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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ㅇㅇ녀' '여대생' 지칭… 여혐 제목 기사들 여전

입력 : 2018-12-11 07:30:00 수정 : 2018-12-10 20: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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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파시즘-혐오 조장하는 언론②] 1년차 직장인 손모(26)씨는 포털 사이트 사회 분야 기사를 볼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한다. 그는 “성폭행 피해자가 여고생, 여대생인 게 대체 뭐가 중요한지 꼭 제목에 들어가더라”며 “가해자는 몇 살인지 나오지도 않는데 피해자의 신상과 피해 사실을 자세히 밝혀놓은 기사를 보면 기자가 가해자 편인 건지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성폭행 피해자 ‘미투녀’로... 바뀐 것 없는 언론

2016년 6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에서 '20대 여성들 여성혐오적 조장 언론보도 비판'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석자들은 언론의 '~녀' 식의 가해자 중심적인 언론보도를 비판하며 언론중재위원회의 성평등 관련 시정권고 심의기준 마련을 촉구했다. 기자회견 후 2년이 흘렀다. 상황은 달라졌을까.

언론은 지난 4일 ‘여대생 테이프 살인사건’을 앞다퉈 보도했다. 2004년 9월14일 광주 북구 용봉동에서 얼굴에 테이프가 감긴 채 숨진 여대생이 발견된 사건이다. 언론이 2년 전 자극적으로 피해자 여성을 ‘트렁크녀’ ‘염산녀’라며 제목에 넣은 후 자정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다. 피해자가 “울며 몸부림쳤다” 등 성폭행 상황을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행태도 여전했다. 심지어 성폭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을 ‘미투녀’라 칭한 언론도 있었다.

◆“10건 중 2건, 가해자 입장에서 보도”

서울 YWCA 양성평등 미디어모니터회는 언론보도의 성차별성을 분석하기 위해 2018년 1월 1일부터 3월 31일까지 보도된 미투 관련 기사 1500건을 모니터링했다.

모니터링 결과, 피해자의 신상을 과도하게 공개하고, 가해자의 변명을 그대로 받아쓰거나 가해자의 피해만을 부각하는 등 가해자의 입장을 중점적으로 보도하는 기사는 전체 21.6%이었다. 10.5%는 미투운동으로 펜스룰, 성별격차 심화 사회적 문제가 야기됐다고 보도했다. 또 ‘몹쓸 짓’, ‘나쁜 손’ 등 성폭력 사실을 축소하는 표현을 쓰고 성폭력 사건을 선정적으로 묘사해 성적으로 소비하는 기사도 있었다.

민근식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양성평등교육부 팀장은 “언론은 이슈 퍼나르기식의 보도와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피해 사실을 전시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며 “미투운동을 단순히 ‘뜨거운 감자’로만 다루지 않고 정치적·사회적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여론을 형성해 보이지 않았던 미투들을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 “단어 하나가 생각 바꾸고 행동 바꿔”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은 지난 6월 서울시 성평등주간(7월 1∼7일)을 앞두고 흔히 사용하는 일상 속 성차별 언어를 시민과 함께 개선하는 ‘서울시 성평등 언어사전’ 캠페인을 펼쳤다.

캠페인 중 받은 전체 608건 제안 중 100건은 직업을 가진 여성에게 붙는 ‘여(女)'자를 빼자는 것이었다. 여직원, 여교수, 여의사, 여비서, 여기자, 여군, 여경 등을 직원, 교수, 의사, 비서, 기자, 군인, 경찰 등으로 부르자는 것이다. 여자고등학교나 여자중학교에만 붙는 ‘여자'를 빼자는 제안도 나왔다.

일이나 행동을 처음 한다는 의미로 앞에 붙이는 ‘처녀'라는 수식어도 사용하지 말자는 의견도 50건 제기됐다. 처녀작, 처녀출판, 처녀출전, 처녀비행, 처녀등반 등을 첫 작품 등으로 ‘첫'을 넣어서 부르자는 것이다.

이밖에 3인칭 대명사인 ‘그녀'를 ‘그'로, ‘저출산(低出産)'을 ‘저출생(低出生)'으로, ‘미혼(未婚)'을 ‘비혼(非婚)'으로, ‘자궁(子宮)'을 ‘포궁(胞宮)'으로, ‘몰래카메라'를 범죄임이 명확하게 ‘불법촬영'으로, 가해자 중심적 용어인 ‘리벤지 포르노'를 ‘디지털 성범죄'로 바꾸자는 제안도 10선 안에 포함됐다.

정선재 서울시여성가족재단 경영기획실 차장은 “단어 하나가 생각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면 행동을 바꿀 수 있다. 시민이 제안한 성평등 언어가 생활 속 성평등 의식을 높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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