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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의인문상식] 상처와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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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2-07 23:11:16 수정 : 2018-12-07 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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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부대끼며 상처 주고받아 / 다른 가치관 흔쾌히 받아들여야 주체는 고대 사회와 현대 사회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고대인은 삶에서 신의 율법이나 절대 도덕의 가치를 실천하도록 요구를 받았다. 사람은 그 요구를 실현하는 수준에 따라 인격의 높낮이가 정해졌다. 유학은 가장 기본적으로 소인과 군자의 용어로 인격의 차이를 규정했다. 소인은 물질적 이해를 기준으로 삼아 공동선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군자는 이러한 소인을 극복한 인물로 간주됐다. 또 북송의 주렴계는 “선비는 현자와 같아지고자 하고 현자는 성인과 같아지고자 하고 성인은 하늘과 같아지고자 한다”며 사람이 자연을 닮을 존재가 될 때까지 끊임없이 인격을 계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연유로 유학은 성인이 되는 학문이라는 뜻에서 성학(聖學)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람은 자신의 인격이 높아지지 않고 낮은 상태에 머물 때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즉 인격의 향상이 짧은 시간 안에 끝나는 일도 아니고 한 번으로 완성되는 일도 아니며 언제든지 이전 상태로 되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대인은 해야 하는 과제를 해내지 못하는 어려움으로 인해 곤혹의 깊이를 느꼈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 동양철학

현대인은 종교와 전통, 그리고 절대적 가치로부터 벗어나서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선택할 수 있다. 물론 현대인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아무런 제약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규범을 지켜야 했다. 그럼에도 현대인은 양심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처럼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인내하며 지킬 필요가 없었다. 누구도 사람의 의지에 반대되는 일을 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의지에 반대되는 일’을 강요받을 때 상대에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근거를 물을 수가 있다. 이 질문은 특정한 사람만이 아니라 기관이나 정부에 향할 수 있다. 즉 현대인은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권리를 인권으로 보장받고 있다. 예컨대 현대인이 도덕적으로 성인이 되기를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요구에 따르지 않을 수 있다. 또 최근 종교와 신념을 이유로 양심적 병역 거부가 인정되기도 했다.

현대인은 고대인에 비교할 수 없는 자유를 누리지만 그에 상응해 상처를 겪는다고 호소한다. 어찌 보면 역설적이다. 사람이 자신의 뜻대로 산다면 희열과 행복을 느껴야지 그와 달리 상처로 인해 고통을 겪는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고대인이 서로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질성을 느끼는 반면 현대인은 각자의 목표를 위해 움직이므로 이질성이 강하다. 아울러 현대인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에 현대인은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가치관과 다른 사람을 만나기 쉽고 편안하고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의사소통의 방식과 다른 사람과 어울리며 살아가게 된다. 과거는 자신과 다르면 상대를 기준과 함량에 미치지 못하는 인물로 간주하고 무시하며 우월감을 느꼈다. 오늘날은 자신과 다르더라도 상대를 인정할 수밖에 없으며 협업을 하는 경우도 많아지면서 상처를 받을 가능성이 늘어나고 있다.

사람은 개별적으로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가 있다. 다른 것을 만나더라도 일정한 범위 안이라면 자존감에 별다른 영향이 없지만 그 범위를 넘어서게 되면 자존감에 심각한 손상을 받는다. 법의 규정처럼 명확한 기준이라도 있으면 침해받은 인격의 보상을 요구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서로 시정을 요구할 수 없으면서 상처를 주고받는 삶의 고통을 피할 수가 없다. 이로 인해 후자의 고통은 통증이 생겨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신경증처럼 해결과 치유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어찌 보면 자신과 다른 것을 일상적으로 만나며 살아가야 하는 문명의 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치유의 길을 찾는다면 먼저 자신과 다른 관행·태도·패션·가치관을 흔쾌히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어서 낯설어서 상처받는 일에 대해 각자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로서 대화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 대화는 느리게 진행되며 결론이 열려 있을 수밖에 없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 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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