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의료장갑 공장서 이민자들 노동 착취… 英 정부 조사 착수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입력 : 2018-12-10 14:07:24 수정 : 2018-12-10 14:07:2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말레이시아에서 각종 의료용 장갑을 생산하는 업체 두 곳이 빚을 담보로 이민자들을 사실상 ‘노예’ 취급하며 강제노동(forced labor)을 강요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이 업체에서 생산된 수술용 장갑이 전 세계에 납품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영국 정부가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히는 등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

9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은 말레이시아 수술용 장갑 생산업체 ‘탑 글러브’와 ‘WRP’가 네팔과 방글라데시에서 건너 온 수천명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탑 글러브는 저 세계에서 가장 큰 고무장갑 생산업체로 말레이시아에만 40여개의 공장을 갖고 있다. 가디언은 이 업체 소속 노동자 16명과 WRP에서 일하는 노동자 3명을 인터뷰한 결과 광범위한 강제노동이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탑 글러브의 네팔, 방글라데시 출신 노동자들에 따르면 직원들은 일주일에 휴일 없이 12시간을 일해야 하며 한 달에 한 번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 또 회사 측이 강제로 여권을 압수한 뒤 돌려달라는 요청도 묵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AP통신, 가디언
WRP 소속 노동자들은 수개월째 임금을 받지 못한 채 일을 하고 있고 일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날들은 공장 외출이 금지돼 있다고 말했다. 4개월 치 임금을 받지 못하자 공장에서 도망쳐 나왔다는 WRP 전 직원은 “1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WRP를 방문한 한 투자자는 “공장 내부 온도가 섭씨 70동 달하고 1800명 수용 규모의 호스텔에 노동자 3000여명이 살고 있었다. 내가 본 어떤 작업 환경과 비교해도 이곳은 최악이었다”고 전했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탑 글러브가 10억파운드(1조43000억여원)의 막대한 이득을 거두고 WRP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배경 뒤에는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 말레이시아로 건너 온 가난한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노동력 착취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들의 급여명세서를 보면 탑 글러브 소속 노동자들은 말레이시아 법률이 정한 최장 노동시간(104시간)을 넘겨 일주일에 120시간 이상 일했지만 한 달 임금은 중위 소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000링깃(26만여원)에 불과했다. 또 일요일에 하는 작업은 초과수당으로 잡혀 수당을 2배 더 받아야 하지만 이 규칙은 전체 휴일 노동시간(12시간) 중 4시간만 적용됐다.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을 받고 있지만 업무량은 가히 살인적이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탑 글러브에서 하루에 1만5000여개의 장갑을 포장하고 있다는 한 노동자는 “일일 목표량이 지난 1년 동안 400% 증가했다”며 “업무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임금이 깎인다”고 말했다.

사실상 노예 상태에 있지만 이들이 노동권을 주장하지 못하고 있는 건 채무에 발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노동자는 취업비용으로 470만여원, 네팔 출신은 180만여원을 내야하는 데 이 비용을 갚기 전까지 월급은 차압당한다고 가디언은 설명했다. 한 방글라데시 노동자는 “휴일에 일을 해야 하거나 초과 근무와 관련해 얘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만약 우리가 부당한 현실에 대해 얘기한다면 회사는 우리를 (고향으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업체 측은 사실과 다른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탑 글러브 측은 “그런 주장은 모두 근거가 없고, 우리 명성을 흠집내는 것”이라면서도 “노동 시간이 많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WRP 측은 “세 달에 한 번씩 월급이 나오고 있다는 등의 주장은 근거가 없고 우리는 말레이시아 노동법을 준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디언의 이번 보도와 관련해 탑 글러브 측으로부터 수술용 장갑을 공급받고 있는 영국 정부는 즉각 ‘강제노동’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지 여부를 살피겠다고 밝혔다. 현재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에 가입돼 있는 의료기관의 40%는 NHS 공급망으로부터 수술용 장갑을 조달받고 있는데 탑 글러브와 WRP는 NHS 공급망에 포함돼 있다. NHS 대변인은 “우리 공급망에 노동력 착취를 일삼은 기업들이 포함돼 있다는 주장에 대해 우리는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노동권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즉각적인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탑 글러브가 만든 수술용 장갑은 한국에서도 수입돼 거래되고 있다. 마흐무드 부타 NHS 소속 의사는 “인간을 착취해 만든 장갑을 끼고 치료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
  • 이다희 '깜찍한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