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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미안해”… 간편식 상차림, 죄책감에 고개 떨군 엄마들 [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입력 : 2018-12-09 13:00:00 수정 : 2018-12-10 1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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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편의를 위해 등장한 인스턴트식품 등의 간편식(이하 간편식)은 여성의 사회활동과 함께 성장하며 ‘가사 단축 시대’를 이끌고 있다.

다양한 간편식 등장은 주부들로선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되레 죄책감에 시달리게 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일본 여성 중에는 ‘가사가 줄었다’는 해방감보다 ‘엄마, 아내로서 자격상실’이라고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여성이 적지 않았다.
사진= 커뮤니티 캡처

◆“매일 삼시 세끼 7인분 준비하는 직장맘...간편식도 내 손 거쳐야”

최근 아사히신문과 인터뷰한 36세 여성 A씨는 가족과 함께할 7인분 식사 준비로 머릿속이 가득하다.

A씨는 아침 7시 출근해 저녁까지 일하면서도 퇴근길 어김없이 마트에 들러 식재료를 구매한다.

일과 가정을 양립하며 피곤할 법하지만 A씨의 철칙은 ‘메인 요리와 함께할 스프나 샐러드 등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요리를 만드는 것’이다. 또 마트에서 파는 반찬이나 인스턴트 양념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A씨의 이 같은 철칙은 ‘내가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이 “자신을 우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다른 여성의 ‘아니다’ ‘그럴 필요 없다’ ‘과하다’는 말보다 ‘가족을 위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내지는 ‘나를 대신할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A씨에겐 ‘힘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렇게 철저한 A씨지만 가끔은 마지못해 간편식을 구매한다. 간편식은 손을 거치지 않고 먹을 수 있지만 A씨는 소스를 만들거나 기름에 튀기는 등 자신의 손을 거쳐야만 상위에 올린다.

A씨는 이러한 수고에도 “겨우 부실한 정도를 넘겼을 뿐”이라고 자책한다.


◆“‘매일 반찬 만들지마’...남편 말에도 속마음은 ‘준비 부족’”

20살 한창 꾸미고 즐기고 싶은 나이 결혼한 B씨는 손맛 좋은 시어머니 도움으로 베테랑 주부 못지않은 요리 실력을 뽐낸다.

B씨가 간편식을 멀리하는 이유는 시어머니 손맛에서 자란 남편이 집 밖에서 파는 음식을 싫어해서다. 또 말로는 “매일 반찬 만들 필요 없다”면서도 ‘아이를 위한 정성 담긴 요리’를 원하는 남편 속마음을 알게 된 이유도 있다.

B씨도 직장을 구하기 전까지 ‘간편식을 식탁에 올리는 건 게으른 행동’으로 생각하며 “음식은 직접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해왔다. 이러한 생각은 직장에 다니는 지금도 이어진다.

B씨는 “야근에 지친 날이면 식단이 떠오르지 않아 한 달에 1~2번 간편식을 식탁에 올린다”며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지만 그런 날이면 ‘(식사 준비가) 부실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남는다”고 말했다.

◆“평생 주방서 산 친정엄마...그래도 애들 밥은 네 손으로”

직장맘 C씨가 지친 몸을 이끌고 주방으로 향하는 건 ‘친정엄마에게 받았던 사랑’ 때문이다.

C씨는 “어머니가 이혼 전까지 가족과 까다로운 남편 식성을 맞추기 위해 주방에서 떠날 날이 없었다”며 “이혼 후에는 우리를 홀로 키우기 위해 밤늦도록 일하면서도 퇴근 후 손수 음식을 만들고 우리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 했다”고 말했다.

C씨는 이런 부모에게 투정 삼아 “가사만큼 일도 중요하다”고 설득해보지만 “어쨌든 밥은 네가 만들어야지”라는 말이 돌아온다.

