 처음 맞는 전시품은 거친 바다를 항해 중인 배를 무늬로 한 청동거울이다. 그리고 뜻밖에도 고려가 아닌 외국에서 만든 수입품들을 만나게 된다. 고려 미술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전시회에 항해 중인 배와 수입품을 앞세운 건 고려의 개방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밖으로 열려 있던 사회, 고려의 바다와 육로를 통해 드나든 다양한 물산과 교류의 양상”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수도 개경의 특성과도 연결된다. 박물관은 고려의 미술을 테마별로 정리했다. 미국, 영국, 이탈리아, 일본 4개국 11개 기관과 국내의 개인·기관 등 45곳에서 관련 유물 450여점을 테마에 따라 전시했다. 주목되는 유물을 중심으로 박물관이 ‘읽어주는 고려’를 만나보자.
고려청자는 자기의 종주국 중국에서도 최고로 인정받았다. 사진은 국보 60호 ‘청자 사자장식 향로’.

◆최고의 미, 왕실 미술

왕실은 고려 미술의 최대 후원자였다.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다채롭고 화려한 미술이 개경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회화, 금속공예품, 나전칠기, 자기 등이 최고급의 소재로 제작됐고, 개경의 번영을 상징했다. 이 중 특히 주목을 받은 게 자기였다. 중국 말고는 만들지 못했던 자기가 10세기경 고려에서 생산되었다는 것은 일대 혁신이자 새로운 문화 시대의 시작이었다. 고려청자의 ‘비색’이 종주국 중국에서도 ‘천하제일’로 인정받았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교과서에서 본 최고의 명품 자기를 실견할 기회다. ‘청자 사자장식 향로’(국보 60호), ‘청자 참외모양 병’(〃94호) ‘청자 칠보무늬 향로’(〃 95호) 등이 출품됐다. 영국 피츠윌리엄박물관의 ‘청자 용무늬 발’이나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의 ‘청자 병’ 등도 눈호강을 시켜준다. 미국 보스턴박물관 소장의 ‘은제 금도금 주자와 받침’은 금속공예품으로 단연 눈에 띈다. 박물관은 “원하는 디자인대로 뚜껑을 만들기 위해 복잡한 구조를 고안한 창의성과 기술력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이탈리아 동양예술박물관 소장의 아미타여래도는 중국의 작품으로 인식되다 2012년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사로 고려불화임이 밝혀졌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우아함의 극치, 고려불화

고려를 지배한 이념이자 정신세계였던 불교를 토대로 고려 문화는 화려한 꽃을 피웠다. 그중에서 가장 뛰어난 예술적 성취로 인정받는 것이 고려불화다. 160점으로 파악되는 현존하는 고려불화는 대부분 1270년대 이후 제작되었다. 박물관에 따르면 아미타여래 계통과 관음보살 관련 작품이 100여점에 달하며 수월관음도는 단일 주제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수월관음도’는 암좌 위에 비스듬히 앉은 관음보살, 그 발치에서 절을 하는 선재동자를 그려 전형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다만 선재동자가 화면 오른쪽으로 비켜나고 대신 관음보살의 발치에 갖가지 공양물을 든 인물과 바다괴물을 그린 것이 특징이다. 관을 쓴 용왕, 그 뒤를 따르는 여인과 관리 등의 도상은 일본 다이토쿠사 소장 수월관음도에서도 나타난다.

이탈리아 동양예술박물관 ‘주세페 투치’에서 빌려온 ‘아미타여래도’는 1992년 구입된 후 중국 작품으로 인식되다 2012년 박물관 조사를 통해 14세기 고려 작품임이 밝혀졌다. 아미타여래 계통의 고려불화는 많이 전하지만 이 작품처럼 독존형은 일본 쇼보사 소장품 등 모두 6점만 알려져 있다. 

◆찬란한 기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관람객들이 마지막으로 만나는 전시품은 고려가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금속활자 ‘복’(山+復)이다. 박물관은 “고려시대 무덤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이 금속활자는 남한에 전하는 거의 유일한 고려시대 활자”라고 소개했다. 활자의 높이가 일정하지 않으며 사면의 길이도 각각 다르다. 뒷면은 원형으로 오목하게 들어갔다. 박물관은 “언제 만들어지고 어떤 책을 찍을 때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 활자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고려시대 인쇄술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자, 고려가 금속활자의 발명국임을 입증하는 실물로서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박물관은 ‘대고려전’을 준비하며 북한 개성 만월대에서 2015년 발견된 금속활자도 가져와 함께 전시하는 것을 구상했다. 그러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북한 유물의 전시는 무산됐다.

태조 왕건상도 같은 이유로 오지 못해 아쉬움을 더하는 유물이다. 박물관은 왕건의 스승으로 알려진 희랑대사의 상(보물 999호)을 합천 해인사에서 빌려 와 스승과 제자의 재회를 유물로나마 표현하려 했으나 성사되지 못한 상황이다. 박물관은 희랑대사상의 옆자리를 비워두고 전시 기간 중 왕건상이 북한에서 내려오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희랑대사는 해인사에서 왕건을 지지해 후삼국의 통일을 도왔다. 당시 해인사의 경제력, 군사력은 전세의 판도를 바꿀 만큼 영향력이 컸다고 한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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