C씨는 “힘들지만 6인분 식사 준비를 소홀히 할 수 없다”며 “피곤하다는 이유로 간편식을 사용하면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 간편식 사용...‘부실한 요리에 대한 죄책감’

간편식 사용에 ‘죄책감’을 느끼는 여성이 적지 않다. 이러한 생각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더 증가하는 모습이다.

일본 식품 대기업 ‘큐피’가 20대~50대 여성 소비자를 대상으로 지난 29년간 조사를 벌인 결과 간편식 사용에 ‘죄책감을 느낀다’는 여성은 2013년 27.9%에서 2016년 33.1%로 늘었다.

조사 항목은 라면, 즉석요리 등 간편식별 19개 항목을 정하고 사용 후 느끼는 감정을 조사했다. 설문 대상 여성들은 19개의 항목 중 16개에 이르는 항목에서 ‘죄책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기업에서 10년간 조사를 진행한 코가 에미코는 “일하는 여성의 증가로 직접 만든 ‘수제(음식)’의 가치가 높아진 것”이라며 “‘바쁘니까 어쩔 수 없다’는 생각과 ‘가족을 위해 정성 담아 요리하고 싶다’는 딜레마에 빠진 여성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사진= SNS 캡처

◆ 일본 여성의 도시락 사랑...SNS 관련 게시물만 800만건

일본 여성들에게 도시락은 화제의 콘텐츠다. 아사히신문은 소셜 미디어(SNS)에서 도시락을 검색하면 약 800만건에 이르는 관련 콘텐츠가 검색될 정도라고 했다.

일본 여성의 도시락 사랑은 앞선 식품 대기업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초등학생(미만) 자녀를 위해 도시락을 만든다고 응답한 여성은 '종종 만든다'는 응답을 포함해 무려 84.5%로 나타났다. 또 남편(60세 미만)을 위해 도시락을 만든다고 답한 주부는 51.1%로 절반을 넘겼다. 가족의 아침 식사 준비는 도시락 만드는 과정과 이어져 전체 80% 넘는 여성이 ‘아침밥을 챙긴다’고 말했다(중·고등학교에서는 급식이 진행돼 최근 조사에서 제외됐다).

신문은 “미술관에서 (도시락과 관련한) 기획전이 열리는가 하면 해외에서 일본 도시락 사진집이 인기를 얻는 등 작은 그릇에 창의력을 불어넣은 도시락은 일본 고유의 문화”라며 “정성 담은 도시락을 ‘사랑의 증거’로 여기는 여성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요리 연구회에 참가한 주부들. 1982년. 사진= 아사히신문
◆ 애정 표현이 된 도시락, 이유는?

도시락이 일본 여성이 상대에게 보내는 ‘애정의 척도’로 여겨지는 배경에는 고도성장기 전업주부 증가가 원인으로 꼽힌다.

쿠리야마 나오코 오테몬가쿠인대학(追手門學院大學) 교수(가족사회학)는 고도 성장기에는 “남편은 밖에서 가정을 위해 일하고 아내는 집에서 가족을 위해 일하는 분업 라이프 스타일이 전역에 확산했다”며 “여성이 집안일을 모두 책임지고 해내는 것은 물론, 자녀를 위해 손수 도시락 만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일본 가정 연구 전문가 쿠리야마 나오코 교수. 위드뉴스

일본 TV나 영화 등의 미디어에서는 가족, 연인을 위해 도시락 만드는 여성이 행복한 존재로 그려진다. 이러한 모습은 대중에게 긍정적인 가치관으로 인식되고, 여기서 냉동식품 등 간편식 사용은 금기처럼 여겨져 완성된 도시락에 큰 흠을 남긴다.

나오코 교수는 “30여년이 지난 지금껏 여성의 ‘도시락 애정론’은 시대에 맞게 재생산돼 확산하고 있다”며 “어린아이들은 CF 속 간편식을 먹고 싶어 하거나 사춘기 자녀는 어머니의 애정 과시가 다소 부담스러울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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